임원과 신입 사이, 난 동네북 아닌 통역사

by 업스트리머

부제 : 타인의 욕망을 운전하는 중간 관리자의 비애, 김민섭 『대리사회』


타인의 욕망을 대리 운전하는 오전 9시의 풍경


​사무실의 허리, 김 팀장의 책상은 오늘도 폭격기 사이의 비행장 같다.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임원은 "요즘 애들 관리가 왜 이 모양이야? 좀 꽉 조여봐!"라며 김 팀장의 핸들을 거칠게 꺾으려 든다. 곧이어 신입 사원은 "팀장님은 꼰대 같아요. 왜 이렇게 형식을 따지시죠?"라며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양쪽의 비위를 맞추느라 김 팀장의 모니터에는 정작 '자신의 업무'가 한 줄도 적히지 못한다.

그는 상사의 비합리적인 지시를 부하 직원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부하 직원의 권리 주장을 상사가 불쾌하지 않게 가다듬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


그는 팀의 수장이지만, 정작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는 지금 자신의 인생이 아닌, 조직의 욕망을 대신 운전해주고 있는 중이다.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이 기이한 샌드위치 신세 앞에서 김민섭 작가의 에세이 『대리사회』를 펼쳤다.

책에는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 기사가 된 후, 타인의 차에 올라타 핸들을 잡는 순간 자신의 신체와 사유의 주권을 손님에게 내어주게 됨을 목격한다.


"대리운전은 단순 직업이 아니라, 손님의 이동·욕망·감정을 대신하는 노동이다. ... 기사는 타인의 운전석에 올라야 한다."


중간 관리자의 삶은 대리운전 기사와 소름 돋게 닮아 있다.

회사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상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팀원들을 몰고 가야 하는 운명.


김 팀장은 지금 자신의 언어가 아닌 ‘조직의 대리인’으로서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는 동네북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성을 타인에게 빌려준 ‘대리 인간’이었던 셈이다.




​‘대리 인간’이 되어버린 중간 관리자의 심리적 부채


​AI는 이 현상을 두고 ‘브릿지 스트레스’와 ‘사유의 거세’라고 진단한다.

AI에게 중간 관리자의 심리 구조를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차가우면서도 명확했다.


감정의 이중 장부: 중간 관리자는 상사와 부하에게 각각 다른 가면을 쓰느라 일반 사원보다 2배 이상의 감정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는 뇌의 전두엽에 과부하를 일으켜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 능력을 떨어뜨린다.


괴물의 탄생: 김민섭 작가가 경고했듯, 주체성을 잃고 오직 '대리 수행'에만 매몰된 조직은 구성원을 괴물로 만든다. "경쟁하고 한 발 더 나아가기만을 강요하는 대리사회의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김 팀장의 공허함은 극에 달한다.


​결국 김 팀장이 느끼는 분노는 본인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말'과 '생각'을 타인의 욕망에 저당 잡힌 데서 오는 존엄의 결핍이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려와 나의 ‘발화’를 시작하라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며 나의 신체를 되찾고, 무엇보다 사유하고 발화할 자유를 되찾아 온다"


이제 김 팀장도 동네북이 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운전석을 찾아야 한다.


번역의 투명성 확보: 상사의 비합리적인 요구를 너무 완벽하게 포장하지 말자. 때로는 위쪽의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 아래쪽도 알게 해야 한다. '완충재'가 아닌 '투명한 통역사'가 될 때 비로소 내 말에 힘이 실린다.


​사유의 영역 구축: 퇴근 후 1시간만이라도 '팀장'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자. 김민섭 작가가 차에서 내려 새벽 거리를 걸으며 자유를 느꼈듯, 우리도 조직의 굴레 밖에서 걷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전문가로의 로그온: 우리는 누군가를 대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이 아니다. 관리 업무에 뺏긴 시간 중 일부를 강제로 탈취해, 우리만의 전문성을 지키는데 쓰자. 그것이 '대리사회'라는 괴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유일한 무기다.


임원과 신입 사이, 우리는 그들의 욕망을 실어나르는 대리 기사가 아니다. 우리는 조직의 방향을 조율하는 귀한 통역사다.

이제 타인의 운전석에서 잠시 내려와, 우리의 목소리를 되찾자. 우리의 삶은 누군가를 대신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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