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의는 이메일 한 통이면 충분했다

by 업스트리머

부제 : 책임은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것'이라 믿는 관리자들의 전술, 이혁진 『관리자들

* 유튜브 팟캐스트


회의실의 좀비 연극


회의실 유리창 너머를 보면 멍한 눈동자들이 박제되어 있다.

팀장의 "자유롭게 아이디어 좀 내봐"라는 대사가 떨어지는 순간, 공기는 차갑게 식는다.

이건 토론이 아니라 팀장의 머릿속 정답을 맞혀야 하는 잔인한 스무고개의 시작이다.


​결국 2시간의 소모전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팀장이 이미 결재판에 끼워두었던 그 대안 그대로다. 실무자들의 금쪽같은 시간은 리더의 독단을 '민주적 합의'로 포장하기 위한 1회용 소품으로 전락한다.


회의실을 나서는 이들의 어깨가 무거운 건 업무량 때문이 아니다.

내 인생의 120분이 누군가의 리더십 퍼포먼스를 위해 난도질당했다는 허무함 때문이다.




소설 『관리자들』 속 '책임 세탁'


​이 비릿한 현장은 이혁진의 소설 『관리자들』 속 공사 현장과 묘하게 겹쳐진다.


그곳의 소장은 공기를 맞추기 위해 인부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도, 결코 자기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는 '관리 기술'의 달인이다.

그의 철학은 서늘할 정도로 명확하다.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하는 거야."


2시간의 무의미한 회의는 바로 이 '책임 세탁'의 현장이다. 팀장이 굳이 회의를 소집하는 건 좋은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우리가 그때 다 같이 논의해서 정한 거잖아"라고 말하기 위해, 즉 자기 책임이라는 흔적을 아예 만들지 않기 위해 당신의 시간을 갈아 넣어 '책임의 N분의 1'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멧돼지 보초병'이 된 사람들


​소설 속 인물 선길은 존재하지도 않는 '멧돼지'를 감시하라는 불합리한 임무를 맡고 사라진다.


현대 조직의 실무자들도 마찬가지다.

'협의'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회의실에 갇히는 건 리더가 권력을 과시하고 구성원을 통제하는 도구일 뿐이다.


​AI는 이 현상을 '책임의 외주화'라고 분석한다.

리더는 불안할수록 회의라는 알리바이를 만든다.

독단적인 결정을 집단지성으로 둔갑시키는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리더가 교묘하게 책임을 지우는 사이, 실무자들은 그 짐을 어설프게 넘겨받아 결국 사고가 터졌을 때 가장 먼저 내쳐지는 '멍청한 자'가 되어버린다.




그의 짐을 넘겨받지 마라


​소장의 관리 기술에 휘둘린 소설 속 인물들처럼 비극의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다.

회의실에서 내 존엄을 지키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사가 "우리 모두의 의견이지?"라고 물을 때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이지 않는 것이다.

결정된 사항과 내 의견이 달랐던 지점을 메일이나 개인 기록으로 명확히 남겨둬라.

상사가 지우려는 책임을 내가 대신 짊어지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답정너' 회의는 상사의 1인극이다.

당신은 관객일 뿐이니 무대 위에 올라가 주인공과 싸우느라 진을 빼지 마라.

그가 뺏은 건 당신의 120분이지, 당신의 가치가 아니다.


상사가 소환한 '전사적 혁신' 같은 명분이 혹시 본인의 안위를 위한 '허상의 멧돼지'는 아닌지 냉정하게 관찰해라.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만이 당신을 좀비가 되지 않게 지켜줄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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