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날 18분 타고 포기 선언
서서 타는 자전거, 이 녀석 완전 괴물이다. 오늘은 이 괴물 같은 녀석에 대한 얘기다.
3월 23일. 다이어트 6일 차. 퇴근하고 집 도착. 저녁 먹고 부른 배를 어루만지는데 소파 옆 덩그러니 놓인 친구 녀석이 날 부른다.
“이봐 친구. 날 구경만 하려고 데려왔어? 어서 타 봐. 신날 것 같지 않아?”
회사 인사에서 물 먹고 홧김에 지른(토끼가 좋아하는 중고거래 앱에서 4만원에 구매) 서서 타는 자전거.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이 집에 온 날 3분간 시험 운행을 했었는데 엄청난 운동량에 휘파람이 저절로 나왔었다.
그래. 오늘부터 너와 함께 지옥으로 들어가겠다.
밤 9시가 넘자 아내가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다. 지금부터 헬 게이트 오픈이다.
거실에 불을 끄고 TV를 켰다. 음향 볼륨을 1로 줄이고 VOD에서 볼만한 영화를 뒤적였다. 반복 동작이 이어지는 유산소 운동을 할 때면 영화를 본다. 시간 가는 걸 잊고 운동량을 채울 수 있다.
난 영화 전문 기자다. 안 본 영화가 거의 없단 뜻이다. 고를만한 게 없어 찜 목록에 들어가 봤더니 아내가 찜 해놓은 로맨틱 코미디(보면 닭살 돋는)와 딸이 찜 해놓은 애니메이션(‘렛잇고’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 기분 느낀 적 있나요. 그 뒤로 애니메이션이라면 손사레가 쳐짐)만 잔뜩 있다.
허공에 대고 의미 없는 리모콘질만 하다가 결국 몇 번이나 본 무료 영화 한 편 ‘플레이’. 오늘의 주인공은 영화가 아닌 자전거다. 이 녀석에게 집중하자.
이 녀석은 실내 자전거지만 맨발로는 탈 수 없다. 신발을 신고 자전거 위에 올라섰다. 손잡이를 잡고 페달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대박”이란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전 사용한, 사망한 자전거는 페달을 돌릴 때마다 덜그럭거리며 요동을 쳐 위아래 옆집 눈치가 보였다. 이 녀석의 이전 소유자가 몇 번 타지 않고 옷걸이로 사용했다고 하더니 그 말대로 자전거 컨디션이 최상이다.
“아싸 좋다!!!”
쾌재를 부르며 힘차게 발을 굴렀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얼굴이 땀으로 뒤덮였다. 땀방울이 구레나룻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아이고야. 잠시만”이라며 내려와 버렸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정확하게는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숨도 차고 땀도 나는 신체 변화로 봐선 운동 효과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겠는데 하체에 걸리는 부하가 장난이 아니다.
마침 아이들을 재운 아내가 거실로 나와선 왜 벌써 내려오냐고 묻는다. 이 녀석이 얼마나 괴물같은 녀석인지 설명하는데 “고작 10분도 안 타고?”라며 피식 웃는다.
‘저놈의 허세는’ 하는 표정이다.
자전거 모니터에 내재된 시계를 보니 8분 탔다. 20분은 탄 줄 알았다. 정말이다.
내가 누구냐. 한때는 100일 동안 18kg을 감량하고 서울 시내의 산 정상까지도 뛰어다녔던 운동맨이었다. 고작 8분을 타고 헐떡이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으쌰 으쌰 으쌰”
엉덩이를 최대한 실룩거리며 하체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두 다리가 다시 후들거리기 시작, 바닥은 떨어진 땀으로 흥건해졌다. 급기야 하체에 전해지는 고통을 이기려 힘을 주니 손잡이를 움켜잡은 팔에 경련이 일었다.
간신히 10분을 더 채운 후 “포기 포기! 안 되겠다”며 내려왔다. 서서 타는 자전거. 날 KO 시킨 괴물. 첫날은 그렇게 18분 만에 포기 선언을 해버렸다.
고백하자면 “다시 팔아버릴까?”란 생각을 5번쯤 했다. 그만큼 요 녀석과의 첫 경험이 혹독했다.
아내 역시 올라서서 페달을 3~4번 돌려보더니 “엄마야! 허리 아파”라는 비명을 지르며 내려와 버린다. 이 녀석을 팔고 앉아서 타는, 평범한 실내 자전거를 중고앱에서 다시 구매하기로 결정.
그런데 이틀 후 아내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소문 났다며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 VOD를 결재하고 스텝퍼를 타기 시작했다. 소파에 멀뚱히 앉아 이미 본 영화를 또 보기도 그래서 다시 이 녀석 위에 올랐다.
1분이 지나자 또 허벅지가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고통을 이기려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힘을 주니 다시 팔에 쥐가 나려고 한다. 얼핏 보면 허벅지 운동이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건 근육이 경직돼 간다는 신호다. 다행히 운동을 많이 해 봤기에 지금 내가 힘을 잘못 주고 있단 걸 알게 됐다.
힘이 들어가는 부위를 바꿔 봤다. 이전까진 손잡이에 상체를 기댄 채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몸이 비스듬히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는 소리다.
이번엔 몸을 꼿꼿이 세웠다. 손잡이는 넘어지지 않기 위한 폼으로 잡고 몸을 세운 채 다리의 힘을 완전히 뺐다. 그렇게 힘을 뺀 상태로 페달을 건성으로 타듯 휙휙 돌렸다. 엉덩이는 실룩실룩. 볼품없는 자세와 움직임이다. 하지만 이게 웬걸! 허벅지에 쏠렸던 힘이 상체 코어로 이동되는 느낌이 난다.
“오~ 된다. 된다”
코어가 단단해지면서도 하체에 가해지는 부하가 눈에 띌 정도로 줄었다.
“훅훅훅훅”
10분을 넘기고 15분이 넘어가도 큰 무리가 없다.
20분이 넘어갔다. 유산소 운동은 처음 20분이 예열 시간이고 20분 이후부터 지방이 타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본 게임.
앉아 타는 자전거라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편하게 탈 수 있었겠지만 이 녀석은 서서 타는 자전거. 10분만 더 버텨보기로 했다. “훅훅훅훅”. 30분이 됐다. “오케이! 여기까지~”
허벅지가 떨리긴 했지만 이전만큼은 아니다. 오히려 단전을 중심으로 상체에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엉덩이가 당기는 느낌도 컸다. 잘만 하면 이 녀석으로 40대 중년 ‘엉짱’을 노려볼 수도 있겠다.
그 뒤로 한 번 더 이 녀석과 우정을 나눴다. 3번째는 술 먹은 다음 날이라 28분을 타는 데 그쳤다.
적게 쓰고, 아껴 쓰고, 맞춰 쓰는 김재범식 다이어트 ‘쓰쓰쓰’
다이어트 4일 차부터 13일 차까지 열흘 간의 기록을 정리한다.
매일 4리터 물 마시기는 간헐적으로 성공했다. 성공한 날도 있었지만 외근이 있는 날은 물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열흘 중 두 번 있었던 주말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지런히 산에 다녔다. 등산을 4번 했다는 뜻이다. 이에 관한 얘기는 다음에 이어진다.
주말을 뺀 평일 6일 중 3일은 서서 타는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을 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운동한 셈이다. 유산소 운동 후엔 근력운동으로 팔굽혀펴기를 했다. 한 번에 30개씩 20세트. 600개를 했다.
체중이 1톤에 육박하는 비만임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꾸준히 해오던 팔굽혀펴기 때문이다. 눈에 먼저 띄는 어깨와 팔이 물렁살이 아닌 단단한 근육이라 40인치의 뱃살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보고 자세히 봐야 살이 찐 걸 알 수 있다.
다이어트 13일째인 현재, 다이어트는 사실상 실패 중이다.
92kg에서 시작한 체중이 다이어트 13일째인 오늘은 91.2kg이다.
다이어트에서 몸무게 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체감상 변화도 없다는 게 문제다.
열흘 동안 두 번의 술자리에 참석한 게 치명타였다.
모두가 ‘사회적 거리 두기’에 힘을 쏟는 시기에 무슨 술자리냐 하겠지만 즐기기 위한 자리가 아닌 ‘목적’이 있는 자리였기에 뒤로 미룰 수 없었단 변명을 해본다.
술자리에선 최대한 덜 취하기 위해 안주를 많이 먹었다. 귀가길엔 배가 불러도 속이 허기지는 증상으로 인해 집 앞 편의점에서 사발면과 도시락을 먹었다. 다음날엔 숙취 해소를 위해 나트륨이 잔뜩 들어간 국물을 마구 들이켰다.
운동량이 음주와 폭식량을 이기지 못했다.
다이어트가 성공하려면 식이 조절도 병행해야 한다. 다이어트는 운동이 30, 식이 조절이 70이란 말이 괜히 나온 얘기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체험 중이다.
그럼 어떤 식이요법을 병행해 볼까? 다이어트 성공을 위한 과제 하나가 지난 열흘 간의 실패로 명확해졌다. 아직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외칠 순간은 아니다. ‘쓰쓰쓰’ 성공 여부는 내일부터 이어질 식이요법과 운동의 병행에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