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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살기 May 13. 2016

부처님 제가 얼마얼마 냈어요.

제 소원 꼭 들어주세욥.

내일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 할겸 겸사겸사 일년에 한번뿐인 연등 가득한 절에 취하고 싶어 집을 나섰다.
버스를 갈아 타고 한시간 가량 달려 종로에 있는 조계사에 도착하니 역시나  왁자지껄 야단법석이다. 이미 절 앞마당은 내일 있을 석가탄신일 행사로 정신없이 분주한 모습이다.

아! 나의 미스테이크...이런 이런...

절 경내가 사람들로 붐빌거란 예상까지는 했지만, 절 안에는 앰프며 연등 다는데 사용하는 기계식 사다리며, 통로를 분리하는 파티션이며, 갖가지 기계 장비들이 즐비했다. 내일 있을 석탄일 행사를 준비 하시는 스태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처럼 절 구경을 온 사람들과 대웅전에 자리깔고 기도 하시는 분들로 절 경내는 이미 발디딜 틈이 없었다.
허공에 매달린 형형색색의 연등과 조계사 앞마당의 오랜 주인장인 큰나무 아래서 불법승 삼보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일부러 찾아간 그 곳이  공사판 모습을 하고 있는걸 보니 적잖이 실망스럽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걸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 대웅전에 삼배를 올리고 절 앞마당에 잠시 자리를 잡고 연등을 구경해 보았지만, 그 어수선함이 싫어 몇장의 사진을 찍고 바로 인사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정에도 없던 쌈지길에 잠깐 들렀는데, 뜻밖에 마음에 꼭 드는 스카프 두개와 그럭저럭 맘에 드는 손수건 하나를 득템하게 됐다.  뭔가 더 사고 싶어지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던차에 갑자기 맥주집인지 커피가게인지 모를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감기가 심하게 들어 일찍 돌아가 쉬려 했는데, 난데 없이 맥주라니ㅎㅎ

허름한 가게엔 이미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카운터 사람에게 "여기 와이파이 되요.?"  라는 말이 불쑥 튀어 나온다.

아마도 또 뭔가 쓰고 싶은가 보다.
딱히 쓰고 싶은 것도 없는데...왜 그런 말을 뱉은 걸까? 싶으면서도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버렸다.

메뉴판엔  맥주도 있었지만, 막상 주문할 차례가 되고 보니 이번엔 카페라떼요 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아! 왜? 이러는 거지?

아마도 대낮부터 집도 아닌 곳에서 술 마시는게 너무 이상스레 보일 것 같아 그렇게 말이 튀어 나온 것임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원래는 연등이 바람에 살랑살랑 불어대는걸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어 온건데, 기대하던 모습과는 너무 먼 부산스런 모습만을 구경하고 돌아가게 됐다. 내 귀에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듣고 싶은것 만을 선택적으로 골라 듣고, 이해하고 싶은 것에만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는 그런 행동처럼, 오늘 보고 싶었던 풍경만 쏙 뽑아 상상으로 그리다 보니 이런 착오가 생긴 것 같다.

여러가지 객관적 상황을 고려해 보았다면 내가 원하는 것만을 본다는게 불가능 하단걸 알 수 있었을텐데...

할 수 없지...

내년부터는 올해 경험을 했으니, 같은 실수는 두번 하지 않겠지.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그나저나 웬 연등이 그렇게나 많은지 조계사 마당을 가득 채운 연등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사실 왕위도 버리고 출가하신 부처님께
돈 몇십만원 주고 산 등하나 달랑 달고 "부처님 제가 돈 얼마 냈으니 제 기도 들어 주세요" 이러는 것도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긴 하다.

왕자로써 누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쾌락을 과감히  버리시고, 평생을 걸식 하시며, 그 당시 시체를 싸던 분소의를 입고 지내셨다는 부처님께 그깟 돈 몇푼 드리고 뭔갈 구하려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투성이 같다. 아무리 자신에게 값진 것을 상대에게 준다 할지라도 그걸 받는 상대가 반드시 예외 없이 흑좁해 할꺼라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순진한 착각 아닐까?

그것도 무려 부처님께 말이다. ㅎㅎ

근데 나부터도 모순된 인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실은 매년 등을 달고 싶어한다.
아마도 믿고 싶은 거겠지.
미래가 불안 하니까.
나보다 나은 존재의 힘을 빌어 보고 싶은...그런...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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