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황사와 때 이른 더위까지 만나니 자가용의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지붕에 쌓인 흙먼지와 송진가루, 차량 내부엔 대충 챙겨 먹은 끼니의 흔적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생활하다 보니 자가용은 집이 되고 식탁이 되고 소파가 되기도 합니다.
매주 한 번은 정리를 해야 부끄럽지 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희뿌연 하늘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와 청소를 시작합니다. 패스트푸드점의 포장지와 종이 트레이, 핫도그 소스 봉투와 다진 양파가 담겨있던 플라스틱 컵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악취를 뿜어냅니다. 운전석 우측 컵홀더에는 며칠 전 챙겨놓은 텀블러가 모닝커피를 가득 채운 채로 우두커니 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진땀을 빼고 나서야 청소가 끝이 납니다. 집에 들어와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씻어놓은 텀블러에 냉수를 담아 나갑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름을 채우고 자동세차기 안에서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곧장 그곳으로 향합니다. 드라이브 스루에서 앞차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벽면을 보니 낯선 일러스트와 문구가 보입니다.
빨대는 은퇴했어요. 앞으로는 뚜껑이를 사용해주세요!
귀여운 일러스트에 혼자 큭큭거리다 없으면 뭐 어때!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집에 도착해서 탄산음료 한입을 마셔보려는데 음료가 시원하게 나오질 않습니다. 문득 언젠가 선물 받은 텀블러에 딸려온 빨대가 생각나 가져와 마셔봅니다.
익숙한 그 느낌입니다. 시원하게 빨려 들어와 목 안을 적십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빨대가 튼튼하게 생겼습니다. 문득 아침에 청소한 쓰레기가 떠오릅니다. 아마 못해도 빨대가 스무 개는 넘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종이 빨대를 사용하며 불평불만을 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갑작스레 호기심이 발동해 플라스틱 빨대가 사라지는 이유를 찾아봅니다. 한참 뉴스와 블로그, SNS를 넘나들다 보니 종이와 플라스틱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적인 재사용을 통해 폐기물을 방지하는 '제로 웨이스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환경 손익분기점'의 기준에 따르면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20회 가까이 사용해야 친환경에 기여한다고 합니다. 아뿔싸 아까 들고나간 텀블러는 음료를 구매할 때 사용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차에 두고 왔습니다. 이대로라면 그냥 일회용품을 쓰는 것보다 환경을 더욱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곧장 주차장으로 가서 텀블러를 가져옵니다.
엘리베이터가 집으로 올라가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듭니다. 텀블러를 제 용도에 사용하지 못하면서 실천하고 있다고 착각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집니다.
최근에서야 북극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가로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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