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 다시 디깅. 플레이리스트로 일상 기록하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차 시동을 걸어놓고 CD를 고르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 차에는 아직도 CD를 재생할 수 있는 카오디오가 있습니다. 오래되어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많은 일정을 함께하며 수집해온 앨범들을 들려줄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오랜만에 자미로콰이의 'High times' 앨범을 재생해 봅니다. 그 시절 감성, 시원한 디스코 리듬과 에너지가 넘치는 젊은 자미로콰이의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신호 대기 중 잠시 생각에 빠져듭니다. 매번 여름마다 질리도록 듣는 이 앨범, 너무 많이들은 탓인지 6번 트랙의 Virtual Insanity 인트로에서 CD가 튀는 앨범. 음악 스트리밍 계정의 플레이리스트에도 자리 잡고 있는 앨범. '이 앨범은 음대 입시생 시절에 구매했었는데..? 그때 이 앨범을 왜 샀었지?'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무슨 앨범을 사야 될지 모를 때는 best of best 앨범을 사!"
입시생 시절 기타를 알려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다양한 형식의 음반 판매량보다 스트리밍 시장이 압도적으로 큰 현재 음원시장의 흐름으로 인해 원하는 노래를 듣는 것이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내가 원하는 음악이 아닌 내가 원하는 음악과 비슷한 음악을 듣는 일이 많아졌고, 좋아하는 곡과 아티스트를 묻는 말에 대답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부터 추천 차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 모두 같은 말을 합니다.
"요즘 진짜 들을 노래 없다."
맞습니다. 새로 나오고 재미있고 참신한 노래는 많은데 내 마음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노래는 정말 없습니다.
내가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이유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온 플레이리스트를 보고 있자면 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기타 키드를 꿈꾸며 듣던 음악, 록 페스티벌에 빠져있던 시기 혹은 테크니션이 되고 싶어 연습벌레이던 시절의 플레이리스트도 보입니다. 요즘 만들어가는 플레이리스트를 보자면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이 실감 나기도 합니다. 오래된 국내 포크음악과 한창 홍대에서 공연하던 시절의 인디음악을 넣어놓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번 플레이리스트에 들어온 음악은 웬만해서는 지우지 않습니다. 애초에 노래를 넣을 때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연관이 있겠지만 저장되어 있던 음악을 지우게 되면 그 음악을 들었던 순간의 소중한 기억들이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언젠가 운 좋게 길거리를 지나다 다시 듣게 되는 게 아니라면 과거의 음악과 기억은 쉽게 되살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플레이리스트에 넣을 음악은 어떻게 고를까?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음악들을 잡아야 합니다.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이전에는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카페의 직원에게 찾아가 물어보는 일도 잦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일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사무실을 오가며 곡 제목을 적어주시던 직원분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스마트폰의 음원인식이 부정확하던 초기에는 노래의 주요 멜로디를 기억했다가 조용한 화장실에 들어가서 기억한 멜로디를 따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며 잘못 찾아낸 곡들을 모두 들어본 후에야 원하는 노래를 찾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의 인식률이 높아 원하는 음악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찾은 음악이 질려버리기 전에 아티스트가 발매한 모든 음원을 들어보며 하나씩 골라봅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스타일, 목소리, 악기를 알 수 있습니다.
들려오는 음악도 별로.. 무작정 음악을 찾고 싶다면?
Best of best 앨범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존에 내가 듣던 아티스트의 베스트 앨범에는 그동안의 히트곡들이 모여 있습니다. 베스트 앨범의 음악을 하나씩 들어보며 마음에 드는 음악이 처음으로 담긴 앨범을 찾아가면 원하는 스타일의 노래를 찾기 수월합니다. 대부분의 베스트 앨범은 일반적인 앨범보다 많은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수많은 청중에게 검증받은 음악이기에 3분 남짓한 한곡의 재생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작정 음악을 찾는 분들과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분에게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음잘알에게 어울리는 디깅은!
음잘알에게는 디깅이 일상일 겁니다. 디깅이란 DJ들이 플레이할 음악을 고르는 행위를 말합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워 나갑니다. 만약 기존의 방법에 지쳐버린 음잘알 이라면 두 가지 방법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1. 장르별 음악
2. 레이블별 음악
장르별 음악은 좋아하는 음악을 찾을 확률이 가장 높은 방법입니다. 다만 다양한 장르를 이해해야만 원하는 음악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 재즈 안에서도 하위 장르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고도 빈손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블별 음악은 음잘알에게 최적화된 디깅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이블은 추구하는 목표나 색이 뚜렷한 음반 회사를 뜻합니다. 재즈 레이블 중에서는 ECM, 블루노트, 콜롬비아 레코드 등이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아티스트가 한 레이블에서 평생 활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앨범의 발매 시기와 소속 레이블을 주의 깊게 봐야 원하는 음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옛 추억에 빠져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글을 쓰던 중 마음에 드는 음악이 들려옵니다. 글을 쓸 때면 습관적으로 틀어놓는 오디오 채널에서 재즈 기타리스트인 Joe pass의 Jeannine이 흘러나옵니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닮은 오르간 소리가 이웃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 속삭이는 듯합니다.
오늘도 플레이리스트에 한곡이 추가됩니다.
이 곡과 함께 쌓여나갈 추억이 기대되는 새벽입니다.
Joe pass - Jeann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