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미래에 가장 먼저 사라질 능력을 가르치는가?

입시지옥과 사교육 병폐를 끝낼 'KBP 의무화' 혁명(4)

by 아하

입시지옥과 사교육 병폐를 끝낼 'KBP 의무화' 혁명 (4부)


세계는 뛰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지난 3부까지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이 마주한 문제들과 2028 대입 개편안이라는 미완의 처방전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안의 문제에만 몰두하는 동안,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AI 시대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번 4부에서는 잠시 우리의 논쟁을 멈추고 세계로 눈을 돌려보려 합니다. 특히 우리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두 나라,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대학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혁신하는 미국과, 국가의 명운을 걸고 교육 시스템 전체를 통째로 바꾸고 있는 일본. 두 나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당신들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입니까?”


미국의 대역습: 명문대들은 왜 다시 SAT를 부활시켰나?


코로나 팬데믹 시절, 미국 대학 입시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대면 시험이 어려워지자 하버드, 예일 등 대부분의 명문 대학들이 SAT(미국의 수능) 점수 제출을 ‘의무’에서 ‘선택’으로 바꿨습니다. 시험 점수 없이도 학생의 에세이, 추천서, 봉사활동, 고교 내신만으로도 충분히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죠. 많은 이들은 이것이 비싼 SAT 학원을 다닐 수 없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줄 ‘공정한 변화’라고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이 흐름은 거대한 역풍을 맞았습니다. 2024년을 기점으로 MIT, 예일, 브라운 등 최상위권 대학들이 약속이나 한 듯 “다시 SAT 점수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라”라고 선언하고 나선 것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대학들이 ‘시험 선택제’를 몇 년간 운영하며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표준화된 시험 점수가 없는 평가 방식이 오히려 부유층 학생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례: 시골의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 A는 비록 내신 성적은 평범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해 SAT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습니다. 반면, 부유한 도시의 학생 B는 SAT 점수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부모의 도움으로 유명 컨설턴트에게 에세이 지도를 받고 화려한 해외 봉사활동 경력을 쌓았습니다.


‘시험 선택제’ 하에서는 B 학생이 더 돋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들은 깨달았습니다. A 학생의 SAT 점수야말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낸 잠재력을 증명하는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지표일 수 있다는 것을요. 학교마다 다른 내신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과외 활동보다, 모두에게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시험이 때로는 가장 믿을 만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미국 대학들은 과거로 그냥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2024년부터 SAT는 종이 시험이 아닌 ‘디지털 SAT’로 전면 전환되었습니다. 시험 시간은 짧아지고, 지문은 간결해졌으며, 수학 전 영역에서 계산기를 쓸 수 있게 바뀌는 등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혁신도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수능’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를 무조건 비판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그 순기능은 살리면서 부작용은 줄이는 방향으로 혁신할 수 있을까요?


일본의 국가전략: “모든 학생이 코딩을 배우게 하라!”


대학들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 국가의 명운을 걸고 교육 시스템 전체를 일사불란하게 재편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와 디지털 시대에 뒤처졌다는 위기감 속에서, 일본 정부는 ‘소사이어티 5.0’이라는 미래 국가 비전을 선포하고, 교육 개혁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 가장 강력하고 상징적인 조치가 바로 2025년부터 대학입시(공통테스트)에 ‘정보(情報)’ 과목을 신설하고, 모든 국공립대 지원자가 필수로 치르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컴퓨터 활용 능력(문서 작업, 인터넷 검색 등)이 아닙니다. 프로그래밍의 기본 원리,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기초, 정보 보안 등 AI 시대의 핵심 소양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공개된 예시 문제를 보면, ‘월드컵 경기 데이터를 분석해 승리 요인을 찾아라’, ‘선거 의석수 배분 방식을 코딩으로 구현하라’와 같이, 정보과학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직접적으로 측정합니다.


대입 시험을 지렛대로 삼아, 국가 전체의 디지털 교육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려는 강력한 국가 전략인 셈입니다. 이러한 시험 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GIGA 스쿨 구상’이라는 이름 아래, 전국의 모든 초·중학생에게 1인 1대의 태블릿 PC를 보급하고 모든 학교에 초고속 통신망을 구축하는 대규모 투자를 이미 마쳤습니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교사 연수, AI 활용 가이드라인 보급 등 소프트웨어까지 국가가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육에 던져진 두 개의 질문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사례는 대한민국 교육에 두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우리는 ‘표준화 시험(수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미국 최상위권 대학들의 ‘SAT 회귀’는 표준화 시험이 때로는 교육 기회가 부족했던 학생들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가장 ‘공정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수능의 문제점만 비판하며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 능사일까요? 아니면 수능을 디지털화하고 평가 방식을 혁신해, 그 공정성의 가치를 되살리는 길을 찾아야 할까요?


둘째, 교육 개혁은 누가,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


미국처럼 개별 대학의 자율과 혁신에 맡겨 시장 중심의 점진적 변화를 유도해야 할까요? 아니면 일본처럼 국가가 거대한 비전 아래 대입 제도와 교육과정, 인프라까지 일관된 방향으로 이끄는 강력한 개혁을 추진해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AI가 쓴 그럴듯한 보고서와 학생의 진짜 실력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정교한 평가 시스템 설계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AI 시대의 교육 개혁은 단순히 제도를 바꾸는 것을 넘어, ‘미래에 필요한 역량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역량을 어떻게 공정하게 측정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우리 사회가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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