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고비 월 30만 원 시대를 열다
미국의 건강보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민간 보험이 바로 그것인데요.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에는 15~20개의 주에 한해서 비만 치료제가 보험 혜택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민간 보험에는 비용 부담 때문에 비만 치료제에 보험 혜택이 거의 제공되지 않고 있고, 65세 이상 노인 및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어 또한 2003년에 제정된 법에 따라 ‘체중 감량만을 목적으로 하는 약물’에 대한 처방 지원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요.
다만 특정 비만 환자에 대해서는 메디케어의 보험 혜택이 제한적으로 허용됩니다. 2024년 3월, 미국 FDA가 위고비를 ‘비만 환자의 심혈관 질환 위험 감소’ 목적으로 승인했는데요. 이제 메디케어는 심장 질환과 같은 다른 합병증이 있는 비만 환자에 한해서는 위고비 처방 비용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2022년 IRA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기점으로 제약사와 메디케어 약가 협상이 가능해졌습니다. 기존에는 정부가 약 가격에 관여할 수 없었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제약사와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것인데요. 제약사가 정부의 협상 가격을 거부하면, 해당 약물 매출의 최대 95%를 세금으로 내거나 메디케어 시장에서 아예 철수해야 하므로 강제성이 높습니다.
2025년 1월, 정부는 2차 약가 협상 대상 품목 15개를 발표했는데, 여기에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 등 비만 치료와 연관된 GLP-1 약물들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11월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제약사 간의 파격적인 합의가 발표되었습니다. 위고비와 젭바운드 같은 핵심 비만 치료제 가격을 기존 대비 절반 이하인 월 245달러 수준으로 낮추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사가 아닌 알약 형태의 비만 치료제가 출시될 경우, 초기 용량을 월 149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공급하기로 선제적 합의를 마쳤습니다. 일반적인 알약 제조 공정은 훨씬 단순하며, 실온 보관이 가능해 냉장 유통이 필요 없으므로 더 저렴한 가격으로 책정되었습니다.
가격을 낮추는 대신에 해당 제약사들은 3년간 의약품 관세를 면제받는 혜택을 얻었습니다. 또 가격은 낮아지지만, 정부가 보증하는 많은 수의 고객층이 생기므로 제약사 입장에서는 이윤은 적지만 대량으로 팔 수 있는 ‘박리다매’ 전략이 가능해집니다. 이 협상 결과가 실제 보험 적용 범위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바로 2026년부터 본격화됩니다.
MAHA는 비만을 공중보건의 핵심 의제로 다룹니다. 흔히 개인의 실패라고 여겨지던 비만을 가공식품 시스템, 환경적 요인, 유전적 대사 불균형이 결합된 ‘사회적 질병’으로 정의합니다. 비만으로 인해 파생되는 당뇨, 고혈압, 심혈관 질환 치료에 들어가는 메디케어 예산이 천문학적이므로,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죠.
그동안 비만 치료제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공급 부족 문제가 2026년에는 대규모 생산 시설 완공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노보노디스크의 경우, 주사기에 약물을 주입하고 포장하는 ‘충전 및 마감’ 공정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는 거대 위탁생산 업체인 ‘카탈렌트’ 인수가 완료됩니다.
현재 노보 노디스크는 노스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이미 큰 공장을 가동 중이며, 인디애나 등 카탈렌트의 주요 공장들을 흡수해 미국 내 생산 능력을 2026년까지 2배 이상 키우려 하고 있습니다. 위고비의 폭발적인 수요를 맞추기 위해 ‘위고비’만을 위한 대규모 증설 라인이 24시간 체제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의 경우, 인디애나와 노스캐롤라이나 등에 건설 중인 스마트 팩토리들이 2026년 대거 완공됩니다. 스마트 팩토리는 제조 공정 자체가 AI와 자동화 로봇으로 구성되어, 약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확 줄어들 예정인데요. 일라이 릴리의 CEO는 “2026년이면 우리가 시장의 수요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2026년이 미국 시장에서 비만 치료제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낮은 가격에 비만 치료제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메디케어의 보험 혜택 확대가 마중물 역할을 하여 메디케이드 및 민간 보험으로 변화가 퍼져 나가는 구조인데요. 미국 의료 시장에서, 메디케어는 기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복지부는 메디케이드에서도 비만 치료를 ‘필수 혜택’으로 포함하도록 주 정부들에 강력히 권고하거나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을 검토 중입니다. 현재 약 15~20개 주에서 제공하던 혜택이 2026년에는 30개 주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민간 보험 또한 초반 몇 개월 간에는 높은 본인 부담금이 있지만, 장기 복용할 시에는 약값을 낮춰주는 형태의 보험 상품이 2026년에 대거 출시될 예정입니다. 이를 HDHP(고액 공제 보험) 스타일의 상품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도 비만치료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될까요? 현재 한국에서 위고비나 젭바운드는 한국에서 비급여 품목입니다. 즉, 환자가 약값을 100% 본인 부담해야 하며, 한 달 처방비는 약 50만 원~80만 원 선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비만을 질병으로 보는 시각에는 동의하지만, 건강보험 재정 부담 때문에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민간 보험이 주축이라 정부가 약가 협상만 잘해주면 보험사들이 알아서 경쟁하는 구조지만, 한국은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단일 체제입니다. 현재 한국 건강보험은 고령화로 인해 이미 적자로 돌아섰거나 고갈 위기라는 경고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비만보다는 중증 암이나 희귀질환에 돈을 먼저 써야 한다는 압박이 매우 큽니다.
또, 미국은 비만 치료제를 보험으로 지원해서 돈이 나가더라도, 그 공장에서 나오는 일자리와 세수로 다시 정부에 돌아오는 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입 물량에 의존하므로 보험금은 고스란히 외국 제약사로 들어가 한국 경제에는 남는 게 없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비만 치료제가 저렴해지려면, 국내 제약사가 비슷한 복제약을 만들어내거나,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에 생산 기지를 두는 수준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선은 초고도비만 및 합병증 환자 위주로 건강보험 혜택에 대한 제한적인 논의가 들어갈 확률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