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만에 임상 승인? 문턱 낮추는 FDA와 중국
미국의 FDA 신약 승인 기준이 2026년부터 완화될 예정입니다. 그동안 FDA는 신약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서로 독립된 2개의 대규모 3상 임상 시험 결과를 요구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새로 취임한 마티 마카리 FDA 국장은 앞으로 1개의 임상 시험만으로도 승인이 가능하도록 기본 원칙을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임상 시험 횟수를 줄여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하려는 의도입니다. 적절하게 설계된 1개의 임상 시험만으로도 임상 시험 2개와 동일한 통계적 신뢰도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인데요.
최근 중국은 특정 요건을 갖춘 혁신 의약품에 대해 임상 시험 계획 승인 기간을 기존 60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임상 진입 단계에서의 병목 현상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건데요.
실제로 2024년 승인된 신약의 약 66%가 이미 1개의 임상 시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승인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발표는 그동안 예외적으로 허용하던 방식을 원칙으로 바꾸겠다고 선포한 것과 다름없는데요.
그러나 모든 약에 대해 기준을 낮추면 약의 유효성이나 안전성을 검증하는 문턱이 너무 낮아질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의견 차이로 인해 FDA의 심사관인 리처드 파즈두르가 사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합니다.
사실 신약 승인 기준의 허들이 낮아지는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인데요. 희귀 질환이나 말기 암 치료제의 경우, 2상까지만 마친 데이터를 근거로도 승인을 내줍니다. 일단 시장에 출시해서 환자들을 살리고, 3상은 천천히 하라는 방식입니다.
또한 중국은 대조군을 설정하기 어려운 희귀암 등의 분야에서는 대조군 없는 '단일군 임상 시험을 인정합니다. 2025년 9월부터는 ‘혁신 신약 임상 시험 30일 승인제'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기존 60일이 걸리던 임상 시험 계획 승인 기간을 30일로 줄인 것입니다.
중국은 하이난성을 특구로 지정하여, 정식 승인 전인 약물을 미리 환자에게 사용하게 하고 여기서 나온 실제 치료 결과를 정식 승인 심사 자료로 인정해 주는 파격적인 실험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이난성 안의 '보아오 러청 의료관광 특구'에서는 중국 전체에서 아직 허가되지 않은 최신 해외 신약이나 의료기기를 이곳에서는 가장 먼저 환자에게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며 쌓인 데이터를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에 제출하면, 정식 임상 시험을 대체하거나 기간을 대폭 단축해서 중국 전역에 출시할 수 있게 해줍니다.
유럽 연합의 유럽의약품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는 조금 보수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이미 신규 승인 약물의 약 45~46%가 단일 임상만으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특히 항암제나 면역조절제 분야에서는 이 비율이 74%에 달합니다. 앞으로 유럽도 미국 FDA의 파격적인 행보에 자극을 받아 'ACT EU'라는 이니셔티브를 통해 임상 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기간을 단축하는 개혁을 해나갈 예정입니다.
한국의 식약처는 어떨까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나 희귀 질환의 경우, 2상 결과만으로도 우선 시판을 허가하고 나중에 3상 결과를 제출하게 합니다. 이는 2022년 9월부터 본격화되었는데요. 식약처는 GIFT(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라는 제도를 통해 심사 기간을 25% 단축하고, 임상 데이터가 완벽히 갖춰지기 전이라도 유연하게 심사를 진행하여 환자들이 더 빨리 약을 쓸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승인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안전성과 신뢰성 측면의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에는 속도만큼 정확성도 중요한 요소인데요. 임상 시험 규모가 작아지거나 기간이 짧아지면, 수천 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는 희귀 부작용이나 장기 복용 시의 독성을 잡아내기 어렵습니다.
또한 '조건부 허가'는 나중에 확증 데이터를 제출한다는 약속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시장에 일단 출시되고 나면 제약사가 이를 미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FDA 가속 승인을 받은 약물 중 상당수가 5년이 지나도록 유효성을 최종 입증하지 못한 채 시장에서 계속 팔리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중국의 경우처럼 대조군 없이 약만 투여하는 단일군 임상을 인정하는 방식도 우려할 만합니다. 명확한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환자가 좋아진 것이 정말로 약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 때문인지 확실하게 가려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신약 개발의 속도와 안전, 두 가지 모두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안전의 사각지대에 대해 꾸준히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경계하는 신중한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