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보다 싼 ‘악마의 음료’, 그 인기가 사그라진 이유
츄하이는 소주와 하이볼의 합성어로, 일본의 희석식 소주나 보드카에 탄산수와 과즙을 섞은 술을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스트롱은 보통 알코올 도수가 7~9% 정도로, 일반적인 맥주나 츄하이(3~5%)보다 훨씬 도수가 높은 제품군을 일컫습니다.
츄하이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도수가 높아, 적은 돈으로 빠르게 취하고 싶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맥주에 비해서 세금이 낮고, 원재료가 저렴하므로 가격 차이가 확연히 납니다. 도수가 10도가 넘어가면 세금을 더 내게 되기 때문에 10도를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일반 맥주 350ml 한 캔이 약 200~250엔인 반면, 스트롱 츄하이는 같은 용량에 약 100~150엔입니다. 500ml 대용량 캔도 150~200엔 내외면 충분히 구매가 가능합니다. 맥주 한 캔 마실 돈이면 스트롱 츄하이를 두 캔 살 수 있는데, 알코올 도수는 2배 정도 높습니다. 돈은 반값인데 취기는 4배나 빨리 오는 셈입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산토리 스트롱 제로가 있습니다. ‘당류 제로’를 내세워 건강을 생각하는 듯한 마케팅을 펼쳤지만, 높은 도수 때문에 ‘악마의 음료’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기린 빙결 스트롱이라는 음료도 있습니다. 과일을 얼려 즙을 내는 공법을 사용하여 신선한 과일 맛을 강조한 라인업입니다.
스트롱 츄하이는 고도의 정제 기술을 통해 알코올 특유의 역한 냄새를 줄이고, 강한 탄산과 과일 향으로 알코올 맛을 감췄습니다. 술이 약한 사람이나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주스처럼 마시다가 순식간에 취하게 됩니다. 이 점이 오히려 알코올 의존증으로 이어지는 위험 요소가 되었습니다.
스트롱 츄하이로부터 파생된 블랙코미디 문학까지 탄생했는데요. 일본 SNS에서는 스트롱 츄하이를 마시고 현실의 고통을 잊는 과정을 애잔하게 묘사한 글들이 유행하며 ‘스트롱제로 문학’이라는 밈이 생겨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스트롱 츄하이가 “빈곤이 만들어낸 술”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유행이 정점에 달했을 때, 일본의 정신과 의사들은 스트롱 츄하이를 두고 마약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죠.
대형 주류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고도수 제품 생산을 줄이기로 결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2024년 2월에 발표한 ‘건강에 배려한 음주 지침’은 생활 습관병 예방을 위해 하루 알코올 섭취량을 엄격히 제한할 권고했는데요. 이 기준은 스트롱 츄하이 한 캔을 훌쩍 넘기는 기준이었습니다.
지침에 따르면 하루에 20g 이상의 알코올을 섭취할 경우 대장암, 남성의 경우 전립선암의 발병 위험이 높아집니다. 여성의 경우 하루 14g 이상의 알코올 섭취는 유방암 발병 위험을 높입니다.
비판이 거세지자 스트롱 츄하이 제조사들은 큰 압박을 느꼈습니다. 스트롱 츄하이의 생산 중단 및 축소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것은 2024년 초부터입니다. 2024년 1월, 아사히 맥주는 “향후 알코올 도수 8% 이상의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겠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2024년 2월에는 아사히에 이어 삿포로 맥주 역시 도수 8% 이상의 신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기존 제품도 단계적으로 축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린 맥주 또한 완전 생산 중단은 아니지만, 도수를 낮춘 제품 라인업을 강화하며 사실상 고도수 제품의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결국 2024년을 기점으로 제조사들이 ‘탈 스트롱’을 선언하면서 스트롱 츄하이의 인기는 점점 떨어졌습니다. 편의점이나 마트 매대에서 9%대의 스트롱 츄하이가 차지하던 자리가 3~5%대의 가벼운 츄하이나 논알코올 제품으로 빠르게 교체되었는데요.
그런데 잠깐, 이 스트롱 츄하이, 얼핏 보면 한국의 ‘과일소주’와도 비슷하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과일소주가 술자리에서 술이 약한 사람을 위해 주문하는 술이지만, 일본에서는 고단한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사서 집에서 혼자 마시는 ‘혼술용’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싸고 빠르게 취해서 현실의 괴로움을 잊으려는 도피성 소비가 많아, 알코올 의존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더 높지요.
하지만 ‘싸고 빠르게 취하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몽롱한 취기 대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최근의 글로벌 트렌드는 “sober curious”입니다. 바로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마시지 않는 삶을 궁금해하고 실천하는 태도”를 뜻하는데요. #SoberCurious는 틱톡 등 SNS에서 크게 유행하는 태그입니다. 술에 취해 실수하는 모습보다 맑은 정신으로 아침 운동을 하거나 취미에 집중하는 모습이 더 멋지다고 여겨지는 것이죠.
심지어 미국의 경우 2025년 조사에서 성인 음주율이 54%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올해는 작년보다 술을 덜 마시겠다”고 답했습니다. 맥주의 나라인 독일조차 맥주 판매량이 10년 전보다 13억 리터나 줄었고, 대신 무알코올 맥주 종류가 800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일본도 무알코올 음료 판매량이 15년 전보다 6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과거에는 술을 못 마시면 분위기를 망친다고 생각했던 반면, 지금은 건강을 우선한다는 태도가 당당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신년 계획에도 1월은 술을 마시지 않는 달이라는 목표를 포함시키는 것이 유행입니다. 전 세계 무알코올 및 저알코올 음료 시장은 매년 약 5~7%씩 성장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으로 시장 규모가 약 2,1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며 빠르게 취하기를 반복하던 시대는 가고,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소버 큐리어스’의 시대가 왔습니다. 여러분의 새해 계획에도 어떤 건강한 다짐들이 담겨 있는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