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줄 3 : 의학적 용도가 인정된 등급
최근 미국 마약단속국(DEA)이 대마초를 ‘스케줄 I(가장 위험한 등급)’에서 ‘스케줄 III(의학적 용도가 인정된 등급)’로 재분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데요.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https://www.phcppros.com/articles/15037-cannabis-grow-facility-design-101-part-1
사실 미국은 대마에 꽤나 관대한 나라입니다. 대마초가 ‘완전 합법’인 주는 24개이며, 워싱턴 D.C도 포함되죠. 현재 미국 전체 주의 80% 이상인 40개 주가 어떤 형태로든 의료용 대마초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이다호와 캔자스는 여전히 의료용으로조차 허용하지 않는 가장 엄격한 주로 남아 있지만요.
그렇다면 미국의 스케쥴 등급 분류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미국의 통제물질법은 약물을 남용 가능성, 의학적 효능, 안전성에 따라 1~5등급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여기서 3등급은 미국 연방 정부가 대마의 등급을 ‘의학적 가치가 있는 약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헤로인과 동급인, 의학적 가치가 없는 스케줄 I 등급에서 스케줄 III(타이레놀&코데인, 케타민과 동급)로 두 단계가 바뀌는 겁니다.
그렇다면 대마에는 어떤 의학적 효능이 있길래, 스케쥴 3로 재분류하려는 걸까요?
대마 안에는 수백 가지 성분이 있는데, 그중 핵심인 THC(환각 작용)와 CBD(진정 작용)가 특정 질환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 사례는 난치성 질환인 희귀 뇌전증 치료입니다. 기존의 일반적인 약물로는 전혀 조절되지 않던 소아 뇌전증 환자들에게 대마에서 추출한 CBD 성분을 투여한 결과, 발작 횟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기적 같은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에피디올렉스’는 대마 성분으로 만든 최초의 FDA 승인 전문 의약품입니다.
또한, 대마는 항암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완화하는 데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입니다. 암 환자들이 항암제 투여 후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증상이 심한 구역질과 구토인데, 대마 성분은 뇌의 특정 수용체에 작용해 이러한 증상을 억제하고 식욕을 증가시킵니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마리놀’과 같은 약물이 암 환자의 구역질 치료나 에이즈 환자의 거식증 개선을 위해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마는 만성 통증과 근육 강직 분야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대마의 진통 효과는 펜타닐 같은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에 비하면 약하지만, 그만큼 중독성이나 치명적인 부작용이 적어 만성 통증 환자들에게 훨씬 안전하다고 할 수 있죠.
특히 다발성 경화증 환자들이 겪는 극심한 근육 경련과 뻣뻣함을 완화해 주는 효과가 뛰어나며, 이를 이용한 ‘사티벡스’ 같은 약물이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의학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대마는 지금까지 스케쥴 1급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정치적, 인종적 측면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1970년대 닉슨 행정부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와 흑인 인권 운동으로 혼란스러웠는데, 닉슨 대통령은 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마가 그 목적에 부합하는 약물로 이용되었던 것이죠.
닉슨의 보좌관이었던 존 에를리히만은 훗날 인터뷰에서 반전 단체의 상징인 ‘대마초’와 흑인의 상징인 ‘헤로인’을 범죄화함으로써 그 공동체를 파괴하고 지도자들을 체포할 명분을 만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즉, 대마초를 1급 마약으로 지정한 것은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반대 세력을 탄압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였던 셈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종차별적 낙인입니다. 1930년대부터 미국에서는 대마초를 멕시코 이민자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연결해 위험성을 과장하려 했습니다. 대마초를 피우면 백인 여성을 공격하거나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식의 공포 영화인 ‘리퍼 매드니스’와 신문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마리화나(Marijuana)’라는 대마의 스페인어 이름도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널리 퍼뜨려졌습니다. (참고로 대마의 영어 이름은 cannabis입니다.)
그렇다면 대마의 스케쥴 3 등급 변경으로 무엇이 달라지게 될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마가 ‘마약’에서 ‘의약품’ 후보군으로 신분이 상승하게 됩니다.
먼저 세금 혜택이 생깁니다. 그동안 대마 관련 기업들은 불법 약물을 취급한다는 이유로 사업 비용을 세금 공제받지 못했습니다. 스케쥴3 등급으로 바뀌면 일반 기업처럼 세금 공제가 가능해져 수익성이 좋아집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연구 또한 가능해지는데요. 스케쥴1 등급일 때는 연구용 대마를 구하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지만, 3급이 되면 대학이나 제약사가 임상 시험을 훨씬 쉽게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대형 제약사들도 대마 시장에 참전하게 됩니다. 대마 기반 의약품이 ‘합법적 처방약’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거대 제약사들이 본격적으로 약을 개발하고 FDA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겁니다.
정말로 대마가 미국에서 스케쥴3 등급이 될지, 그리고 이로 인해 바뀔 제약산업의 양상은 어떨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