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전화가 왔다.
“선생님, OOO 환자 드레싱 좀 해주세요.”
“오늘 제 담당 아닌데요?”
“아, 네! 알겠어요.”
짧은 통화가 끝이 났다. 일을 부탁하고, 오늘은 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납득하는 아주 간략한 대화라는 걸 모두가 이해했을 거다. 단, 이게 새벽 4시에 온 전화라면 어떨까?
보통 새벽의 업무는 그날 당직이 한다. 그래야 돌아가면서 적절한 수면을 취해 다음 날 업무를 대비하지 않겠나? 해당 날짜의 담당자를 정리한 내용을 모든 병동에 보낸다. 매달 말마다 다음 달의 당직을 말이다.
이렇게 준비하더라도, 당직이 아닌 사람에게 전화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해와 별개로, 새벽 4시에 전화 오면 당혹스럽다. 잠은 잠대로 다 깨기에, 출근하기 전까지 다시 잠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덤이고. 서로의 배려를 위해서 만든 걸 확인도 안 하면 어쩌자는 건가? 이 시간에 전화해서 “아, 네! 알겠어요.”하고 본인 볼일만 보면 끝나는 문제인가?
수면 부족으로 다음날 근무가 쉽지 않음이 예상된다.
“드레싱 카드 좀 봐요. 거기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물어보세요? 볼 줄 아시지 않나요?”
중환자실에 환자 드레싱 하러 갔다가, 어떤 환자냐 어디 부위냐 질문했다가 받은 대답이다. 뻘쭘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고. 이제 안면도 텄겠다. 물어볼 수도 있긴 하잖아?
뭐 그래도 맞는 말이긴 하니깐, 그녀의 말대로 확인하고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리고 환자 앞으로 가서 물품들을 하나씩 세팅했다. 지나가다 나를 본 수간호사 선생님이 대화를 걸었다.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건가요?”
“드레싱 하라고 하던데요? 카드 보니깐 이 환자분 해야 한다고 표기되었더라고요.”
“네? 이분, 오늘 안 해도 돼요.”
옆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나에게 타박했던 그분. 수간호사 선생님 말을 듣고도 그 어떤 말도 없더라. 질문했을 때, 같이 한 번만 체크했더라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그날따라 일이 좀 많았다. 2층 병동에 갔다가 7층 병동을 향했고, 그러다 중환자실로 뛰어가기도 하다, 3층에서 연락이 오는 등 온갖 병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연락 오던 날이다.
하나씩 처리하다, 코로나 병동에 들어가게 되었다. 방호복을 입고 있던 찰나, 또다시 콜이 왔다. 심전도 검사를 해달란다. 심전도 검사는 루틴하게 진행하는 것도 있지만, 때에 따라선 응급으로 진행한다. 방호복을 거의 다 입은 상황이긴 하다만, 급박한 일이라면 옷을 벗고 그 병동으로 가야 한다. 그렇기에 물어봤다.
“혹시나 급한 일인가요?”
그 말에 대해 돌아온 대답은 다음과 같다.
“네? 뭐, 언제 오시려고 그런 걸 물어보시는데요?”
꼬고 꼬고 완전히 비꼬아서 돌아온 대답에, 순간 분노가 치솟더라. 좋게 말하는데,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가?
“선생님, 급한 일이냐고 물어본 말이 그렇게 기분 나쁘신가요?”
위의 [뭐 언제 오시려고요?]와 이어지는 이야기다.
급하지 않은 심전도 검사란다.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 병동에 들어가서 일을 끝낸 후, 해당 검사를 요청한 그 병동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생각했다. 솔직히 화난다. 화내고 싶다. 그래도, 일단 내 일이니깐 한 번만 참자. 딱 한 번만! 참을 인을 100번 쓰면 살인을 면한다고 하잖아? 참자. 참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전화했던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아까 말했던 그 환자분, 심전도 검사 진행하면 되죠?”
“네”
그 대답 한마디를 듣고, 심전도 기계를 이끌고, 환자 앞에 도착했다. 검사를 진행하려고 하던 찰나, 간호사가 와서 다시 이야기하더라.
“아, 아까 연락받았는데, 검사하지 말래요. 취소할게요.”
딱 할 말 하고, 돌아가더라.
수많은 환자가 있기에 헷갈리는 걸 방지하고자, 그리고 해당 업무가 맡는지 재확인 차원에서 검사 실시 전에 한 번 더 묻는 편이다. 그렇게 하면 실수를 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니깐. 물어봤을 때, 확인하고 말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네? 뭐, 언제 오시려고 그런 걸 물어보시는데요?”라는 대답도 그렇다. 다양한 일을 요청받는 입장에선 우선순위에 따라 처리해야 하는 만큼 “혹시나 급한가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지 않나?
물어보는 거에 대해선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들리는 형태로 돌려주거나,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같이 일하겠는가? 결국 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정말 빡쳤고, 솔직히 세게 말을 던지고 싶었는데, 참을 인을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썼다.
말조차 걸기 싫었기에.
“선생님, 환자분 구토해요”
긴급하게 온 전화였다. 그에 대해 나는 질문하기 시작했다.
“구토 양상이 어떠시죠? 피나 음식물이 같이 섞여 있나요?”
“구토 양은 얼마나 되죠?”
“지금 열이 나거나 추위를 호소하나요?”
“복통이 있거나 그러진 않나요? 다른 증상들은 없다고 하시나요?”
감별하기 위해,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역시나 우선순위 때문이다.
일이 밀렸다. 영상의학과에 직접 찾아가 컨펌받아야 할 긴급한 일이 생겼고, 타과 협진 써야 할 게 무려 10개가 넘어갔다. 환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질환 감별 또한 해야 했고, 다음날 처방도 내야 했으며, 경과 기록지 및 입원 기록지도 써야 했다. 퇴원 환자가 생겨, 퇴원 처방 및 퇴원 등록도 진행해야 했고, 입원 환자가 생겨 검사 처방을 준비해야 했다. 멀티태스킹으로 머리를 불태우니 배조차 고프지 않더라. 사실, 시간이 없어서 점심을 챙겨 먹지도 못한 것도 있고.
하여튼 그러다 보니, 일단 수많은 일 중에 우선순위가 어떻게 되는지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자꾸만 화만 내고 원하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아니, 토했다니까요. 빨리 어떻게 좀 해주세요.”
“제가 직접 본 게 아니라 간병인이 말해줬어요.”
결국엔 나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저랑 싸울까요?”
“제가 뭐라고 했나요? 필요한 내용 여쭤본 게 전부잖아요? 언성을 좀 낮추시죠?”
“제가 안 간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반응하시나요?”
“정확히 파악하려고 여쭤보는 거잖아요? 선생님도 저한테 답을 얻으려고 전화하신 건데 정보도 안 주고 토만 했다고 하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곽경훈 선생님이 쓰신 [날마다 응급실]에 이런 말이 있다.
(56쪽) 의사와 간호사의 관계는 독특하고 흥미롭다. 진료를 진행하려면 반드시 협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대면하고 밀접하게 연관하여 대부분은 친밀하고 우호적이다. 그러나 묘하게 ‘지켜야 할 선’이 있으며 아주 사소한 일로도 관계가 뒤틀려 심각한 내전에 돌입할 수 있다.
(57쪽) 의사에게는 진료 과정에서 간호사를 지휘하고 감독할 권한이 있을 뿐 우두머리 노릇을 할 자격은 없다. 경험 많은 간호사가 인턴이나 1년 차 레지던트의 군기를 잡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 위의 이야기는 간호사들과 있었던 일화들이다. 혹시나 말하자면, 모든 간호사가 그런다는 건 절대 아니다. 일하면서 친해진 분들도 꽤 있고, 그들이 해주는 온갖 배려에 감사한 일이 셀 수 없이 많다. 위의 내용들은 극소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어찌 되었든, 극소수의 사람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 나도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마냥 그러지 못한 경우들도 꽤 있다. 피할 수 없는 갈등을 마주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갈등을 스스로 잘 해결하는 편이라고 자부하진 못하겠다만, 돌이켜 보더라도 지금까지의 선택들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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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간단하다. 명확하고 깔끔한 대처를 위해서다.
당직 표도 확인하지 않고 새벽 4시에 전화해서 용무만 보는 이, 업무에 대해 재확인을 해주지 않고 핀잔을 주는 이 등 이런 사람들을 마주했다고 무조건 화를 내는 건 정답은 아니다. 물론 낼 수 있다. 그래도 되지만, 제일 좋은 건 일단 상황을 다시 되새기는 거다. 숨을 고르면서 차분한 상태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다시 돌아보자. 그러고 나서 판단하고 행동하자.
참는 게 절대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인내심을 발휘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 대신 무조건적인 분노보단 차갑고 냉정하게 대응하는 걸 추천한다. 감정적으로 되돌려준다고 해서, 해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역으로 돌아올 수 있고.
나는 가능하면 화를 최대한 참아낸다. 내가 한 말에 대해 비꼬아 대답하고, 일을 번거롭게 해도 일단은 참을 인을 써본다. 그때 분노를 폭발해봤자 좋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참은 인을 수없이 반복해서 마음속에 쓴 이후에도 할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땐 피하지 않는다. 대신 분노를 내포하지 않고, 냉철하게 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화를 내서 감정을 해소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찌 되었든 일을 해결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니깐.
그렇지만 나 역시 사람이다. 분노를 조절하더라도, 감정이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때도 꽤 있다. 그럴 때 선택하는 건 글쓰기다. 물론 써 내려간다고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부정적인 감정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군 대체복무인 공중보건의사를 끝내고, 인턴, 레지던트까지 총 5년 일했다.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마주했다. 욕하는 이. 멱살 잡고 따지는 사람.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는 환자. 도둑놈 취급하는 할머니. 어떻게든 해내라며 억지를 부리는 할아버지. 딱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을 시키려는 상사. 자신의 업무를 떠넘기려는 직원들. 다양한 이를 접하며 화가 점차 커져만 갔다. 아쉽다고 여기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글쓰기로 나를 다시 되돌려 놨다.
글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때는 떠올렸다.
나 역시 짜증을 내고 화내는 등으로 누군가에게 부정적 감정을 쏟아내는 사람은 아닌가?
위의 질문을 통해 나 자신을 계속 돌이켜봤다. 왜냐고?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직장 내부의 갈등으로 분노가 넘쳐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바로 분노를 표출하지 말고 딱 한 번만 더 생각하자. 이 상황을 다시 복기하자.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내가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인지, 아니면 참고 넘어가야 하는 건지.
이때 참는 게 무조건 답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말이 안 된다면 터트려야지만, 욕하고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서 싸움에 이르기까지 가라는 건 아니다.
차가운 머리로 냉정하게, 논리적으로 할 말을 다 하는 등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다독이면서 좋게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설득하는 방식도 있다.
이런 대처법들은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 다르다는 걸 떠올리자. 하여튼 분노를 무조건 터트린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많은 이들이 잘 알거라 여긴다.
오늘도 화가 넘치는 그대들에게.
그 분노를 충분히 이해한다.
부디, 잘 해결해서 퇴근한 후엔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길.
다음날 출근할 땐 약간이라도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를 화나게 하는 것들을 물 흐르듯 넘길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다.
출처, 뼈 있는 아무 말 대 잔치, 38. 분노가 솟구쳐 오를 때, 285-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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