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마주했던 그녀가 가끔 생각난다. 그녀와의 첫 조우는 중환자실이다. 처음 보자마자 든 생각은 바로 이거다. 정말 미인이다. 볼 때마다, 여러 생각이 문뜩 들게 만드는 그녀였다. 긴 생머리에 너무나도 하얀 얼굴. 평소에는 무심한 표정으로 있다가도, 살짝 웃으면 빛이 나는 미소. 대학생이었다면, 캠퍼스의 수많은 남학생에게 호감을 받았겠다고 장담할 수 있다. 병원이 아닌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도 그녀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계속 만나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을 알게 된다. 양쪽 손목에 나 있는 시퍼런 멍이다. 그 흔적들은 수많은 검사 때문에 발생한 거다. 그 검사는 바로 ABGA다.
Arterial blood gas analysis, 요약해서 ABGA, 한글 말로는 동맥혈 가스 검사라고 불린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환자의 산소 공급 상황과 산·염기 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때에 따라선 수술 전 환자 신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자 해당 검사를 시행한다. 손목의 요골동맥 (radial artery)을 통해 이루어지는 ABGA는 왼손의 2, 3번째 손가락으로 맥박을 확인하여 요골동맥 위치를 체크한 후, 오른손으로 45도 각도를 이룬 동맥혈 채혈주사기를 찌르는 것으로 검사가 이루어진다. 그럼 자연스럽게 피가 주사기에 차게 되고, 충분한 양의 혈액이 뽑히면 지혈과 동시에 기계를 통해 빠르게 분석하여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면 된다. 만약에 요골 동맥의 맥박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경우 팔오금의 상완동맥 (branchial artery), 발등의 발등동맥 (dorsalis pedis artery)에서 채혈하게 되고, 그곳들에서조차 맥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면, 사타구니에 위치한 대퇴동맥 (femoral artery)에서 피를 뽑게 된다.
말만 들으면 쉬워 보이나, 동맥을 찾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두 손가락에 의지하여 몸속 깊이 위치한, 보이지 않는 혈관을 오로지 맥박 하나로만 파악해야 한다는 건 초창기 인턴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찔렀는데 피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만큼 무서운 일이 없다. 다시 해야 하니깐. 그로 인해 피해를 보고 고통을 느끼는 건 환자의 몫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커지고,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속도도 빨라지며, 또다시 실패할까 두려워진다. 하필이면, 그녀는 초짜 인턴들이 많은 시기에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였다. 호흡곤란을 주소로 내원한 만큼 하루에도 무수히 검사를 시행하는 건 당연했고, 더불어 인턴들의 잦은 실패로 하나의 검사에 대해서도 최소 2~3번 정도 추가로 술기를 진행하다 보니, 그녀의 양 손목은 멍 자국으로 가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ABGA요.”
“인턴 쌤, 중환자실 ABGA요.”
“선생님, 2시간 전에 그분 ABGA 다시 부탁해요.”
“쌤, 이분 ABGA 한 번 더 하라고 하네요.”
“인턴 선생님, 또 해 주세요.”
“쌤 아까 그분요.”
“선생님…….”
그렇게 그녀만을 위한 전화가 올 때마다, 미안함이 자꾸만 커졌다. 이제야 한 번에 채혈을 성공하지만, 멍 자국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나의 속마음을 읽었던 걸까? 나를 볼 때마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괜찮아요. 편하게 해요. 안 아파요. 그 말들과 함께 살짝 웃어줬다. 안쓰러웠고, 죄책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전화가 왔다. 일반 병실에 있는 환자에 대한 업무를 해달란다. 수없이 해나갔다. 소변 뽑는 것, 대변 누는 걸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한 관장, 혈액을 뽑아서 동맥혈 검사하는 거나 균 배양하기, 심전도 검사 등등 말이다. 그렇게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다, 정신을 점점 놓으려고 할 때쯤, “의사 선생님”이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예상치 못한 이를 마주했다. 중환자실에 있어야 할 그녀였다.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일반병실로 옮겼고, 오늘 퇴원 준비를 한단다. 트레이드마크인 밝은 웃음과 함께 나에게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저 때문에 아주 힘들었죠?”
“아니요. 오히려 환자분이 더 많이 힘드셨을 텐데……. 이제 몸이 많이 좋아지셨나 봐요? 빨리 집에 가시고, 병원에서는 다신 보지 맙시다.”
“알겠습니다. 안 오도록 노력해 볼게요. 그래도 밖에서 만나면 아는 척해요!”
그렇게 그녀와 나는 헤어졌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고자, 그녀는 병원 밖을 향해 나아가고자. 나름 아름다운 이별이라 여겼다.
그로부터 3시간 뒤, 나를 찾는 익숙한 전화가 왔다.
“선생님, ICU (중환자실) ABGA요.”
늘 하던 일인지라, 긴장이나 두근거림 등 그 어떤 생각도 없이 중환자실로 내려가 ABGA를 하려는 환자를 마주한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호흡을 할 수 없었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녀였다. 고마웠다고, 웃으면서 다시는 병원에서 보지 말자고 약속했던, 밖에서는 아는 척은 하자고 이야기를 나눴던, 아름답게 헤어졌다고 여겼던 그녀였다. 왜 왔어요? 왜 다시 중환자실로 왔냐고요? 이런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었다. 인공호흡기를 통해 호흡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위중한 상태였기 때문에. 몇 시간 전까지 볼 수 있었던 밝은 웃음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1시간이 지날 무렵, 병원 전체를 울리는 방송이 터져 나왔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ICU"
"코드블루. 코드블루. ICU"
"코드블루. 코드블루. ICU"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는 방송이기에, 숨 막힐 정도로 뛰어간 그곳에서 마주한 건 심정지가 된 그녀였다.
ABGA를 비롯한 수많은 검사를 통해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자 나가고자 피를 뽑는다. 기도가 막히는 걸 방지하고자 기관 내로 관을 삽관한다. 심정지로 호흡이 불가능하기에 산소를 공급하고자 삽관한 관을 통한 앰부 배깅 (AMBU-BAGGING) 또한 같이 이루어진다. 그와 동시에 약물 또한 들어간다. 에피네프린 한 번, 두 번 ……. 수없이 계속 주입한다. 맥박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며, 소생 가능성을 체크한다.
그 와중에 인턴인 나는 심폐소생술을 이어갔다. 두 손의 손바닥 뒤꿈치로, 양팔을 쭉 편 상태에서, 환자의 몸과 수직인 상태에서 가슴 압박을 한다. 그리고 이완시킨다. 압박과 이완을 수없이 반복한다. 5cm 정도의 깊이로. 분당 100~120회의 속도로 2분간. 이 과정을 수없이 진행할 뿐이다. 심장이 돌아올 때까지.
하면 할수록 지쳐간다. 송골송골 맺히던 땀들이 어느새 등을 적시고, 머리카락 전체를 덮고 있다. 호흡을 가다듬기도 힘들었고, 힘이 점차 모자라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멈출 수 없다. 아니, 압박하는 힘만큼은 어떻게든 동일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그녀를 소생시킬 수 있으니깐.
CPR(심폐소생술)을 이어 나가며,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선사하던 그녀였다. 퇴원을 기뻐하며 나를 바라봐주던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어디론가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토록 빛나던 웃음 역시 사라진지 오래였다.
돌아와라. 돌아와라고. 제발. 부탁이야. 억울하잖아.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고, 수없이 검사받으면서 괜찮아지길 바랐잖아. 그러다 당신의 소망을 이루어 냈기에 내심 다행이다 여겼어. 고생하는 걸 옆에서 봤으니깐. 이곳에서 보는 게 마지막이라 생각했어. 다시는 병원에서 보지 않길 원했는데.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한다면, 딱 한 마디는 건넸을 거야. 더 이상 아프지 않죠? 그랬기에, 지금 같은 상황은 전혀 원하지 않아.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동화책의 결말로 나오는 이 문장 뒤에 그 어떤 내용도 없는 것처럼, 당신이 누릴 수 있는 만큼 행복하게, 그러나 지긋할 정도로 살아주길 바래. 부디. 그러니깐 제발 다시 돌아와. 한 번 더 살아가보는 거야. 직접 이곳에서 걸어 나가 당신을 기다리는 그 아름답고도 찬란한 삶을 살아가란 말이야. 오랫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한없이. 5분... 10분... 20분... 30분... 막연히 흐르던 시간 끝에, 담당 주치의가 외친다.
“그만하겠습니다.”
CPR을 멈추고 시간이 좀 더 흘렀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심전도를 찍어야 했다. 그것을 담당하게 된 건 나였다. 맥박이 0, 모든 게 다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 주치의에게 결과를 전달했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명확한 증거를 확인한 주치의는 보호자에게 말했다.
"현재 동공 반사 없고, 심음이 들리지 않으며, 맥박 또한 없습니다."
“OOO 환자분, 2022년 X 월 X 일 오후 XX 시 XX 분, 사망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작별했다. 영원히.
죽음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더라도, 나는 잘 모르겠다. 여전히 생소하고 어려울 뿐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뉴스 등을 통해 알아가게 되는 비극들 앞에선, 죽음은 무서운 존재였다. 지인, 가족들과의 영원한 작별 앞에선 죽음이란 한없이 마음이 부서지게 아픈 일이었다. 의대생 시절, 책과 실습으로 접하게 된 죽음은 무거웠다. 평생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인턴을 통해 하나하나의 죽음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 역시 그중 하나다. 그녀의 생전 모습부터 마지막까지 목격하며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생하게 배워나갔다. 밝았던 미소. 여유로웠던 대답들. 마지막 인사. 기계를 통한 인공호흡. 생기를 잃은 눈. 멈춘 심장. 평행선을 달리는 심전도. 죽음 선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나.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죽음. 그를 통해 나에게 남은 건 한없이 크고 어렵기만 한 무거움이다. 알수록 어렵기만 한, 익숙해질 수 없는 깊음 그 자체. 어리바리한 지금보다도 냉철하고, 빠르게 판단할 수 있으며, 단단하면서도 담담한 이에 가까워질수록 그 무거움이 배로 커지리란 것 또한 얕게나마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주하게 되는 죽음들 앞에서 오만해질 수 없다는 걸. 결코 익숙해질 수 없어 늘 처음인 것처럼 다가오리란 걸.
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을 해내기로 다짐했다. 수없이 보게 될 이들의 마지막을 최대한 기억하기로 말이다. 그러면서 죽음이란 짐을 어떻게든 이고 갈 수 있는 데까진 가 보고자 한다.
고요한 당직실에 나 혼자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속마음에 단단히 숨겨놨던 나의 모습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서 말이다. 한참 동안 울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꽤 오래.
이 글을 쓰며 그녀를 다시 떠올렸다. 머무르고 있는 그곳에서라도 아프지 않길 바란다. 늘 빛나던 밝은 미소를 더 이상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