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유럽 도피기 4.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자꾸 일어났다. 파업이란 사실도 모르고 기차를 기다리다, 시간을 허망하게 소비했다. 프랑스어도 모르는데 파업하고 있다는 걸 사전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구글 지도가 멈추는 바람에, 순식간에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 순간적으로 멍해지더라.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파리에 머무르는 사이, 테러가 일어나기도 했고. 죽음이 생각보다 가깝다는 걸 느끼는 계기였다.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건 나쁜 일에만 해당하지 않았다.
추천을 받았던 디저트 가게 ‘앙젤리나’! 몽블랑의 달콤함은 천국에 잠시 방문하는 기분이었다. 일주일 치 당을 과량 섭취해서 hyperglycemia의 위기에 처할만한 느낌이기도 했고.
중세 시대 귀족들의 공간에 방문한 기분을 알려주던 ‘오페라 가르니에’. 장식, 조각, 그림들로 압도감을 선사하던 그곳에서 공연을 봤다. 무대가 아닌 가르니에 그 자체를 이용한 공연으로 ‘오페라의 유령’의 세계에 잠시나마 빠져들었다.
참고로, 그 근처에 있던 스타벅스 오페라 점까지도 품격 있었다. 제2의 가르니에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귀족의 고귀함 한 잔을 마시는 거 같았다고 할까?
라파예트 백화점은 한국에서 마주하던 백화점 같으면서도 유럽풍 느낌이 물씬 나서 특이한 곳이었다. 우리 역시 한옥 건축 기술을 접목한 퓨전 백화점을 만들면 어떨까?
파리는 어딜 찍어도 예술이었는데, 그 중 몽마르트 언덕이 최고였다. 차근차근 올라가고, 내려오는 그 모든 길에서 찍던 사진들에서 행복했다. 그 쾌감을 잊기란 어렵다. 사진기가 없었어도 좋았을 거다. 그냥 걷기에도 너무 좋은 풍경들이었기에.
마카롱 성지 ‘라뤼르’, 마카롱이 그렇게 클 수 있구나! 달달함까지 날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프랑스 레스토랑 ‘샤르티에’에선 달팽이요리와 샹그리에 등을 만났다. 달팽이요리와 그 위에 얹혀있는 소스 덕분에 고동의 먹는 듯한 진한 맛과 풍미를 혀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바토무슈 유람선에서 바라본 프랑스 파리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예쁘단 말로 충분하지 않을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웅장함과 경외감 그 자체인 노트르담 대성당도 파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루브르와 오르세! 와! 정말 크다. 사실 그 말로는 부족하다. 하루 만에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걷다가 힘들다고 여겨졌는데, 스마트워치가 있었다면 2만 보 이상은 기본으로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다 보니, 빠르게 중요한 작품들 위주로 먼저 보는 게 필수였다. 밀레의 비너스부터 모나리자, 스핑크스, 나폴레옹 대관식 등 살면서 꼭 봐야 할 그림은 다 마주하였다. 인상주의 그림들을 인상 깊게 보았고, 고흐의 그림을 직접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너무 많은 작품 때문에, 그 그림들이 가져다주는 충격들로 나 자신이 작아지고 또 작게만 느껴지는 이 기분은 낯설었다. 훗날 시간이 흘러 다시 방문했을 때는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그땐 그들 앞에서 압도당하지 않고, 그들과 동등하거나 더 커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책 [여행 준비의 기술]엔 이런 말이 있다.
‘평소처럼, 평소와 달리’
좋아하고 원하던 장소나 맛집을 가는 ‘평소처럼’도 중요하지만, 여행지에서의 나는 이전과는 달라져야 더 많은 추억이 생기기에, 별 관심 없었던 일도 체험하고 도전하는 ‘평소와 달리’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 각자만의 여행이 있을 거다.
돌이켜봤을 때, 나는 늘 먹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체중 관리에 늘 실패한다만, 먹는 걸 빼놓을 수는 없다. 시간을 쪼개어 바쁘게 살아가는 게 내 모습이다. 쉬는 날엔 카페에서 책 읽고 독서하다가 바깥을 바라보며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것 역시 내 삶이기도 하다.
나의 여행은 평소처럼, 평소와 달리 둘 다가 공존했다고나 할까?
늘 먹는 걸 좋아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달팽이를 통해 이루어졌다.
바쁜 일상도 좋아했다면, 여유 있는 나날도 즐겼기에, 차근차근 걸어 다니며 파리를 눈에 담기로 했다. 사진으로도 그 추억들을 담아냈고.
그 전의 여행들은 모조리 ‘함께 하는 시간’이었기에,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가져봤던 게 프랑스 파리 여행이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에, 미술관을 간 게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다. 수학여행 등이 아니면 말이다. 그랬던 내가 미술관을 선택했다. 유명해서가 아니다. 모르더라도 가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여기며 도전했다. 정확히 모든 그림을 제대로 봤다고 자부할 수는 없겠지만, 봤던 거 자체가 후회되진 않더라.
돈 아까운 건 웬만하면 하지 않던 내가 ‘그래? 그럼 배 한 번 타보지 뭐.’라며 관광선에 오른 거 역시 도전이다.
평소의 나는 뭔가 명확한 선이 있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게 아니면 그 선을 넘지 않는 경향이 강했던 내가, 이곳에서 조금이나마 그 선들을 넘었다. 돌이켜보면 여행에서의 ‘평소처럼, 평소와 달리’ 이 경험들 덕분에 점차 내 마음속의 선을 지워나갈 수 있던 게 아닐까?
이래서 여행을 가는구나 싶더라.
그 조그마한 경험들이 나를 바꾸고, 더 성장하게 만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