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2023년 WBC에서 호주에게 7대 8로 졌습니다.
그다음 경기였던 일본엔 4대 13으로 졌죠.
체코와 중국을 상대로 이겼지만, 예선 탈락으로 2023년 WBC를 마무리했습니다.
2006년도 4강 진출하여 3위를 달성하고, 2009년엔 2위로 준우승을 달성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이후 뭔가 WBC라고 하면 금방 끝나버리겠거니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2026년 WBC에서 첫 경기로 체코를 만났을 때도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11대 4로 크게 이겼지만, 체코 선수 중 다른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거기다 프로라면 지면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본 전에선 너무 아쉽더라고요.
1회에 3점 선취 득점을 했지만, 금방 2점을 내줬습니다.
그러다 3회에 3점을 줬지만, 4회에 따라잡으며 동점이 되었죠.
7회엔 3점을 헌납하고, 우리 국가대표팀이 따라잡으리라 믿었지만, 아쉽게도 1점 추가 득점에 그쳤습니다.
스코어 6대 8로 패배.
그런데 말입니다. 일본은 지난 WBC에서 우승하며 디펜딩 챔피언이거든요?
거기다 메이저리거가 많이 가세한 라인업 때문에, 우리가 상당히 불리할 거라고 여겼단 말이죠?
그런데도, 기대 그 이상을 해줬습니다.
물론 스포츠에선 이기는 게 정답이지만, 열세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기에, 아쉬운 소리보단 박수가 먼저 나갔습니다.
그러다 대만전부턴 기대감이 없다는 제 말은 거짓말이 되고 말았죠.
일본전에서의 모습 때문에, ‘이기지 않을까?’라고 크게 기대하게 되었습니다만 역시나 아쉬움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팽팽한 접전 끝에 9회에 4대 4로 연장 돌입.
연장에서 대만에 먼저 1점을 내줬습니다.
이후 3루 주자 김주원이 홈으로 들어올 때, 아웃당하고 말았죠.
그런데 이 아웃도 정말 한 끗 차였습니다. 김혜성의 땅볼이 조금만 느렸다면, 5대 5로 경기의 결과는 알 수 없게 되었을 겁니다. 그만큼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묘하게 호주전이 기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호주는 2승 1패, 한국은 1승 2패의 상황.
이기면 2승 2패로 똑같아지지만, WBC의 규정인 TQB(Team Quality Balance)에 따라 조건을 무려 3가지를 만족해야 했습니다.
1) 반드시 승리
2) 5점 차 이상으로 승리
3) 실점은 2점 이하
만약 7대 3으로 승리하더라도 TQB에 따라 대만에 밀려 탈락하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세한 건 우리의 친구, 제미나이가 알려주더라고요! 아래 내용 참고하세요!)
해외 베팅 사이트와 통계 매체들은 한국의 승리 확률은 높게 봤습니다. 긍정적인 신호죠? 무려 70%에서 75%로 말이죠. 하지만, 5점 차 이상의 승리와 2점 이하의 실점은 10% 미만으로 봤습니다. 매우 비관적이었죠.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2회 초, 좌측 담장을 때리는 안현민의 안타, 그리고 2점 홈런을 날린 문보경.
스코어 2대 0.
3회 초, 저마이 존스, 이정후, 문보경의 2루타로 추가 2득점
스코어 4대 0.
5회 초, 안현민의 볼넷과 도루 성공. 그리고 문보경의 좌측 펜스를 때리는 안타로 1점 추가.
스코어 5대 0.
5점 차와 2실점 이하 만족.
5회 말, 로비 그레디닝의 솔로 홈런.
스코어 5대 1.
6회 초, 박동원의 2루타. 김도영 타석에서 폭투로 박동원 3루 진출. 이후 김도영의 안타로 1점 추가.
스코어 6대 1.
다시 한번 5점 차와 2실점 이하 만족.
8회 말, 1아웃 2루 상황에서 트래비스 바자나에게 좌중간 1타점 허용.
스코어 6대 2.
4점 차로 무조건 1점을 더 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더 이상 점수를 주면 안 되는 위치.
그렇게 마지막 공격과 수비에 돌입했습니다.
9회 초, 김도영의 볼넷 이후 대주자 박해민. 투수 앞 땅볼이 투수의 글러브를 맞고 굴절되고, 투수가 급하게 2루 송구했으나, 이게 뒤로 빠지며, 3루까지 진출한 박해민. 그리고 안현민의 우중간 희생 플라이로 1점 득점.
스코어 7대 2.
9회 말.
첫 타자 삼진.
이후 볼넷.
릭스 윙그로브에게 우중간 2루타급의 안타를 맞으며 우리의 경기가 종료.
되는 줄 알았으나 슬라이딩 캐치로 대한민국의 수명을 연장한 이정후.
그리고 대타 로건 웨이드의 1루수 뜬공을 아웃 처리.
경기 종료.
호주 상대로 점수를 내고, 점수를 주고…….
쫄깃쫄깃한 경기 끝에 진짜 이기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모든 조건을 만족하면서 말이죠.
8강전에 올라간, 우리 국가대표팀.
축하합니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30995757
진짜 뭉클하네요. 기대를 안 하다가, 기대 수치가 확 올라가며, 몰입하게 되니 더욱 뭉클해지네요.
어쩌면 이번을 계기로 우리도 야구가 한층 더 발전할지 모르겠구나.
그 이전에 화려했던 WBC의 멤버처럼 더 성장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겠구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한편, 이 축제에 자이언츠가 없다는 게 너무나도 속 쓰립니다.
행복한 축제이기에 이 진실이 가장 슬프게 다가오네요.
부디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다음 대표팀 차출엔 제발 좀 자이언츠 선수들이 들어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난 다음 날 아침,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8강 전이 펼쳐졌습니다.
보는 내내 벽이 너무 높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콜드게임 패배당하는 게 이해되었습니다.
아쉽습니다. 너무나도 분하기도 하지만요.
이걸 계기로 성장하면 됩니다.
다음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