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정리한 생각을 쉽게 표현한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어깨 넘어 한글을 배웠다. 어머니가 누나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무엇을 배우는지 궁금해서 의자에 앉은 누나 어깨 뒤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나를 똑똑하다며 칭찬했고 나도 우쭐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빠르게 배우는 것을 좋아했지만 너무 빠름에 치중한 나머지 확실하게 배우고 익히지 않았다.
나는 근력보다 순발력을 더 좋아했다. 게임을 할 때 빠른 반응이 필요한 캐릭터를 선택했다. 오락을 해도 비행기 게임을 좋아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혈기왕성한 시절, 집 근처에 시장이 있었다. 좁은 길목에 많은 노점상들이 있었고, 난 그 복잡한 거리를 뛰어다니길 좋아했다. 빠르게 뛰어다니다 보면 주변 환경을 빠르게 관찰하고 부딪힐 상황을 미리 피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민첩하게 행동했고 심지어 미처 미리 알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피하면서 달리도록 노력했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신기하다고 칭찬했고, 이 칭찬이 나를 빠르게 행동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게 만들었다.
이과를 거쳐 공대에 안착했고, 타인에게 쉽게 내 생각을 전달하기보다 내가 빠르게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친구들이랑 대화를 할 때 완벽한 문장을 갖추고 말하지 않고,생각나는 단어들을 나열했다. 심지어 나는 알아먹기 쉽게 순서대로 배치하지도 않았고 빠르게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데 알아먹기 힘들다고 했다. 통역자가 필요하다고 하며, 소스코드를 프로그램으로 변환시켜주는 컴파일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필요하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빠르게 배우기만 하는 행동은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았다. 빠르게 말하기를 좋아한 나는 알아먹기 쉽게 말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대화를 하지 않고 어려운 공부만 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상하게 말해도 사람들은 어려운 것이니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석사과정에 진학하면서 나는 정반대의 상황에 들어갔다.
석사과정은 논문을 읽거나 특정한 주제에 대해 공부하여 교수님과 세미나를 한다. 정확하게 공부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나의 습관은 교수님과 맞지 않았다. 교수님은 나보다 전문가였으니 내가 아는 것을 대부분 알고 계셨고 많이 혼났다. 논리적인 생각이 없었던 나는 나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몰랐다. 세미나가 있는 날이면 긴장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어느 순간 왜 이렇지? 에 대해 생각했다.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토종 한국인인가? 칭찬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가? 내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생각했다. 먼저, 배울 때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았다. 익힌다는 것은 배운 것을 생각하여 내재화하는 것이다. 내재화가 되어 있지 않으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었다. 둘째, 빠르게 말하다 보니 어떻게 말해야 알아먹기 쉽게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빨리 내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쉽게 말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강했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데 그러지 못했다. 심지어 사투리도 쓰고 빠르게 말하면서 문장 구조도 이상했다.
나는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들었다. 책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땐 이 작가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책을 읽을 땐 저 작가의 말이 맞는 것 같아 해답을 찾기는커녕 갈팡질팡했다. 줏대가 없었고 기준도 없었다. 어느 정도 책을 읽다 보니, 책은 수단이므로 책에 빠지지 말고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라고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쇼펜하우어는 다독을 하며 읽은 내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은 소화하지 못하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쉽게 익히는 글을 쓰라고 했다. 말은 글의 즉석판이니 글을 잘 쓰면 말도 잘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가입했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간결하게 말하기 위해서 글을 쓸 것이고, 글쓰기에는 브런치가 딱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거나 살아가다 보면 머릿속에 구름처럼 떠다니는 생각들이 있다. 이것들을 빨아들여 눈덩이로 만들고, 잘 정리하여 차곡차곡 쌓아 갈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녹아 없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체계적으로 잘 모아두면 옹기종기 잘 남아 있을 것 같다. 뭐, 녹아도 다시 쌓으면 되니 걱정할 것도 없다. 녹아서 사라져 버린 생각과 개념은은 내 무의식에 남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