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Nov 11. 2024

반장님~이 막걸리 뭐예요? (반장일지 5)

반장의식

얼마 전 들어온 새 기계가 첫 가동을 하는 날이다. 새 기계가 첫 가동을 하는 날 현장 총괄 반장인 나에게는 나 만의 의식이 있다. 그 반장의 의식을 오늘 아침에 치러야 했다. 원래 작업 시작은 아침 7시. 나는 동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새벽 5시 50분에 현장에 들어간다.  작업 현장 구석구석을 비추는 CCTV가 내 발걸음을 따라다니고 있다. 반장의 의식을 꼭 치러야 해서  새벽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몰래 준비해 온 품 안의 막걸리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나의 출근의 시작은 현장 출입구부터 자세하게 살피고 작업 시작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을 하면서 들어온다. 때문에  입실하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동료들이 오기 전에 의식을 마쳐야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기계 앞으로 돌진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소독액까지 뿌려진  기계의 커버를 벗겼다. 깨끗한  냄새가 퐁퐁 풍겨난다.  기계 담당자의 애정이 느껴졌다. 주위를 한번 휙 돌아보고 카메라에 널찍한 내 등을 비추고 섰다. 재빨리 막걸리 뚜껑을 열었다. 기계의 지지대로 박아놓은 쇠 말뚝과 바퀴와 칼날에 말걸리를 한 방울씩 뿌린다. 마음속에 간절한 기도가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제발 사고 나지 않게 해 주세요.

고장 나지 않고 생산 잘 되게 해 주세요.

우리 모두를 지켜주세요."

기도하는 동안 다행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출입구로 돌아가서  평소 출근할 때의 루틴이 시작된다. 현장 입구부터 문제는 없는지, 열처리실. 작업준비실... 각 실을 돌면서 기계들은 잘 있는지, 중요한 비품들은 잘 가지고 있는지 챙겨보고,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청소 상태 인지를 점검한다(식품을 만드는 곳이라 청소가 제일 중요함). 출근하는 사람들의 컨디션도 점검하고 , 동료들 간의 감정 관계도 눈여겨본다. 그렇게 한 바퀴 점검을 하면 한 시간이 총알같이 간다. 점검을 하는 도중 '아차!! 미처 막걸리를 현장 밖에 내려놓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현장 구석의 내 책상으로 달렸다.

벽을 돌아  내 책상을 보는 순간

아뿔싸!!

막걸리 병을 높이 들고 뚫어져라 살펴보는 후배가 보인다.


"반장님 이게 뭐예요? 왜 현장에 막걸리가 있어요?"

나는 후배의 입을 막으며 부랴부랴 막걸리를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병을 치운다.

"이거 비밀이다." 내 말에 후배는

"반장님 진짜 막걸리 뭐예요?  현장에 이런 걸 가져오면 안 되잖아요.!!"

품질을 점검하는 후배는 점점 더 눈이 커진다.

"사실은 오늘 포장기계 처음으로 돌리는 날이잖아. 새벽에 기계에게 고사 지내려고  가져왔어. 그냥 돌리면 내 맘이 불안하거든. 동료들 다칠까 봐. 고장이라도 날까 봐...."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내 말에 MZ세대 후배는 배를 잡고  까르르 숨이 넘어간다.

"반장니이임~~~ 시대가 어느 시대인 데에 에 ~~~ 그런 미신을 믿어요오오오~~?"


 작업현장이라는 게 항상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넘어지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고,  허리가 삐끗하기도 한다.  일하다가 다치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그 아픈 통증을 무엇으로 대신하고 마음의 상처는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동료들이 다치는 게 가장 싫고 마음 아프다. 위생복을 갈아입다 보면 동료들의 다리에 있는 퍼런 멍자국이 자주 보인다.  바쁘다 보니 걷다가 쇳덩이 기계에 부딪치고 작업대에 부딪치고, 박스에 부딪쳐서 생긴 멍자국 들이다. 마음이 너무 안 좋다. 그래서 심지어 감정이 없는 기계에게도 제발 스스로 조심해 달라고. 우리 동료들 다치게 하지 마라고 애원하는 심정이 된다.


몇 년 전에 포장기가 순차적으로 여러 대가 들어왔다. 기계마다 막걸리를 조금씩 뿌렸는데 딱 한대만 막걸리 뿌리는 것을 잊어먹어 버렸다. 어느 날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나의 뇌를 스치는 생각 "아~ 한대만 막걸리를 안 줬는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는 바로 질문했다." 사고 난 기계 몇 호기야?". 우연의 일치지만 막거리 의식이 없던 기계에서 발생한  안전사고였다. 불안한 생각과 적중력은 맞아떨어졌다.


물론 고사 따위를 지내지 않아도 될 만큼 요즘 들여오는 기계는 안전하다.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다양한 각도에서 점검하고 개발한 기계들이다. 그래도 불안한 요소가 느껴지면  여러 번의 점검과 테스트를 한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기계가 멈춘다든지, 경보음이 울린다든지, 혹은 애당초 사고 발생이 예상되는 곳은 몽땅 가림막을 쳐 놓기도 한다. 뚜껑을 열면 절대로 작동하지 않는 장치도 있다. 다양한 안전장치가 있음에도 작동테스트에서 불안 요인이 보이면 기계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수십 가지 점검을 하고 들여와도 기계는 감정이 없고 매뉴얼대로만 작동한다. 그런 기계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사람과 기계의 관계가 왠지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동료들 몰래 나 혼자 반장의식을 치르는 이유이다.  그래야 그나마 내 맘이 조금 가볍다.


이런 의식을 거쳤음에도 아침마다 현장을 돌면서 특정한 종교가 없는 내맘에는 온갖 신들의 운동장이 된다.

"모든 신들이여~ 우리 현장을 돌봐 주소서~오늘도 제발 무사히~~`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