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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며? (반장일지 4)

물량과 인원이 안맞는다.

by 파인트리

인사팀과 미팅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요즘 현장의 생산 물량이 늘어서 인원을 대폭으로 증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사팀 담당자는 내게 당부인지 핀잔인지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입을 뽑기도 어렵고 뽑아 줘도 바로 퇴사시켜 버리는 현장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기가 막혀서 담당자를 쳐다보는데 담당자는 계속 말을 이어간다..

"퇴사 상담을 해 보면 선임들이 잔소리가 심하고 이리가라 저리 가라 기분 나쁘게 일을 시킨대요. 그리고 큰소리로 말해서 더더욱 기분도 나쁘대요. 텃세예요? 뭐예요?" 나는 점점 더 기가 막힌다.

"파트장님 현장의 선임 얘기는 들어 보셨어요?" 내 질문에 그는

"현장 이야기가 뭐가 중요해요. 입사하시는 분들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남는 게 중요하죠~~"인사담당자의 말에 나는 더욱 화가 났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죠?
제품이 엉망으로 출고돼도 내버려 두고,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힘들어해도 그냥 두라는 건가요?
입사하면 상전처럼 모시고 다녀야 하나요?

오늘 입사한 분이나 3~4년 되신 분들이나 시급 차이도 크지 않은데,
선임들은 몇 배나 힘들게 일하면서도 신입들에게 온갖 예의를 갖춰 작업 지도를 하라는 말씀이신 거죠?
납기 못 맞추면 선임들이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데,
그 와중에 큰 소리로 작업 지시했다고 기분 나쁘다고 퇴사하고,
이리저리 배치했다고 입사 하루 만에 인사팀에 일러바치면서 퇴사하는 건 괜찮은 건가요?

처음 입사했으면 배우려는 자세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먼발치에 서서 겨우 이것저것 던지듯 일하는 사람에게
선임은 잔소리도 하면 안 되는 거였어요?"

내 따발총 같은 대꾸에 담당자는 잠시 머쓱해하더니,
"아니~~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구해 달라고 하셨으면서,
정말 힘들게 인원 보충해 주면 왜 내보내는 거예요?
잘 구슬리고 달래서 데리고 갈 생각을 해야죠?"

아이고 참나, 나는 이런 생각이 더 어이가 없다.




식품 제조 현장은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구했다고 해도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이직률이 엄청나다. 생산공장 시급이 비슷하고 일에 대한 커리어가 쌓이는 것도 아니라서 쉽게 미련 없이 퇴사를 한다. 사람 못 구해서 안달이 나 있는 다른 제조 회사로 가면 되니까~. 식품회사 일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어디나 일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서 감정이 상하면 더더욱 미련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기 근속자들이 현장일을 오래 하는 힘은 회사에 대한 애정보다는 동료애가 우선한다. 서로 위하고 감싸고 도와가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니 인사팀의 사람 귀한 줄 모르고 내보낸다는 말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세상에 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현장에 입사한 사람은 일을 하려고 온 사람이고 회사는 일을 시키려고 입사를 시킨 것인데 서로 원하는 게 딱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하는 일에서 사람이 제일 중요하지, 그럼 뭐가 더 중요하겠나? 더군다나 우리가 하는 일은 먹는 것을 만드는 일이다. 식품 제조는 원래 그런 거다. 일을 하다 보면 저절로 정성이 들어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한다.

“이거 사람이 먹을 건데, 대충 하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우리는 소명 의식이 있다.
모든 걸 투명하게 관리하고, 제품 기준은 철저히 감시한다.
대량 생산이라고?
고객은 단 하나의 제품을 보고 모든 걸 평가한다.
딱 하나라도 엉망이면, 공장 전체가 욕을 먹는다.
그러니 대충할 수가 없다.

그렇게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에게,
인사팀이 한마디 던졌다.

“현장에서 사람 귀한 줄 모르신다면서요?”

…이럴 때는 뭐라고 답해야 하나?
순간 입에서 “네????”만 나왔다.

식품 제조가 힘든 건 알겠는데, 말까지 씹히면 너무 서럽지 않나?


제조 현장은 원래 힘들다.식품 제조는 더 힘들다.즉석식품 제조는… 그냥 마음을 비우자.

"오늘은 물량이 얼마나 되나요?"
"몰라요."
"그럼 인원을 얼마나 배치하면 될까요?"
"그것도 몰라요."

매일이 롤러코스터다. 비수기에는 사람 남아서 한숨, 성수기에는 사람 없어서 두숨.
그럴 때마다 인사팀은 피눈물을 흘리며 인력을 구해 오고, 우리는 그 귀한 인력을 받아다가 "이제 좀 살겠다!" 싶다가도 하루 만에 퇴사하는 분들을 보며 허탈한 한숨을 쉰다.

신입이 많이 들어올때는 하나하나 챙겨 주지도 못해 놓치는 분들도 많다. 솔직히 그분들께도 미안하고
그럴 때면 인사팀에도 미안하다. 아니, 그냥 서로 미안하다.

대표님은 늘 말씀하신다.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 말이 맞다.
근데 협력하려면 일단 사람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나요?

오늘도 날 선 말을 내뱉고 후회한다.
우리 회사가 얼른 더 성장해서,
"여기서 일하면 무조건 오래 다닌다!"는 전설이 생기길 바란다.
그럼 인사팀도, 우리도, 퇴사하는 신입도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

스윗밸런스샐러드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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