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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Jul 27. 2024

일이 요령을 만났을때

힘이 좋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작업장과 탈의실, 사무실까지 3층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수백 평 되는 현장을 빠른 걸음으로 몇 바퀴 돌다 보면  매일  만보쯤은 우습게 넘긴다. 샐러드 작업을 할 때는 서너 시간은 같은 자리에서 꼼짝없이 서 있어야 한다. 샐러드 랩을 말아야 할 때는 하루에 천 개 이상쯤은 거뜬히 말아야 하는 근력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걷거나 서있거나 이동을 시키거나 들어 올리거나 그 모든 것에는 힘이 필요하고 근력이 필요하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께서 60의  나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

"나는 네 나이 때는 날아다녔어." 엄마는 내 나이에 진짜 날아다닐 만큼 체력이 좋으셨을까? 하지만 요즘의 나는 기운이 없다. 조금만 운동을 게을리해도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나면 일 년에 한 번쯤은 기운이 쪽 빠졌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쯤 이런 기분을 정기적으로 느낀다. 현장을 팽팽 돌아다니다가 불현듯 기운이 빠지고 현기증이 날 때가 있다. 이까짓 쯤이야 하고 미친 듯이 샐러드 랩을 천 개쯤 말다가 갑자기 손가락이 쥐가 날 때도 있다. 동료가 샐러드에 토핑 얹는 것을 힘들어하면, '내가 해 줄게' 호기롭게 자리를 빼앗아 시작한다. 그런데 정지화면처럼 서 있으면서 팔만 움직여 토핑을 하다 보면 위생장화 속에서 엄지발가락이 자꾸 쥐가 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몸이 나이를 말하고 있는 것인가?




올봄  고추 모종을 심으실 때도 여든네 살의 어머니는 "요거 봐라. 이렇게! 요렇게! 간단하지?" 몇 마디 하시면서 고추모종을 묶는 끈을 좌우로 감더니 감쪽 같이 단단히 고정시킨다. 나는 절절매면서 꼭꼭 잡아당기느라 애를 먹는데 어머니는 산들산들 나들이 하듯 나보다 훨씬 고랑을 앞서 갔다. 어머니가 앞서가는 고추 모종의 고랑은 길이도 일정하고 묶은 매듭의 높이도 일정하다. 질서 정연하고 반듯하기가 고운 한복의 하얀 동정같이 단정하다. 반면 내가 구슬땀을 흘리면서 묶어 나가는 고추모종의  높낮이는 질서가 없다. 춘향이 널뛰기처럼 오르락내리락거리고 모종을 받치는 기둥은 금방이라도 밭에서 뛰쳐나갈 듯 달리기 출발 자세로 기울어져 있다. 내가 일궈가는 고랑을 보면서 어머니는 혀를 쯧쯧.

"큰 아야! 단단히 묶어야지~~. 큰 아야! 반듯하게 묶어야지~~."


나는 죽을 듯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 마음에는 영 시원찮은 일꾼인 게다. 일은 시키고 있지만 마음에 쏙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모양인 게다.

 "일이라는 것이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녀. 요령이 있어야지!" 어머니는

"살살해봐. 요렇게 , 요렇게, " 몇 초안에 현란한 매듭 시범을 보인다. 아. 진짜 어머니는 내 나이 때는 날아다니셨을 것 같다. 지금도 휘휘 나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다. 걸음걸음 앞선 발자국에 영리함과 현명함이 배어있다.  어머니 마음에는 질퍽철퍽 뒤따라가는 내 행동이 자꾸만 신경 쓰일게 뻔하다. 나는  어떻게든 어머니 마음에 들어 보려고 고추모종 다치지 않게 살살 잡아당기면서 줄을 맞춰 가고 있다. 수십 포기쯤 묶어갈 때부터 내 밭고랑도 모양이 나기 시작한다. 줄도 맞춰지고 높낮이도 맞아 간다. 슬슬 나에게도 고추 모종하는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입이 입사하면 처음 일주일은 어색함과 긴장감에 힘든 줄을 몰라한다. 이 어색한 시기를 보내면서 주변 적응을 하고 현장이 보이기 시작할 때 대부분의 신입후배들은 몸살을 한 번씩 앓는다. 그 시기를 나는 몸에 일 근육이 생기기 시작할 때라고 부른다. 무거운 것을 들다 보니 손은 아침마다 부어 있고 , 종일 서 있으니 종아리는 당기고 아프다. 적은 중량이지만 8시간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손목도 팔꿈치도 근육이 생기느라 아파지기 시작한다. 근육이라는 게 반복하고 반복해야 다져지는 것이라서 방심하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근육이 다시 생겨나려고 하면 또 아프다. 이 아플 때를 버텨야 직장을 오래 다닌다. 어머니 말씀대로 요령이 생길 때까지는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의 힘이 몸에 붙는다.


일은 필요한 근육과 요령이 만나야 시너지를 발한다. 어머니가 말하시는 '일의 요령'은 일종의 '일머리'를 뜻한다. 적당한 근육과 일머리가 만났을 때 일은 빛을 뿜어낸다. 일이 빛을 나기 시작하면 일은 재밌어지기 시작한다. 일이 재밌으면 더 기가 막힌 일머리가 떠오른다. 진짜 어머니의 요령이 생겨나는 것이다. 점점 더 일을 쉽게 해결해 나가게 되니 지켜보는 사람도 재밌어진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도 "그 나이 때는 날아다녔어~~"라고 과거는 말하기 싫다. 지금도 날아다니고 있음을 매 순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내 안의 욕구가 있다.


 어머니의 밭고랑을 바라볼 때처럼 정확하게 하는 일은 답이 보인다. 이런 순간이 직장에서는 나의 쓸모가 확인되어 스스로 만족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쓸모가 확인될 때마다 나는 일의 참 맛을 느낀다. 현장일의 매력에 빠지는 게 이런 순간이다. 이럴 때 나는 동료들에게 자신 있게 큰소리를 친다. "이거 나보다 잘하는 사람 있어?" 헤헤, 일에는 한마디로 밥맛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얼마나 얄미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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