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도 아니고 물까치라니?
우리 동네에는 물까치가 유난히 많이 살아요. 한 나무에 수십마리씩 앉아서 목청도 좋게 떠들어 댑니다. 왠만하면 그냥 두고 싶은데 문을 열어두면 텔레비젼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시끄러워요. 우리 막둥이는 유난히 환경에 관심이 많은 친구라서 "도대체 저 새는 뭘까요?" 하면서 사진 한장을 검색창에 넣었지요.
가족애가 강한 물까치
동물의 세계에서 무리들 간에 가장 친밀하고 애정이 많은 동물은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돌고래를 떠올릴 테지만, 조류세계에도 그런 종이 있다. 바로 물까치이다. 물까치는 돌고래와 같이 가족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족생활을 통해 천적이 세력권 내로 들어오면 집단 방어를 하며, 육아를 할 때도 공동 육아를 한다.
자연의 세계는 냉혹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어미가 약하거나 죽을 경우, 그 새끼는 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물까치의 세계는 다르다.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가 적을 경우에는 이모, 삼촌, 형, 누나들이 먹이를 갖다 주며 공동으로 키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죽었을 경우에도 주변의 가족들이 사체에 모여서 추모를 하듯이 한동안 머물러 있는 모습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물까치 [Azure-Winged Magpie] - 가족애가 강한 대표적인 텃새 (국립중앙과학관 - 우리나라 텃새)
글쎄, 까치도 아니고 물까치라니 이름부터 희한 합니다.
물까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주로 깃털의 색감이 물빛(회색빛)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과는 무관하게 땅에 사는 텃새라고 합니다. 울음소리도 까치와는 달라요. 깍깍 거리는듯, 혹은 째액 거리는듯 암튼 목청이 유난히 크게 들린답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사람들 여러명이 모여서서 나무 위를 보고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나도 쳐다 봤지요. 그런데 나무 꼭대기쯤 고양이 한마리가 올라가 있고 물까치들이 돌아가면서 공격을 하고 있었어요. 한마리가 날아가면서 고양이를 쿡 조아대고, 다른 한마리가 바로 또 공격을 하더라구요. 한참동안이나 공격을 멈추지 않았어요. 지켜보는 우리의 고개가 아플때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고양이를 끌어 내려서 그 싸움이 끝이 났어요. 이제 생각해 보니 천적이 자기들 집단으로 들어 왔다고 공격을 하는 거였어요. 공동 육아를 한다는 자료를 보고나니 이제서야 떠들던 물까치들의 소란이 이해가 됩니다.
" 옆 집에 아이 혼자 있어. 돌봐 줘야해."를 줄줄이 사탕으로 목청을 높여 전달했다는 거잖아요. 온 마을의 나무 위에서 돌림 노래를 하면서 전달 했던 게 분명합니다. 소란스러움에 우리는 창문을 열기도 힘들었지만 물까치들은 그 들의 마을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네요.
우리도 물까치처럼 온동네 사람들이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 있었지요. 어린 시절 시골 동네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른들이 밥도 챙겨 주고 나쁜 행동을 하면 혼을 내 주고 그랬어요. 어긋난 행동을 하면 옆집 어른께 혼나는 것은 당연하고 부모님 늦게 돌아 오시면 옆집에서 같이 식사하는 것도 뭐 그냥 그러려니 했지요. 물까치처럼 다같이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네요.
요즘은 직장이 그런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이 돼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우리 때보다 더 어렵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준비하고 노력해도 사실 사회에 나오기가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잖아요. 60이 넘은 나이에 사회에 나오는 친구들을 바라보게 되니까 저절로 돌봐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요. 신입들이 내 자식같은 나이여서 더 안스럽고 더 돌봐주고 싶은 맘이 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보다도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잘 버티고 성장할수 있게 도와 줘야 할 사명감 같은 것이 크게 느껴진답니다. 그런 마음까지가 오지랖이라고들 합니다만, 선임들이 직장에서는 어른이잖아요. 공동 육아를 하듯 신입을 돌보고 가르치고 격려해서 성장하게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아요.
지난해에 젊은 친구가 입사했는데 너무나 조용한 친구였어요. 사무실에 들어와 있어도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일만 하는 친구 였지요. 저랑은 팀도 다르고 겹치는 업무도 없어서 마주치고 말을 나눌 기회도 없었어요. 우연히 프로젝트 하나를 같이 하게 됐는데 말은 없지만 너무 똘똘한 친구라는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어느날 문득 제가 큰소리로 인사를 해주니까 너무 좋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날부터 제가 협약을 맺었어요. "우리는 큰소리로 아는 체 해주는 사이 합시다."
그 날부터 마주치면 제가 항상 큰소리로 "지영씨다!! 안녕?" 하고 인사를 해 줍니다. 그러면 그 친구의 밝은 얼굴이 또 얼마나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지 몰라요. 나도 모르게 아침이면 그 친구가 출근했는지 찾아보게 되고 지영씨도 나를 찾아 봅니다. 눈 인사만 해도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게 되지요. 우리 딸들은 "유난히 아는척을 하는 엄마가 부담스러울수도 있어요."하면서 걱정을 하기도 하네요.
공동이라는 단어는 대단한 단어 같아요. 더구나 사회에서, 직장에서 공동 육아 하듯 한 사람을 적응하도록 도와주려는 공동의 노력은 책임감이 따르는 것이라서 어려운 일 같아요. 사회의 공동 육아는 개인을 성장 시켜야 한다는 숙제가 있고, 제대로 된 후배를 양성 해야 한다는 목적이 있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 개인이 공동 육아를 안 받겠다고 한다면요. 스스로도 성장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우기면요. 여기서는 또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제는 집 앞의 텃새에게서도 인생을 배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