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사진전을 열었다 (1)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2020년을 망치기 전에 가지고 있던 계획들. 올 한해를 알차게 보내겠다고 세워놓았던 목표들. 다들 기억하고 있을까? 세상에, 올해 계획이라는 것을 했었다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우리들이었던가. 가려고 했던 여행들. 취소해야했던, 혹은 아직도 취소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비행기 티켓들을 한번 떠올려보라. 이륙이라니! 착륙이라니! 높은 고도에서 귀가 막히고 고막이 꼬이는 것 같던 그 고통과 기분 마저도 낭만적으로 느껴질만큼 나는 비행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인천공항에 가본지 7개월이 넘었다. 세상을 방랑하는 사진가로서 이렇게 오래(?)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은 12년만에 처음이다. 나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지. 언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계획하고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저 그때가 되봐야 아는 무엇이 되었다. 당장 다음달의 일도 우리는 이제 장담하지 못한다.
계획이 있었다. 신발에 날개를 달아놓은듯 틈만 나면 구름 위로 날아올랐던 사진가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2020년은 중앙 아시아로 떠나는 해였다. 코카서스 3국에서 시작하려고 했다. 4월 중순, 아제르바이잔에서 올해의 사진 작업을 개시할 예정이었다.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거친 후 캐스피안해를 건너 중앙 아시아로 갈 것이었다. 타지키스탄, 키르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크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스탄으로 끝나는 탄탄한 나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4개월반 정도 이 지역을 헤메며 사진 작업을 하려고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8월 중순이라면 이 여정이 막바지에 도달했을 시간이었다. 계획대로 되었다면 지금쯤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가득 찍었을테고 92개국을 사진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85개국을 사진으로 담았을 뿐이다. 중앙 아시아는 올해도 나를 피해가고 말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의 문을 닫던 3월. 나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3월말에 출간을 준비하고 있던 나의 첫 산문집 <케이채의 모험>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서울숲 근처에 렌트라는 작은 공간을 빌려 출간을 기념하는 팝업 스토어를 열 계획을 세워두었다. 3월말에 책이 나옴과 동시에 팝업스토어에서 새 책을 소개하고, 2주후 4월 중순에 아제르바이잔으로 출발한다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삶에 그러했듯이 코로나 친구는 이 계획 역시 완벽하게 산산조각을 내어주었다. 급격히 늘어가는 확진자의 수에 나는 팝업스토어 진행을 포기해야했다. 출국의 꿈이 무산되자 책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결국 산문집은 5월 중순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어렵사리 책을 냈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무 행사도 하지 못했다. 그저 트위터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책 한권만 사주십사하며, 멘션없고 리트윗없는 트윗을 와이파이에 싣어 떠나 보내는 것이 전부였을 뿐이다.
연달아 '계획'들이 무산되고나서 한동안은 계획없이 살았다. 5월에는 떠날 수 있을까. 6월에는 떠날 수 있을까. 미련하게도 희망의 끈을 제법 오래 붙들고 있었지만 7월쯤에는 나 또한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 거의 매주 가던 영화관도 한달에 한번 갈까말까. 전시공간들도 문을 닫거나 전시를 취소해 볼만한 전시도 전무했다. 사진가로서의 일거리도 줄어들어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많은데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도저도 아니게 흘러가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에 금호 미술관에서 김보희 작가의 전시를 보게 되었다. 그녀의 그림은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눈여겨보았던 것은 그 전시의 놀라운 인기였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뜨거운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유명 연예인들도 다녀가고, 막바지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할만큼 굉장한 흥행이었다. 김보희가 호크니냐는 저렴한 신문기사 헤드라인이 나올 정도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어디 가지도 못하고 서울에 갇힌 많은 사람들. 나처럼 전시를 보고 싶어도 도대체가 볼만한 전시가 없는 상황이었다. 많은 전시가 취소되고 국립 미술관들이 문을 닫은 것이 그녀의 전시에는 호재가 되었다. 문화생활에 굶주린 사람들이 점점 더 그녀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든 것은 그렇기에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그때부터 처음으로 2020년의 사진전을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에 사진전이라니. 자살행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이니까 오히려 한번 해볼만 할 것 같았다. 마침 확진자 수도 줄어들고 생활속 거리두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한다면 어디서 할 것인가. 전시라는게 길게는 1년도 더 전에 공간을 미리 섭외해두곤 하는지라 갑작스레 전시 공간을 찾는다는게 쉬울리가 없었다. 전세계가 불황이라 갤러리들의 대관비도 좀 내려가지 않았을까 기대도 해봤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건물에 공실이 있어도 절대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는 건물주들처럼 갤러리들도 그런 것일까? 마음껏 사람들에게 와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시대에까지 그런 비싼 비용을 내고 갤러리를 빌리고 싶지는 않았다. 아주 좋은 갤러리에서 하지 못할 바에야 그럭저럭하게 흰벽으로 사각형인 갤러리들에 기백만원씩 주고 1주에서 길어야 2주 전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새로운 공간을 찾아보기로 했다. 갤러리가 아닌 곳에 사진을 전시하는 것은 내가 옛날부터 종종 해온 일이었다.
나는 전시의 형태가 늘 너무나 똑같은 것에 불만을 가져왔다. 사진전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너무 고상한 척 할 필요없이 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내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해보고 싶었다. 작년에는 프랑스의 아를 사진 축제에 가서 벽에다 내 사진을 붙이고 전시를 했다. 10년전에는 서울에 있는 4곳의 카페에 내 사진을 연이어 전시하기도 했다. 나름 나만의 작은 케이채 사진 비엔날레였던 셈이다. 사실 전국 20곳 정도의 카페 갤러리들에 내 사진을 동시다발적으로 거는 전시를 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실현하지는 못했다. 사진전이라는 것을 단지 이름있는 갤러리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의 발로로 문래동에서 '빛타래'라는 사진공간을 5년여 운영하기도 했다. 비싸기만한 대관료. 지인과 주변인들만 들려서 박수쳐주고 끝나는 죽어있는 사진전. 그런 것들이 싫어서 대안적인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싶어 시작했던 프로젝트였다. 30번이 넘는 전시를 그곳에서 주최하면서 돈을 벌기는 커녕 적자만 봤지만 '사진전'이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일조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나만의' 공간은 없었다. 새로운 장소를 발굴해야만 했다. 서울숲에 위치한 렌트의 3호 공간을 봤을때, 문래동에서 운영했던 빛타래와 비슷한 골격을 가진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렌트 1호는 바로 3월에 내가 팝업스토어를 하려던 공간이었다. 그 자리는 공간이 워낙 작아서 전시를 생각할 수는 없는 자리였다. 3호점은 급작스럽게 생긴 공간이었는데, 원래는 그곳분들이 사무실로 사용하던 자리라고 했다. 근처 새 사무실로 옮기면서 공실이 되었는데 이 자리를 활용하기로 한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알고 있던 오키로북스가 최근 이곳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하는 바람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갤러리처럼 깔끔하지도 고급스럽지도 않고 조명도 제대로 없고 부족한 것이 많지만, 오히려 그런 건물이니까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설프게 후진 인테리어가 깔려있는 것보다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곳이 낫다. 새하얀 백지라면 내멋대로 칠할 수 있다. 공원 뒷편에 집 한채를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현장을 방문한 안도 타다오가 '구상 다 끝났으니 땅부터 사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처음 이 자리에 방문했을때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땅을 살 수는 없었지만 나도 구상은 끝났다. 그렇게, 시작부터 무모했던 사진전, <컬러블라인드>의 준비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