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작가의 [삼중당문고] 패러디
LG 트윈스
최고의 순간 1994년,
마지막에 역전승으로 이기는 로봇 만화와 닮은
LG트윈스
1993년 여름 여섯 살, 야구장 앞으로 이사 가 만난
LG트윈스
줄무늬 유니폼이 멋있어서 아빠에게 졸라 어린이 회원 신청을 했던
LG트윈스
동네 슈퍼보다 LG25시를 가게
만들던 LG트윈스
젊고 잘생긴 선수들이
많았던 LG 트윈스
생일 선물로 그랑죠, 볼트론, 후레쉬 맨, 레고 장난감보다 야구 유니폼을 원하게 했던
LG 트윈스
어린애 옷으로 4만 원은 비싸다며 그냥 로봇이나 사라는 엄마의 말에
길에 드러눕게 해버린 LG트윈스
어린이 야구교실을
다니게 했던 LG트윈스
1994년 뜨거운 무더위 속 가뭄으로 논바닥이 갈라지는 와중에도
신바람이 불던 LG트윈스
크면 당연히 야구선수가 될 거라고
믿게 하던 LG트윈스
그림일기를 야구 얘기로만
채워버린 LG트윈스
이사 온 옆집 OB팬 아이를
왕따 만들던 LG트윈스
서태지와 X세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던 LG트윈스
한국시리즈를 우승하고 럭키금성을 LG로
바꿔버린 LG트윈스
94년을 마지막으로 우승을
못하고 있는 LG트윈스
1등은 못하고 어정쩡한 상위권이던 내 성적과 비슷했던
떨어지는 야구 인기에도
관중 수는 1위였던 LG트윈스
마해영의 주걱턱을 한 없이 야속하게
만든 LG트윈스
2002년을 월드컵이 아니라 역전패로
기억시킨 LG트윈스
김재현, 이상훈을 SK에 팔아버린
LG트윈스
팔자에도 없는 시위에 참여할까
고민하게 하던 LG트윈스
점점 이길 때 보다 질 때가
많아지기 시작하던 LG트윈스
순철아 ‘우리는 네가 부끄럽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던 LG 트윈스
2002년을 마지막으로 별명이 꼴쥐가 되어버린
LG트윈스
재수학원도 때려치우게
만든 LG트윈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재미있게
만들어준 LG트윈스
기아 팬 여자친구와 어디 응원석에 앉을지 고민하게
하던 LG트윈스
실연의 아픔을
위로해주던 LG트윈스
짬통 비우러 가다 창문 너머로 몰래
바라보던 LG트윈스
소녀시대를 좋아하는 후임들도 뮤직뱅크 대신
봐야 했던 LG트윈스
'올해는 제발 잘하게 해주소서’로 새해 기도를 하게
만든 LG트윈스
6668-5876
별명을 갖고 있던 LG트윈스
하늘에 있는 달빛요정이
사랑하는 LG트윈스
야구 영화는 다 찾아보게
하는 LG트윈스
12시 반 스포츠 하이라이트는
봐야 잠이 오게 하는 LG트윈스
창이 뜨면 먼저 네이버 스포츠 섹션을 누르게
만드는 LG트윈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기다려지는 LG트윈스
전(全)통(統)의 시구로 시작한 프로야구
아마도 그들이 3S로 만들고자 했던 愚民의 결정판이 내가 아닐까
그래도 어쩌랴, 뉴스에서 몇 명이 죽었다고, 경기가 어떻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마음은 9시 45분 스포츠뉴스에 가있는 것을
철없는 젊은이다,
걱정이 없는 놈이다
손가락질당해도
LG트윈스는 언젠가는 다시 잘 할 테고
그럼 난 또 그 순간을 곱씹으며 평생을 행복할 테지.
또 야구에게 기대려고 합니다. 야구가 참 고맙습니다. 보험 하나는 갖고 사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