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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환 Jul 18. 2024

도시기담

습작

도시 기담     

  

 내가 작년에 무조건 팔자고 그랬지!”

 주영은 창가에 떨어지는 물기를 닦아내려 수건을 들고 허겁지겁 문지르는 경섭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쏘아 붙였다.

 멀쩡한 수건으로 아무생각 없이 물기를 닦는 게 아까워 죽겠다. 주방 싱크대에서 꺼낸 비닐도 뜯지 않은 노랗고 빨간 형형색색의 주방 타월 보따리를  경섭에게 던졌다.

이걸로 해

어 괜찮아 수건을 벌써 헤 질렀는데 ...”

주영의 눈 꼬리가 올라간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경섭은 조용히 수건을 내려놓고 비닐을 까서 수세미타월을 꺼내들었다.

“Made in Germany"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박힌 수세미타월의 빛깔은 촌스런 형광 빛이 도는 분홍색이었다.

아직 장마가 시작도 되기 전인데 어젯밤 얼마 오지도 않은 비로 누수가 되었다.

열심히 닦아도 잠시 뿐이다. 근본적인 대책은 외부부터 손을 보아야 할 것이다 옆집 윗집 아랫집 할 거 없이 다 비만 오면 난리인데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요지부동이다.

다들 사는 게 고만고만 어려운건 이해를 지만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

대부분 집주인들은 살지 않고 세입자들에게 이야길 해도 소용이 없었다.  

여름에는 비가 샐까 걱정, 겨울에는 결로로 곰팡이와 동거를 해야 하는 게 지긋지긋하다.

조금 무리해서도 아파트를 가자던 것을 못 간 건 남편 때문이었다. 알량한 경제지식을 자랑하며 우기다 아파트가격이 너무 올라 버렸다. 청승맞게 비가 새는 벽을 닦는 팔자가 된 것도  남편의 사주에 물이 많아서 일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작년에 살고 있는 오래된 빌라를 팔고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 갈 계획이었다.

 값이 이젠 곧 떨어질 거 같으니 기다리자는 경섭의 말을 듣다 또 망한 거 같다.

아파트 가격은 조정되어 하락을 하는가 싶다가 다시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더 오른 연후에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났는데 살고 있는 빌라를 사줄 사람이 사라졌다.

전세사기 뭐니 하며 매스컴에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변호사와 대기업 직장인도 당했다는 사연이 떠돌았다.

어쨌든 이대로는 못살 것 같았다.올해는 무조건 이사를 가고 싶었다.

남들 다 사는 그렇게 좋다고 하는 아파트로.    

 


 어서 오세요 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린다. 짧은 단발을 한 여자가 현관문을 살짝 열고 한쪽으로 빗겨 있다.

"실례하겠습니다."

앞장 선 미소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집안을 들어서는 주영은 전실에 들어서자마자 낯설고도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사람이 아직 살지 않는 신축의 아파트보다 무언가 정겹기까지 하기한 사람들의 냄새였다. 주방의 음식과 화장품냄새, 어쩜 향수일지 디퓨저 향일지 모르는 향기와 섞인 생활의 냄새다. 보이지 않게 흔적들이 말끔히 치워진 집에서도 배어 나왔다.

채 서른이 좀 넘었을까 어쩌면 더 나이가 많을지도 모르는 여자는 막 외출을 하려는 것인지 들어온 것인지 베이지색 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화장기가 남아 있지만 건조하게 말라버린 입가의 주름을 살짝 움직이며 애써 웃음 띤 얼굴로 반겨주었다.     

주영은 신을 벗고 입구부터 꼼꼼히 보기 시작한다.

불구경과 싸움구경보다 솔직히 남의 집 구경이 딱히 재미로는 밀리지 않는다

아이 방인 듯 한 방안에는 침대와 책상 책들 외에 자질한 소품까지 다 정돈이 되어 있었다.

화장실은 물기하나 없이 깨끗하고 수납장 밖으로 나온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은은하게 느껴졌던 향기는 디퓨져에서 나온 듯했다. 손을 뻗어 병을 돌려 보았다 이숍 제품이다.

한방에는 골프 퍼팅 그린이 깔려 있고 컴퓨터가 놓은 책상과 책장이 있었다. 아마도 남편의 서제인 듯했다.

안방도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다 침대하나만 두어서 호텔방 같이 시원해 보인다. 한 쪽 벽면에는 화장실이 붙어있고 건식 세면대를 지나 안쪽으로 변기와 샤워부스가 널찍하게 자리했다. 작은 욕실 악세사리 하나까지 고급스러워 보인다. 붙박이장 앞에는 가방이나 소품들이 쌓여있었다. 명품로고가 새겨진 더스트백들이 졉혀진 채 눈에 뜨였. 무언가 허점을 발견한 듯해서일까? 미처 치우지 못한 것이라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졌.  마지막으로 시스템 에어컨이 몇 개인지 헤아려 보았다 아이 방에만 이동식 에어컨이 있었고 방 두 곳과 거실에 까지 세 곳이나 설치되어 있었다.

확장된 발코니와 주방장의 정연한 모습까지 나름 리모델링을 하면서 돈을 들인 티가 보인다.

방 밖으로 나와 다시 자세히 거실과 주방을 보았다. 작지 않은 거실이 작아 보일만큼 큼직한 테이블이 가로로 길게 놓여있었다.

 티브이도 소파도 없이 벽면은 키 작은 책장이 하나뿐이었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고 하였는데 어지러운 물건들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

주방마저도 긴 폴딩 도어를 달아 싱크대를 개폐하게 만들어 놓았다. 강남의 주방가구 쇼룸에서 보았던 기억이 났다. 가격이 상당했던 기억이 . 식기나 밖으로 내놓아진 생활의 흔적이 없다.

오른편 벽면엔 냉동고,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세칸으로 된 신형제품이다. 일반적으로 공간이 부족했을 텐데 아마도 가전 때문에 주방도 인테리어를 한 것 같다.

붙박이장들은 당연 두고 갈 테고 혹시 부잣집이라 이살 가면서 가전들을 두고 가거나 팔고 가지는 않을 가 옅은 희망이 떠오르며 혼자 쓴 웃음을지었다

주영은 이 집을 계약하면 따라올 부수적인 것들만으로도 돈을 벌게 될 것만 같아 조금 더 마음들었.

주영은 도어를 만지작 거리며 주인여자를 돌아보았다.

어머 신기해요 집에 이런 거 설치하신 거 첨 봐요. 도어를 한번 열어 봐도 될까요?”

아 네 한 번 열어 보세요

브레벨 커피 머신이 보인다. 써머믹스, 샐러드마스터 죄다 비싼 주방용품들이 들어 있다.

수입브랜드 식기며, 컵들, 박스 채 꺼내지도 않은 건지 아래 칸에도 무언가 짐이 가득했다.

커피머신을 보고 는 주영을 보고 주인여자는 의례적인 인사로 말을 건넨다,.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니요 감사합니다. 거의 다 봤어요. 이제 가봐야지요."

 만큼 다 봤다싶은지 부동산 사장님은 했던 이야길 또 한 번 강조해서 이야길 한다.

"조금은 구축이지만 브랜드 아파트라 마감이 아까와는 다르죠? 요즘 하자 많은 신축보다 예전 아파트들이 더 튼튼하고 자재도 더 고급스러워요"

"네 손볼 데 없이 너무 좋네요! 또 앞이 트여있어 여긴 뷰도 참 좋네요"

주영은 의례 하는 중개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거실 창에 너머로 비치는 나무들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높아 현실감이 없던 풍경이 햇살에  조금씩 키가 커져 주영의 눈앞으로 잎들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집이 너무 깨끗하네요. 모델하우스 같아요. "

주영의 칭찬에 주인은 그제야 조금 입가의 주름이 자연스럽게 웃어 보인다.

"아이가 이제 고학년이라 공부하기도 바쁘고 분위기도 집중할 수 있게 불필요한 것들은 다 치웠어요."

아이교육까지도 아마 완벽할 거 같은 주인여자의 모습 속에서 성공한 인생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았다. 나와는 다른 종의 사람을 본 듯 마음이 좀 우울해졌다.

내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 저이는 남편이 능력자일까 아님 집안이 원래 부자였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미소부동산 사장님은 사무실에 가서 차라도 한 잔 더하고 가라고 한다.

"어때요 강남에 아파트를 분양받아 놓은 게 있어 곧 입주해야 되나 봐. 그래서 급매로 나왔어요.

인테리어 이렇게 싹 한집이 이가격엔 말도 안돼지. 맘에 들면 바로 잡으셔야 되요. 여기 보러 오는 분들이 몇 팀 더 있어요. 금방 나갈 거 같아요."

나는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생각을 하고 있다 대답을 못했다.

"어떻게 계약금 걸어두시겠어요?"

"음 나쁘지는 않은데 주방이 조금 작게 나온 거 같아요. 가격도 생각보다 시세랑 큰 차이도 없는 것 같고……."

당장이라도 계약을 하자고 말을 꺼내고 싶을 만큼 맘에 썩 들었지만 주영은 자못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한다.

"남편 하고 상의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주영은 미소부동산 사장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해 등을 돌렸다.

생각보다 일찍 집을 보는 일은 끝나버렸다. 좀 아깝지만 반차를 내고 집을 보러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주영은 어떤 일이든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부딪혀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이라는 것은 실체를 보고 더 가지고픈 욕망이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대출을 받으면 돼!’

아니 감당할 수 있겠어?’

일단 사면 오른 후에 정리하면 되는데 뭘 걱정해? 남들은 다 금수저 물고 나온 거 같아? 인생 뭐 있어 일단 저지르고 보는 거야.’

마음 한켠에서 들리는 긍정의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무작정 걸었다.

 지하철역을 지나쳐서 이제는 차를 타기도 걷기도 애매한 거리를 지나가고 있다.

 할머니 한 분이 굽은 등을 피지 못하고 손수레에 폐지를 싣고 지나간다.

 그녀의 앞모습도 뒷모습도 늙음과 곤궁으로 그늘이 져있다.

 주영은 계속 생각없이 발길가는대로 걸었다.

 공덕역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길에는 뒷모습은 젊은이고 앞모습은 노인의 얼굴 한 사람들이 지나다녔.

 가끔씩 지나가는 앞 뒤가 모두 싱싱한 젊은 청년이나 대학생 또래의 아가씨들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젊은이들이 귀엽게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술상을 봤다는 소리를 들어서 인지 평소보다 부지런을 떨었는지 남편이 일찍 들어왔다.

"얼렁 손 씻고 이리로 와요"

창가에 펴놓은 교자상 위로 종이봉투 속엔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치킨 한 마리와 캔맥주가 놓여 있었다.

"집은 잘 보고 왔어? 오늘 집이 제일 마음에 든 거야?"

"어 교통이나 가격이나 그나마 괜찮은 거 같아. 그래서 더 걱정이야"

"마음에 드는데 왜 걱정이야? 집 보러 다니는 게 취미인데 못하게 된 게 걱정인가 하하"

남편은 늘 그런 식이 었다. 좋으면 좋은 게 다가 아니지 않는가. 세상에 일이라는 게 단순하지만 않다는 것을 나이 50이 다 되도록 모르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가진 돈이 충분하지 못하는 게 고민이지 마음에 드는 게 문제겠어?"

" 집이 너무 깔끔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돈도 많아 지금 사는데도 좋은데 강남에 분양받은 아파트를 입주해서 이사 간다고 하네."

"시기를 잘 맞춘 걸까? 원래 금수저들일지도 모르지. 우리는 둘이 벌어서 아이도 없는데 왜 돈을 못 모았을까?"

듣지는 마는지 대꾸가 없다 .

남편은 앉자마자 치킨 다리를 뜯어 금세 뼈만 남기더니  캔맥주를 딴다. 순식간에 맥주가 꿀렁이며 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주도 경섭을 따라  맥주를 한 모금 들이컸다. 알싸한 감정이 솟구쳤다.

" 집 문제로 의논 좀 하려는데 내 얘기는 듣고 있는 거지?"

그 사이 치킨 네 조각을 해치운 남편은 두 번째 맥주 캔을 따고 있다.

경섭은 입안에 남은 치킨조각을 우물거린다.

캔맥주를 집으러 손을 뻗은채 눈길도 주지 않는다.

" 듣고 있어. 그래도 우리 나름 살집도 있고 나름 선방했지 뭐 사업하다 주식하다 망한 사람도 있고 자가가 없는 사람도 많은데."

주영은 욕심없는 것이 요즘세상에 단점이라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 그래 북한어린이 소말리아 사람들은 배를 곪는다는데 우린 아주 행복하지 행복해 나는 사십이 넘어서 아직도 일을 하고 아등바등 행복해 죽겠네"

"그래 그런 마음 가지고 살아야지. 자기야 나도 행복해. 그럼됐지 뭐"

남편은 입가에 기름이 덕지덕지 한 채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한다.

 영주는 너무나 태평하고 멀쩡한 얼굴을 보고 무언가 뜨거운 게 치밀었다.

"장난해, 결혼하면 여왕벌처럼 꿀통에 가만히 집에만 있음 된다고 자기가 열심히 일벌처럼 꿀을 따온다고 한 사람이 누구지? 그래  좋어ㆍ나는 여왕벌도 필요 없고 같이 꿀을 따는 일벌이 되어도 좋았어  그럼 우린 꿀벌처럼 다른 벌처럼 살아야 했다구! 우리가 말벌이야? 아님 토종벌이야? 그냥 양봉벌처럼 그냥 열심히 다른 벌들 날 때 같이 날고 같이 집에 들어오고 그렇게 살자고 했잖아"

"그래 알아요 알아 고맙지, 아 그리고 중남미에는 뭐라더라 히야신티난가 뭔가 하는 벌은 여왕벌이 없이 암수가 같이 꿀을 따는 벌이 있다고 하더군."

" 누가 먼 나라 벌 종류가 궁금하대 당체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 당신은 쓸데없는 지식은 알아서 뭐 해 썩 먹을 건데."

"아 미안 벌이야기를 하길래 나는."

" 아 됐고 내가 처음부터 아파트를 사야 된다고 그랬지 그 넘의 이상한 카페에 가입해서 대인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집값이 대폭락을 할 거라고 한 말만 믿고 아파트를 못 샀잖아"

"사실 그때 우리가 아파트 살 돈도 좀 부족했잖아"

"남들은 다 제 돈 주고 집을 사는 줄 알아? 대출 끼고 사서 다 지금 세 따블 네 따블 가격이 올랐어. 우린 혼자 잘난 척하다가 바보가 된 거라고 당신 친구들 보고도 느끼는 게 없어 현수씨네는 미국파견 가면서 멀쩡한 아파트를 팔고 갔다 와서 아직도 무주택자야 병철씨네는 전원주택 지어 간다고 그리 자랑하더니 지금 서울로 돌아오고 싶어도 못 간다고 한탄하잖아 친구들도 하나같이 자기 잘난 맛에 살다 다 망했지. 그나마 창훈씨네가 무리한다고 다 비웃어도 아파트 두 채를 사서 지금 제일 부자야 부자."

경섭은 잘못은 잘못이지만 반복되는 힐난에 한숨이 나왔다.

"옆에서 그런 거 보면서 당신은 느끼는 게 없어?"

조금은 시무룩해진 경섭이 먹던 치킨 조각을 슬쩍 내려놓았다.

"그래 이번에는 당신 말을 따를게. 그런데 아직도 조금 비싸지 않을까  싶어 나는 . 집값이 이번에는 진짜 폭락한다고 하는데 코로나 때 풀은 양적완화를 이제 줄여야 할 시기라 금리가 인상될 수밖에 없거든 지금 PF문제라던지 정부에서 어떻게 부양하려고 해도 대출문제가 터질 거라고. 자영업자, 기업, 금융권은 물론 개인들이 부채가 너무 많거든."

주영은 집걱정을 하는건지 나라걱정을 하는건지 현실은 딴판인데 뜬구름잡는 소리를 하는 남편이 진짜 남의 편 같았다.

"또 또 유트브 좀 고만봐 제발."

"알았어, 안 산다는 게 아니라고. 이제 당신 하자는 대로 할게. 그래도  가격을 좀 더 깎던지 조정되는 것을 지켜보자구.  한 1억 정도라도. 아니 알았어. 몇 천이라도."

"하여튼 암말 말어.이번에는 내가 결정할게 나도 무리할 생각은 없거든."

"그래 난 오늘 피곤해서 입맛이 없네. 좀 들어가 쉴게."

 자리를 일어나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자 혼자 남은 주영은 채 반도 안 먹은 맥주를 들이켰다.

치킨을 먹으려 봉지에 손을 넣자 부스러기들만 잡혔다 한참 만에 모가지를 집어 들었다    

 


밤이 깊어져도 건너편 동에는 하나 물 베란다 불빛들이 조용하게 켜지고 있었다.

영은은 곧 살던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리에서 일탈된 아프리카 초원의 물소처럼 사자나 맹수의 먹잇감이 되는 죽음을 떠올렸다.

무리를 짓고 그 속에서 일원으로 살아가는 일은 함 힘없고 약한 동물들, 또 사람들도 마찬자기로 생존의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어느 무리에든 속해야만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소떼들이 뛰듯 사람들이 뛰어가는 곳에 섞여서 뛰었다. 벌떼들이 모여서 작고 여린 개체로 세상의 적과 대적하듯 살아가는 것은 그런 것이라 믿었다.

무엇인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산 게 잘못인가 왜 이런 시련이 닥쳐야 하는지 슬픔과 분노가 뒤엉켜 흔들렸다.

영은은 멍하니 베란다 밖을 쳐다보다  민성이 들어오자  촬영을 하려  테이블 위의 주섬주섬 꺼내 놓은 가방이며 옷가지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아직도 팔게 남아있나 많이도 사잿끼더니, 오늘도 집보고 갔는데 잘 안되었어?"

힘들어진 형편이 다 내 탓이라는 것 같아 남편의 말이 고깝게만 들렸지만 영은은 물건을 마저 치우다 말고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 어 아무래도 가격을 좀 더 내려야 할 거 같아. 신축도 아니고 가격이 애매한 거 같아"

"가격이 아니라 살 사람이 애매한 거겠. 비싼 신축은 그래도 매매가 종종 된다는데 우리 집이 어중간한 듯해.  돈 많은 사람들이 거들떠 보기에도 아니고  살래도 돈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몰라 그러게 내가 매장을 더 늘리지 말랬자나"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코로나 때도 잘 나가 길래 기회다 생각했지 팬데믹이 끝나면 경기가 다시 확 좋아질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돈이 씨가 말랐나 봐 젊은 애들이 돈을 안 쓰네."

"그러게 우리 같이 비싸게 집을 산 사람들이 많은 걸까? 다들 어렵다고 난리네"

'젊은 사람들은 돈이 없고 노인들은 돈을 않쓰고 이젠 사람들이 경기가 나락으로 가는게  실감이 나는 건가봐. 당체 뉴스는 살아난다는 경기가 맞긴 맞는거야?  아니면 정말로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서로서로 집들을 비싸게 사고팔다가 생활비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 그 많은 돈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돈 벌었다는 곳은 없으니 미스터리해."

영은은 더 이상 머리 아픈 계산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빨리 걱정 더미같은 이집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좀 싸게라도 팔자 일억 이억이 문제가 아닌 거 같아 경매로 넘어가는 거 보단 낫겠지"

" 그래 나도 직원들 두 명 남기고 다 내보냈어. 리볼빙도 더 안돼.  부동산에 다시 연락해 봐"

"알았어. , 마저 이거 좀 하고. 당신은 씻고 좀 쉬든지".

영은은 다시 밀어 놓은 프라다 사피아노 가방을 집어 들고 한참을 바라보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미소예요 일하시는데 죄송해요 문자보다 직접 드릴말이 있어서요. 잠깐 통화 괜찮으시져?"

"아 네. 어쩐 일로"

퇴근 준비로 정신없는 시간에 뜬금없는 전화였다. 미소부동산 사장님의 전화가 의아했지만 왠지 들떠 목소리가 밝아 보였다.

안 그래도 낭창한 목소리가 더 하이톤으로 들린다.

"어제 보았던 마포 센트럴 포레스트 리버 로얄 카운티 캐슬 3차 아파트 108동 아파트 아직 결정 못했지요?  좋은 소식이 있어서 알려드리려구요. 사모님이 젤 먼저 생각이 나서 전화드렸어요."

"네 무슨 좋은 소식이란 게?"

" 음 사실 보신 집이 분양 입주일이 급박한 거 같아요. 가격 좀 내려준다고 연락이 왔어요. 제가 어제 본 분이 하실거 같으니 가격을 좀 더 깎아달라고 얘길 잘했어요."

"네 그럼 얼마나요?"

"한 칠천 정도 칠천이 면 사자마자 그냥 앉은 자리에서 돈 버시는 거예요."

"어 정말요 근데 혹시 더 시세가 내려가지는 않을까요? 저희는 대출도 어느 정도 껴야 될 것 같아서요 남편이 자꾸 기다려보자고 하네요."

"에휴, 더 안 떨어져. 나라 망하지 그럼, 서초강남송파 그리고 마용성 요런 데는 가격이 오르지 외곽이 걱정이지 지금 빨리 결정 안 하면 다른 손님들은 바로 입금한다니까 정말 기회야."

"그래도 좀..."

"정 그러면 내가 집주인에게 좀 더 얘기해 볼게요. 일이 천이라도 빼달라고 잘 설득해 볼게요. 더 깍든 어쨋든 무조건 해요. 내말 믿고 내일이라도 바로 계약해요. 남편 분하고 오늘 상의하시고 내일 점심에 볼까요."

" 네 일단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 중에 연락 제가 드릴게요."

"진짜야 이거 집에가 잡아요 내가 사고픈데 나도 집이 세채야 "

"늦음 다른사람한테 계좌줄거야 내가 더 내려볼테니까 꼭해여 계약되면 나도 좀 신경써주고 호호 하여튼 하는 걸로 알고 잡아둘게요"

주영은 좋은 소식이긴 하나 너무 급작스러워 정신이 없.     


올 시간이 되었는데 경섭은 금방이라더니 아직 안 보인다.

아파트 이름을 대니 용성초등학교 옆이네 하고 아는 척을 하더니 길을 헤매는지 십 여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아니 잘 아는 것 같이 금방 온다더니 왜 늦어?"

"어 예전 기억만 있어서 길이 많이 바뀌었네. 초등학교만 찾음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가 없어졌네, 허 참 "

초등학교자리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공영주차장이라고 큰 간판이 자리한 뒤로 차들이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아직도 뒷골목에 집들과 상가들은 쇄락한 채로 줄지어 서있고  좁은 이면도로에는 사람과 차가 어깨동무를 하고 지나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지나는 이들은 노인들이었고 뒤편으로 우뚝 서있는 오래된 아파트보다 더 오래된 집들이 아파트 파편처럼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 같아 보였다.     

"당신도 어제 같이 집을 볼걸 그랬어. 이럴 줄 알았음 "

"내가 봐도 뭐 아나 당신이 맘에 들었음 된 거지"

그래 살지만 않았지 나도 아파트 박사야! 우리가 모델하우스며 집 구경 다닌 게 얼만데 당신말대로 기다린 보람이 있네.”

주영은 너무나 순조롭게 일이 풀리고 결정이 되니 순간 알 수 없는 다시 또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일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면 어떻게 하지 살짝 걱정이 되어 전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주영은 오래된 마을 쪽을 보다 이내 길을 건너 맞은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경섭의 팔짱을 끼고 단지를 한참을 서서 봐라 보았.

임대, 매매문의를 붙인 쇼윈도우가 드믄드믄 보이고 이른 시간 상가들의 간판이나 네온사인 불빛들이 꺼져 무언가 허전해 보인다.

그래도 대단지를 옆에 낀 상가인데 걱정하는게 우스웠다.

'왜 연예인 걱정, 재벌걱정을 하지 후후'

해가 이젠 완전히 떨어지고 늦은 저녁이 되니 베란다 창마다 노랗고 하얀 빛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커다란 벌집에 벌들이 모아 놓은 꿀들이 쌓여 있는 듯, 노란 불빛마다 10억 어치의 행복이 가득 담겨 있는 거 같이 보인다.

때마침 꿀을 따온 일벌들이 아파트 단지로 꼬리를 물고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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