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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문 베타

(단편 습작)

by 승환

하프문 베타


주방에는 어울리지 않게 큰 창문으로 가을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식탁 위에 자리한 어항에 물결을 만들고 있다.

허항 속에는 파란 색 물감이 뭉쳐서 떠다니고 있었다.

하프문 베타, 뮤지컬의 여배우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듯 큰 지느러미와 몸통까지 온통 짙은 샛파란 색으로 차려 입고 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자못 혼자 뽐내며 유유히 물속을 돌아다닌다.

물 속은 평화롭기만 하네, 그래 너는 뻔뻔하게도 혼자서도 참 아름답구나,,,

나는 다시 욕지기가 올라왔다.

저 파란색의 위선자, 독선자, 남들에게 잘 보이는 것만이 오직 살아가는 이유인 듯 화려하게 조잡한 분장을 한 존재다.

주방 한쪽에 걸어둔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2와6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의 분노는 이쯤에서 넣어두어야 한다. 곧 움직일 시간이었다.

보일러실에 후줄근한 비닐에 쌓여 있는 큰 트렁크를 꺼내어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써 본적이 없어 가방은 비닐을 벗기고 먼지를 털어내니 새것처럼 멀쩡했다.

옷가지들과 잡다한 소지품들 그리고 핸드백 몇 개를 담으니 가방은 더 이상 자리가 없다.

무언가 챙기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깨름직하고 불안하다. 그렇다고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딱히 잊고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나지는 않는다.

남편이 돌아올 때 즘 나는 이짐에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내가 만약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나의 탈출을 남편은 눈치 채지 못하고 아니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일상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우리는 감정이 메말라만 가고 서로가 익숙한 풍경인 듯 그렇게 되었다. 굳이 자세히 보려하지도 생각조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세시 반에 친구 미정이가 차를 가져올 때까지 남편은 돌아 오지 않을 것이다.

빈 의자에 앉아 멍하게 창밖을 보니 익숙한 거리가 생경스런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내 집안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새삼 수년을 살던 공간이 낯설어 지기 시작했다 다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아도 옹색하고 비좁은 공간이다.

신혼을 시작하며 5년을 산 집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남들의 눈에는 힘든 인생으로 안쓰럽게 보았을지도 몰랐지만 매일 반복되는 제자리 같은 일상도 버겹다는 생각할 시간조차 없이 바쁘게 살았다.

남들도 비슷비슷 살아간다는 생각이었기에 결혼 전에는 그럭저럭 불만 없이 살아왔고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가져야 한다는 욕심은 크게 없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이라는 것은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고 없던 욕망도 만들어 냈다.

막연하게 신혼이니 당연 이왕이면 서울의 공원과 역이 가까운 새 아파트에 살아야지 하는 마음부터, 안보이던 가전이며 가구며 물건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에 있는지도 몰랐던 소유욕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욕망과 현실은 늘 서로 반대말의 의미를 가진 단어였던 것을 망각했다. 그런 꿈을 꾸어도 그 것은 먼 미래의 일이라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생각했기에 바로 닥치고 나니 마음만 급해졌다.

특별히 남편과 내가 인생을 허비하며 막 산 것은 아니지만 막상 결혼을 생각하고 집을 구하려 할 즘 가진 돈은 턱 없이 모자랐다.

양가의 부모님들 역시 열심히 사신분이지만 가진 집 말고 별다른 재산이 없으셨고 그 것 마저 뺏어 올 만큼 우리 둘 다 모질지는 못했다.

서울의 아파트는 구축이라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대출을 받아서 간다 해도 무리였다 외곽으로 나가 살기에는 둘 다 직장이 문제였다. 아파트에 대한 꿈을 접고 역과 가까운 곳으로 신혼집을 찾아 서울 구석구석 열 번 넘게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다 결국 이곳으로 들어왔다.

작은 빌라였지만 신축이라는 것에 위안을 가졌다. 게다가 동창이 크게 내어있어 채광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막힘없는 앞날을 보여주듯 쭉 뻗은 도로가 놓여있는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놓여 있었다.

이사를 마치고알 수 없는 벅찬 감정과 묘한 흥분을 느꼈었다. 둘만의 공간이 주는 알 수 없는 안도감마저 들어 이제야 비로소 내게도 행복이라는 것이 로켓배송을 온 택배처럼 바로 내 발 앞에 도착하여 있는 듯싶었다. 이제 나는 무릅을 굽혀 박스를 주워들고 개봉하면 되는...

모든 일, 특히 좋은 일들은 오래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전세 연장을세 번을 하는 동안 몇 천만 원씩 보증금은 올라갔고 따로 저축을 할 틈도 없이 집주인에게 상납을 했다. 우리가 만든 돈이지만 집주인과 은행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보며 무언가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다본게임에 주전이 되지 못한 후보 선수들의 마음 같았다.

남들도 인정하는 나만의 공간이 부러웠다 조금 큰집이나 외곽에라도 집을 사려 알아보는 중이었다

모은 돈과 대출을 받은 돈은 계좌의 짧은 한 줄로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듯이 이번에는 주인이 사라졌다.

다행히 바뀐 법으로 세입자 경매 우선권으로 주택을 인수했다. 대출은 묶여 있고 좋든 싫든 이 빌라에 살 수 밖에 없었다.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었다 남편과 내가 충돌이 잦아진 것이 그 이전이지만 무엇인가 계획을 세우고 꿈 꾸었던 것이 틀어져 버리게 되면서 우리부부는 방향성을 잃어갔다.

어제였다. 그저 별 다를 거 없는 일요일, 그날에 나는 남편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니 그와 나 어쩌면 사람이란 것의 본성은 모두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고도 외면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니까...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났었다 하루 정도는 기상에 부담을 던져버리는 것 만큼 큰 행복은 없었다. 그래도 전업이 된 나의 의무로 아침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토요일 외출과 돌아오는 길에 늦은 장을 보고 채 정리하지 못한 양배추와 계란 사과봉지들이 냉장실에 어지럽게 억지로 낑겨져 있다.

냉동실에는 덩어리 갈빗살과 냉동식품들이 봉지재 한쪽 귀퉁이가 튀어나와 소분된 박스들 위에 올려져 있었다.

저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남편은 계획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특히 소비, 돈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랐다. 즉흥적인 일들 장을 같이 보아도 뭐든 일단 사재끼고 일을 벌이는 사람이다.

어제 장봐온 것을 생각하면 올라도 너무 올라 시장이며 마트며 모두 몰래카메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랑 부부의 두 식구 살림이란 것이 먹는 거 외에는 별달리 들어갈게 없어 보였는데도 그랬다.

지난 달로 코스트코 회원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상품권을 사놓았기에 몇 번은 장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대용량 제품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쓸데없는 지출을 막으려 회원가입을 연장하지 않았지만 구질구질해 보인다는 남편의 말이 계속 마음을 시끄럽게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편은 일어난 듯싶지만 나와서 거들어 줄 기미가 없다.

“일어났어? 뭐해? 나와서 나 좀 도와주지”

어, 알았어. 대답을 하기도 무섭게 주방으로 나와 고기를 만지작거린다.

“이거 잘라서 소분하면 되지?”

밀린 설거지를 정리하며 힐긋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온 듯 잠옷을 입은 채 떡진 머리로 갈비살 포장 비닐을 손으로 억지로 찢고 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위로 반듯이 잘라내면 쉬운 걸 억지로 찢어서 어수선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며 엉크러진 모양도 모양이지만 억지로 찢으려 손가락에 힘을 쓰는 모습도 꼴 뵈기가 싫다. 마음이 불안해 진다.

“자기야 가위로 자르지 그래, 손 씻었어? 음식 만질 때 손 좀 씻어 제발!”

안 그러려고 해도 짜증이 올라온다. 매번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주의를 주고 부탁을 하여도 변하지 않았다.내가 하는 말을 건성건성 듣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어 손 씻었어 좀 전에...”

“씻긴 언제 씻어? 화장실이 요 앞인데 난 못 본 거 같은데…….”

“알았어. 한 번 더 씻지 뭐”

남편은 뭐 하나라도 지기 싫어하고 자기 합리화가 체득된 인간이다.

처음에는 의학적으로 사람들의 자가 면역력에 과도한 청결이 오히려 몸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억지주장을 하다가 이제는 거짓말도 천연덕스럽게 하고 우기기까지 한다.

사랑이라는 것의 유통기한이 있다면 3년 정도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 유통기한에 맞게 남편이 변질 된 것인지 남편이란 사람을 가성비 좋은 중저가 브랜드로 착각을 했던 것인지 실체를 알게된 후 별 달리 방법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냉동실에서 미리 꺼내 놓았지만 얼어붙은 갈빗살 2kg의 덩어리가 이물스럽고 단단한 덩어리인체로 도마에 펼쳐져 있다. 고기 집에서 먹던 얇은 모양의 절편으로 쓸기 전에 기름과 힘줄을 띠어내려 서툰 칼질이 매번 애먼 도마바닥에 쿵 소리를 낸다,

“엔간하면 그냥 먹지 이거 다 띠어내니 반은 준거 같다. 이러면 잘라진 걸 사는 거나 가격차이도 얼마 안 나는 거 아냐? 요즘 최저임이 돈 만원 인데 우리도 좀 쉽게 쉽게 살자. 이정도로 우리가 어려운 처지는 아니잖아?”

“당신은 매번 할 거 다하면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어 불만이나 토를 좀 달지 않음 안되는 거야? 아낄 수 있는데 왜 낭비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음 하는데 힘이 달리니 도와달라는 거자나 먹기는 태반을 혼자 다 먹으면서 소기름이 몸에 좋지도 않아서 하는 거니 고만 툴툴거려”

“알았어 알았어 일절만 해 다했어 이거 담을 거나 줘봐”

현정은 싱크대 문을 이곳저곳 열어보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분류된 박스를 하나씩 들쳐보더니 이내 한숨을 쉰다.

“진공포장을 해야 하는데 비닐을 다썼나봐 어떻게 하지?”

“그냥 비닐에 소분해서 묶어 놓음 돼지 빨랑 먹어치우자”

“뭘 빨랑 먹어 먹긴, 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길 해 그냥 한 번에 담아서 냉장실에 넣어둬 일단”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오늘 바로 안 오고 대형마트에 팔지도 않자나 내가 뭔 얘기만 하면 너는 날 무시하고 짜증만 내니 일요일 아침부터 이런 걸로 왜 사람 마음 불편하게 하는 건데,

그렇게 죽어도 거기다 담으시려면 당근이라도 찾아보던지”

볼에 심통을 잔뜩 묻힌 채로 입을 다물지 않고 궁시렁거린다. 그러면서도 연신 주섬주섬 도마 위의 것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장비처럼 고리눈으로 남편을 노려보다가 한 숨을 쉬고 핸드폰을 들고 지문을 꾹 눌러 창을 화면을 켰다

당근앱을 열고 “진공포장기“, ”진공포장 전용비닐”, “푸드세이버”, “진공백”을 하나씩 검색하기 시작한다.

가정용 진공포장기 기기는 많이 나오지만 진공백만 파는 곳은 찾기 쉽지 않다.

업소용이라도 혹시 하는 마음에 하나씩 들어가 본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하더니 코로나 때도 아닌데 여기 저기 폐업정리를 하는 식당과 카페가 많이 보인다.

멀지 않은 서교동에 한곳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레스토랑인지 카페인지 정체가 모호한 식당에서 카페집기와 주방용기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 당신은 몸 쓰는 거는 별 도움이 안 되는데 잔머리 쓰는 거는 잘 하네. 당근에 잡아 놓았어. 당신이 다녀와. 일단 아침부터 먹자”

식탁에 단촐히 된장찌개와 어제사온 삶은 양배추쌈이 차려졌다.

포터블 인덕션을 꺼내 손질한 갈비살을 후라이팬으로 구워 늦은 아침을 한다.

스텐 프라이팬에 들러붙은 고기가 들러붙어 잘 안 뒤집어지는지 팬을 긁듯이 힘을 주며 뒤집려 애를 쓴다.

“고기용 팬은 그냥 코팅팬을 쓰는 게 나을 거 같네 젠장 자꾸 달라붙어 먹고 나서 소다가루로 닦아 내는 것도 구찮고”

“테팔 후라이팬이 왜 요즘 똥값이 된줄 알아? 외국에서는 코팅 발암물질로 잘 안쓰는 걸 우리만 그냥 무심하게 쓰고 있는 거야”

“좀 살살 좀 뒤집어 이 팬이 얼마자리인데 조심 좀 해 뭘 아끼는 게 없어”

남편은 샐러드마스타가 개당 백만원 가까이 하는 비싼 스텐 냄비와 프라이팬들인걸 알고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막 쓰지도 못하고 매번 별도로 딱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둘째 치고 분수 맞지 않는 주방용품 따위에 대리만족을 하는 거 같아 좀 그렇다고 했다.

집이 없이 비싼차를 사는 남자들도 있고 명품을 사는 여자도 있다 나는 가족의 건강을 위한 투자이기에 그런 식의 비난은 동의 할 수 없다,

밥을 몇 숱가락 들더니 먹다 말고 남편은 의자에서 슬그머니 일어난다, 또 술을 가지러 가는 것 같다. 언제 부터인지 집에서 의례 술을 편하게 먹기 시작했다.

“술은 안돼!!! 일어난 김에 나 물이나 갖다 줘”

“고기 먹는데 반주로 한 두 잔은 괜찮자나”

“알콜중독이니? 이따가 운전할건데 좀 생각 좀 하고 살아, 내가 일 다닐 때 동생 불러서 토요일마다 점심에 낮술 먹더니 낮술이 아주 몸에 뱄네 뱄어”

“그 얘긴 왜 또 하는데 술 먹는 거 보기 싫다고 해서 너 없을 때 먹은 거야. 나가서 먹음 돈 들고 집에서 좀 몇 번 먹은걸 …….”

“몇 번? 4, 5년을 그렇게 했어 내가 제발 나 들어 올 때 취한 모습보이지 말라고 같이 한주 먹을 거 같이 만들고 할 거 많다고 사정사정을 했어 근데 당신은 들은 척도 않하고 당신 하고픈 대로 그렇게 했어”

“술 좀 먹었다고 청소든 빨래든 해야 될 거 안 한 거 없었자나. 사업 망하고 힘들어 하는 동좀 챙겨서 밥도 먹고 그런건데 너는 그걸 이해 못하니? 하다못해 너는 동생네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어도 10원 한 장 못 도와준다고 했어 그래 경제적으로도 못 도와줘서 마음이라도 챙겨주는 게 그렇게 잘 못 한 거니?”

“우리 집사려고 한푼 두푼 아끼고 살았어 지금도 그렇게 살고. 동생네는 할 거 다하고 그렇게 펑펑 쓰고 다녔어 맞벌이 하며 한푼 두푼 벌벌 떨며 살았던 내가 당신은 미안하지도 않지? 부부라는 게 서로 우선시 하고 같이 한 몸처럼 살아야 하는데 너는 그저 동생 누나 친구, 니 온갖 지인들만 생각하지 나는 한 4순위 쯤 되겠다.”

“알아 안다구 하지만 내가 남들 하는 거 안하는 거 있어? 돈 벌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정작 내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 거 같아? 나는 나름 희생한다고 생각하는데 너는 다 부족해보이기만 하지 너만 욕망이 있고 꿈이 있니, 너만 중요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을 안하자나”

“됐어 밥이나 얼른 먹어 당근 갈 시간 얼마 없어.”

“먹고 설거지 다하고 갈게. 그래야 뒷말 없지.”

“참 쪼잔하다 쪼잔해 뒤끝 참 있다 있어. 내가 할게 그냥 일어나 내가 남자랑 사는지 여자둘이 사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한마디도 안지려고 그러니”

“네 네 죄송합니다 마님 쇤네가 입이 방정입니다.”

아침밥을 먹은 뒷정리를 하면서도 어정쩡한 남편의 농담에 말싸움이 더 번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간다 어디라 그랬지?”

“서교동, 그냥 걸어 갔다 와 밥먹고 소화도 되게”

“술도 안먹었는데 후딱후딱하자 내시간은 시간도 아니니? 그냥 차로 다녀올게”

“알아서 해 오후에 엄마네 가기로 한 거 알지 늦지 말고 빨리 다녀와. 가서 쓸데없는 거 사오지 말고 그냥 진공백만 사와”

홍대 앞의 식당이나 카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좁은 골목골목에 숨어 있었다.

승환은 주변을 두 바퀴나 돌아서 간신히 차를 골목입구를 지나 벽 한쪽에 주차를 하였다.

밖으로 난 외부 계단을 올라 한쪽 벽면에 간판이 써 있다 닫혀있는지 안에는 불이 꺼져 있다.

“온거 같은데 문이 닫혔어 시간 맞아?” 승환은 현정에게 전화를 걸어 짜증섞인 목소리로 불평을 한다.

“조금 기다려봐 내가 연락해볼게 오후부터 여는데 내가 오전에 간다고 부탁한거야”

전화를 끊고 승환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이내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네요”

마흔도 채 안되었을 것 같은 젊은 남성이 별로 미안하지도 않다는 기계적인 말투로 이야길 하며 문앞으로 성큼 올라간다.

“올라오시져”

열린 문안으로 불이 켜지자 어지러이 널려져 있는 짐 꾸러미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빛이 바랜 크고 작은 액자들이 벽면에 세워져 있다 처음 샀을 때야 비싸겠지만 이것도 누가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테이블 위로 채 뜯지 않은 소스들과 식자재들이 놓여 있었고 반대편 테이블위로 접시들과 유리잔, 컵들, 여러 가지 식기들이 있었다.

벽면 한 켠에 줄지어 있는 와인들과 리큐르들 술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눈을 옆으로 돌리자 어항 두 개가 보인다.

새빨간 긴 지느러미를 치렁이며 헤엄치는 물고기가 들어있었다. 한 쌍인지 파랑이 뚝뚝 덜어질 듯 조금 큰 물고기가 들은 큰 어항도 보인다.

“진공백 사러 오신거지요?”“아 네, 가게를 정리 하시는가 보네요. 여기 꺼내 놓신 거는 저 어항들 빼고 다 파시는 건가 보져? 혹시 저 술들도 파시는 건가요?”

“아 술 좋아하시나봐요 원하시는 거 있음 몇 병 팔게요, 그리고 어항은 나눔 하려고 합니다.” “아 네 나눔 이었군요”

승환은 나눔이라는 말에 다시금 어항을 눈여겨 자세히 보았다.

딱히 열대어나 금붕어를 좋아하지도 키워보지도 못했는데 물고기보다 진하고 강렬한 빨강 과 파랑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난다.

이것을 들고 가면 아침에 툭탁거린 현정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선물이라고 할가? 싫어 하진 않겠지? 어쨌든 승환은 매우 맘에 들었다 현정이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혹시 제가 가져가도 될가요?”

“집에서 혹시 열대어 키워보셨나요?”

“네 이것 저것 여러 가지 다 키웠었습니다 주시면 아끼며 잘 키워보겠습니다”

“아 그러시군여 혹시 재네들 베타애들도 키워보셨나요?”

“네 열대어를 좀 좋아해서요.”

승환은 진공팩과 술병을 들고 차에 싣고 어항을 실으러 카페 앞으로 차를 대었다.

부지런히 물을 뺀 어항과 짐들 싣는 승환의 등 뒤로 카페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얘네들 키우는데 주의하실 거 좀 알려드릴게요” 모가지를 짜른 빈 생수통에 각각 물고기를 담아주면서 못미덥고 아쉬운지 이야기를 한다.

“네 말씀 안해주셔도 저도 알고 있어서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 이만... 모르는건 또 인터넷에 찾아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어항은 이거 큰 거 하나만 가져갈게요”

“아 네 그러시겠죠 어항은 두 개가 필요하실텐데 집에 있으신가요?”“네 집에 하나 있어서요 덕분에 필요한 것들도 잘사고 고맙습니다”

“네 잘 쓰셨음 저도 좋겠네요”

싱글벙글 하며 들어오는 남편의 팔에는 웬 어항이며 뭐가 주렁주렁 달려서 같이 들어온다.

최대한 자제한다고 하여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게 다 뭐야? 자기야 진공백만 사오라고 했자나”

남편은 또 쓸데없는 것들을 사온 거 같다. 돈을 쓰는 일부터 무슨 일이든 계획성이 없다. 사오는 것은 실용성보다는 예쁜 쓰레기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 이번에는 어항이라니.......

“어 이거 나눔이야 나눔 산거 아니라고 당신 좋아 할거 같아서 가져온 건데 예쁘지?”

“내가 돈 때문에 그러는 거야 꼭 필요한 거도 아닌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사오는 게 문제자나 당신이 사오는 것들, 사는 것들이 뭔지 알아 죄다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들이라고 알아? 코딱지만한 집에 어항을 어디다 둘 건데? 당신이 어항대신 나가 잘 거야? 내가 고양이도 개도 싫어하는데 물고기가 말이 되니?”

“너랑 나랑 왜 그렇게 싸우는지 잊었어? 뭐 하러 부부심리상담을 두 달이나 받아가며 그랬는지 생각해 봤어? 좀 나아지는 거 같다가 도로 원위치야 당신이라는 사람은. 상대방 말이나 의견을 경청을 하긴 하니? 당신 부인이 뭐가 힘들고 아픈지 아냐고? 난 십년을 넘게 살았어도 너의 등판만 보고 사는 기분이야 넌 언제 뒤돌아 줄 건데 언제 나를 봐줄 거냐고? 네가 보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면 너 혼자 살지 왜 결혼을 한 건데?”

“또 시작했니? 난 네가 좋아할 줄 알고 가져온 거자나 사람 성의나 마음을 무시하는 거 아냐 너만 왜 그리 유별나고 잘난 거냐? 내가 하는 거중에 내 모습 중에 니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니 그렇게 잘난 인간이 너야 말로 혼자 살지 그랬어?”

“ 내가 네게 기대고 바라는 게 서로 상의하고 동의하고 일을 했음 하는 거야 근데 그렇게 못마땅하니 항상 너는 귀 닫고 다른 사람 말 무시하고 너 하고 싶은 대로 즉흥적으로 하자나 널 이해하려고 너랑 7년을 살면서 나도 할 만큼 했어 너는 노력한 게 있니?”

“알았어 아 좀 그만해라 누가 들으면 니 남편이 또라인 줄 알겠다. 서로가 다르면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안되는 거야? 내 마음이나 생각도 당신이 다 컨트롤해야 하는 거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을 하고 죄를 지은거야?”

소리치듯 쏴 붙인 남편은 현관 문을 닫고 나간다. 어딜 가냐는 목소리를 못들은 척 집 밖을 나왔다.

승환은 답답한 마음에 집앞 골목에 서서 담배를 두가치나 연달아 피우고 다시 집으로 올라왔다

현정은 화가 좀 가라 앉은건 지 하프문베타가 들은 생수병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 슬쩍 입가에 미소가 보였던 것 같기도 하였다.

“미안해 내가 오늘 좀 많이 오바했나봐 얼른 정리할게

“그래 시간이 없네 그만하자 나도 소리친 거 미안해 가져온 거니 정리해 당신 열대어나 물고기 키워 보긴 했어? 얼렁해 나갈 준비하게”

현정은 더 이상 싸우는 일이 별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저 결혼이라는 것 부부라는 것은 서로를 증오하다 포기하면서 껍데기로 늙어 가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가져왔다는데 좋게 생각해야지.

“이게 좀 자리 차질 하긴 하네 안 그래도 집이 좁아서 어항이 두 개인데 하나만 받아왔어 키우는 거는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되겠지 이 빨간 애 봐봐 너무 예쁘지 않니? 사람으로 치면 당신같이 화려하고 귀족같이 도도해보여”

“파랑이와 빨강이 한 마리씩 우리부부 같기도 하고……. 어쨌든 미안해 내가 일방적으로 일을 벌려서……. 얼렁 어항 정리할게“

어항은 갈 자리가 없어서 식탁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수족관이라기에는 좀 작은 어항속의 두 마리의 하프문베타는 햇볕이 싫은 듯 빗줄기를 피해 큰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옆으로 아래위로 깃발을 흔들 듯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현정은 남쪽의 어느 나라의 바닷가에서 내 앞의 어항속으로 둥지를 틀기까지 이 둘의 기구한 운명이 떠 올랐다.

두 마리의 하프문베타는 아름다운 커플댄스를 치듯 보이기도 하고 술래잡기 하듯 유영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부부는 가정이라는 어항 밖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저들처럼 아름다운 몸짓으로 보여질가?

새끼도 없고 다른 물고기 없이 오직 둘만이 갖혀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라면박스만한 유리벽 안에서 밖에 더 넓은 세상을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나갈 차비를 하던 남편이 전화를 받으며 내 얼굴을 한번 처다 본다.

“누구야?”

“어 알았어 지금 나갈게 그리로 가면 되나? 어 어”

“누군데 어딜 간다는 거야?”

“누이가 조카랑 서울에 올라왔네. 조카에가 서울에 취업을 했나봐? 방을 알아봐 준다고 했는데 지금 올라오는 중이라네 거의 다 왔나봐”

“ 하 엄마네 간다고 내가 저저번 주에 얘기 했었자나 선약이 있는데 지금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당신이 없으면 방을 못 봐?”

“미안 금방 다녀올게 내가 알아본 데라 오늘 선약 있는 것을 깜박하고 약속을 잡았네 둘 다 다 잊고 있었네 하하 오래 안 걸려 멀리서 왔는데 좀 이해해줘”

“미안하기는 한거니? 매사 이런 식이지 너희 형제들이 항상 나보다 먼저이고 나는 한 4사순위 쯤 되는 거니? 너 알고있어? 너는 니 형제 친구 지인들에게는 항상 호인이고 좋은 사람이지 그런데 말야 나에게는 당신 부인에게는 절대 좋은 남편이 아니야 너희 형제가 좀 유별나다는 생각이 안드니 내가 아파서 병원에 있을때도 생일에도 너희 형제만난다고 나간 인간이야 너란 인간이... 형님이 내게 어떻게 했는지 잊었어 오죽했으면 내가 안보고 사는지 잊은 거야? 도대체 너는 왜 나를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드는 거냐고 왜!!1”

“알았어 지난 얘기를 또하고 또하고 미안하다자나 바로 다녀올게”

“그래 너에대한 기대를 안하고 살기로 했지 그래 너 하고 싶은대로 다해”

“두시간이면 되겠어? 엄마한테 전화해야돼”

나는 등짝을 보이며 문을 열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서 외롭다는 생각보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남편의 눈과 코와 얼굴이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그 등판만이 남편의 모습이었다.

집은 작지 않았다 늘 혼자라는 기분이었으니까 언제나 둘이 같이 있다는 마음이 든 적이 없다.

이 곳에 또 혼자가 되었다는 느낌은 견디기 힘들다.

일요일인대도 시내의 길은 막히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은 승환은 그냥 지하철을 타고 온다는 것을 아니라고 마중을 나간다고 했던 게 후회되기 시작했다.

강변도로만 막히는 게 아니라 반포대교를 건너 터미널 까지 가는 길도 차량의 행렬이 끝이 보지 않았다.

호남선 터미널 끝자락 도로변으로 누이와 조카가 보인다.

“왜이리 늦었어 길이 많이 막히지 그냥 지하철 타고 간다니까 고생했네”

“고생은 뭐 올라오느라 고생이지 뭐 나야 코 앞인데 ”

“올케는 오늘도 같이 안 나왔니? ”

“어 몸이 좀 안 좋아서 그냥 이따가 어디도 가야되고 해서 집안 정리도 할게 있구해서”

“어 오늘 어디 가야해 약속 있어?”

“아니 처갓집 가기로 해서 ...”

“그럼 다른날 올걸 왜 얘길 안했어 우리 점심도 못먹어서 밥무터 먹으려고 하는데 어쩌나...”

“아냐 밥 먹자 나도 아점 먹었어 조금 일찍 먹지 뭐”

늦은 점심을 먹고 부동산을 들려 방을 두어 곳 보고 나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승환은 연신 울리는 핸드폰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차를 돌리며 다시 홍대입구로 향한다.

“은정이도 올만에 왔으니 연트럴파크에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 내가 시간이 없어서 그만 가볼게“

“그래 괜히 우리 때문에 고생했네 올케에게도 안부전하고 화좀 좀 풀라고 해 불편해 죽겠네”

“알았어 들어가”

차를 돌리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현정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와 문자들이 보인다.

빨강이 베타가 죽었다고, 빨리 오라고 늦었다고 오늘 장모님댁 가는 걸 취소했다는 줄줄이 카톡의 내용이 보였다.

승환은 자기 때문에 일정이 망쳤다고 현정이 화를 낼 게 뻔히 보였다.

자신을 무시한다는, 힘들다는 이야기들 매번 아이처럼 징징거리는 현정의 앙칼진 목소리가 환청처럼 차안을 울렸다 사라졌다.

핸드폰을 닫고 옆자리에 던져 놓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어차피 집으로 빨리 가는 게 나을 거 같았다.

차들이 밀려있어도 집으로 가는 길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괜시리 마음이 무거웠다.

좀 더 천천히 집으로 가는 길을 찾고 싶었다.

온다는 남편이 제 시간에 오지 않을 거란 걸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다.

마음이 급해 전화를 걸어도 남편은 받지 않는다. 카톡을 보내도 읽지 않는다.

핸드폰을 열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조금 늦냐고 천천히 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오늘 일이 생겨 못간다고 다시 전화드리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남편과 싸웠나 생각하실거다. 내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세상에 몇 안되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입안이 마르고 목이 말랐다.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점점 식탁 옆에 남는 여분의 의자 같은 그런 사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

주방에 물을 마시려 나왔다 유리잔에 물을 따르고 이내 마시기 전에 식탁 위에 어설프게 올려져 있는 어항이 눈에 들어 왔다

한 모금 마시던 물을 어항에 살짝 부어보았다. 또르륵 소리와 같이 어항 속에 물결이 일고 작은 거품이 일어났다 금새 잠잠해 진다.

허리를 굽히고 어항을 보던 현정은 왜 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파랑이 혼자 유유히 헤엄을 치고 빨강이는 머리가 없이 바닥에 쳐 박혀 있었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잠그는 방법을 잊어버린것인지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긴 흐느낌이 방안에 맴돌다 창밖으로 쏟아져 내린다.

미정이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아쉬울 때만 찾는 미정이에게도 미안함이 들었다. 남편과 힘들때마다 이혼녀인 미정이가 대번 생각이 났다. 굳이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를 안해도 이해해주는 친구이기도 했기에...

이제 이 어항 속을 나가야 할 시간이 왔다.

나는 트렁크 끌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조금 숨이 쉬어진다.

미정은 나의 트렁크와 짐들을 받아 싣고 마무 말 없이 꼭 안아준다.

“어디로 갈거니? 일단 우리집으로 가자”

“아니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다? 그래 알았어 일단 타 가자 까짓거...”

어항속에서 나온 물고기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 할까? 아마 바다로 가 보고 싶었을 것 같았다.

미정은 깜박이를 키고 신호를 대기하다가 걱정되는 듯 물어보았다

“숭환씨에게는 얘기 한거니?”

“ 아니 지금 카톡으로 메시지 남기고 있어”

‘당분간 우리 좀 떨어져 있었음 해

굳이 나 찾지 말고 엄마한테도 이야기 하지마

당신이 사온 열대어가 나를 깨우치게 한 거 같아.

당신 말대로 나나 당신이나 그 하프문인지 풀문인지 하는 물고기나 별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어

무슨 뜻인지 그래도 모르겠으면 하프문베타를 인터넷으로 꼭 검색해봐“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그제서야 남편에게 답장이 왔다.

“ 늦어서 미안해 차가 그리 막힐 줄 몰랐어 누이가 미안하다고 자기에게 이야기 잘 해달라고 하더라 많이 미안해하고 불편하대 좀 풀었음 하는 거 같어.

긔렇다고 이러는 거는 좀 심하자나 혹시 장모님댁에 간거면 내가 바로 출발할게

그리고 빨강이가 원래 약한 놈이었나봐그러니 나눔을 했겠지

내가 새로 더 예쁜 빨강이나 보라로 사다가 넣어 둘게

고만 화 풀어 밖이면 집으로 돌아와 기다릴게

아니 어딘지만 알려줘 지금 그리로 갈게“

“당신은 정말 소통이나 대화가 안되는 사람이란 걸 다시금 깨우쳐 줘서 고마울 뿐이야

그 잘난 물고기, 하프문베타를 검색해보지 않았지?

언제나 아니 영원히 당신은 경청이나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야

우리 둘 중에 하나가 죽을 때까지 같은 어항에 있는 건 너무 잔인한일이야

그걸 난 인정했고 당신도 인정하게 될거야

당신이 올 필요도 없고 나도 다시 유리어항으로 들어갈 일은 없을 거야

우리는 각자의 어항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더 이상 답장은 하지 않을 거야

나의 어항이 준비가 되면 그때 다시 연락할게... “

승환은 핸드폰을 열어 하프문베타를 검색한다.

화려한 베타들의 사진들이 쏟아진다.

세상의 모든 색들을 하나씩 몸에 두르는 듯 형형색색 눈이 부시다.

뭘 보라는 건지 어리둥절하다가 개인 블로그들의 베타키우기 글들을 살펴보다 갑자기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베타는 투어라고 한 어항에서 기를 수 없는 물고기라니...

어항앞으로 걸어가서 아무런 일이 없었는 듯 평화로와 보이는 파랭이 베타를 본다.

빨갱이의 죽음을 개의치 않고 일말의 죄의식이나 슬픔이 보이지 않는다

파란지느러미를 활짝 피고 춤을 추고있다

아몬드잎위로 고개를 내밀다 다시 유유하게 물속을 날아 다닌다

벽들은 투명해지고 거리의 빛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니가 살아 남았군 이집엔 내가 남았구 ㅋㅋㅋ’

어항속의 파랭이 베타가 승환을 비웃는다.

사람들은 가식에 떨다 힘들게 살고 있지

세상은 서로 집을 얻으려고 싸우는게 현실이야

좀더 크고 넓은 어항을 쟁취해야지

오직 나 혼자 만이 누려야 할 것들이지.

네가 만족하려면 행복하려면 누군가는 어항 밖으로 쫒아 내야 한다고.

“ 아니 아니라고 나는 너 같은 놈이 아니야 아니라고!”

“ 아주 큰 어항을 사면 되는거 아니야 이런 조그만 어항 말고 큰 어항을...”

굉음소리와 같이 어항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파편과 물방울들이 뒤 섞여 식탁 밑으로 퍼져 나간다.

서로가 꼭 닮은 두 마리의 파란색 하프문베타가 뒤엉켜 싸우고 있다.

밤이 깊어 갔지만 누가 끝까지 살아 남아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각주) 하프문베타

학명 Betta splendens var.Bleeker, 1850분류계 동물계(Animalia)문 척삭동물문(Chordata)강 조기어강(Actinopterygii)목 등목어목(Anabantiformes)과 버들붕어과(Osphronemidae)아과 버들붕어아과(Macropodusinae)속 베타속(Betta)종 샴싸움고기(Betta splendens)1. 개요2. 상세3. 사육 환경4. 지느러미 관리5. 합사6. 번식7. 품종7.1. 테일7.2. 컬러 및 패턴7.3. 기타

5. 합사[편집]위의 서술에서 알 수 있듯 일반적으로 수수, 암수의 합사는 절대 불가능하다.암컷끼리는 2자 이상의 넓은 어항, 넉넉한 은신처, 산란통에서의 오랜 대면, 여러 마리의 암컷으로 공격 대상을 분산하는 등으로 합사가 가능하기도 하다. 암컷 베타의 합사는 제법 흔해서 검색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편. 다만 베타는 베타인만큼, 유달리 공격성이 강한 암컷이 있을 수도 있고, 여러 변수가 있으니 암컷끼리의 합사라도 주의가 필요하다.다른 어종과 "가끔" 합사가 가능하기도 하다. 기왕이면 베타와 다른 어종들이 모두 넉넉히 살 수 있을만큼 합사용 수조가 커야 한다. 수조 크기가 넓어질수록 물고기들끼리의 영역이 잘 나뉘기 때문에 굳이 상대를 찾아가 공격하는 일은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수조가 좁으면 물고기들끼리 더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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