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점잖고 예의바른 하루하루는
얌전히 걸친 정장처럼
속에서부터 눅눅해졌다
염치없이 하루의 평화를
무료라 느끼고
생각의 끝에 무엇인가
닿지 못할 꿈을 꾸었다.
그래서 더 간절한
하늘이 너무 맑은 날엔
괜히 눈이 시렸고
낮부터 비가 오는 날엔
심장이 먼저 젖었다.
나는 내 안에서
비늘이 돋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솔직하지도 못했다.
세상이 못마땅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내가 못마땅해서
눈앞의 나무들조차 미웠다
흔들리는 게
나무였을까
나였을까
바람의 끝자락을
눈으로 쫓을 수 없었다
욕심이 많고
눈물이 많은
나를
오늘 하루 지켜줄 사람
내 옆에도
찌그러진 마음 하나 더 있었다
말수가 적고, 웃음이 어색하고,
등 뒤로 그림자가 먼저 휘청이는 사람
우리는 패배한 사람들처럼
조금은 찌그러진 채로 술을 마셨다
허름한 고깃집 천장에 달린
낡은 연통을 따라
나의 독백이 올라갔다
나는 한마리 혹등고래였고
너는 나의 등에 붙은 따개비였다고
질기고 질긴 인연이
전생을 넘어 삐닥한 플라스틱의자에
묻어있다고
그는 웃지도 울지도 않고
나의 전생을 마셔버렸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면
서로의 잔을 바라보다가
서로의 결을 만져보다가
조금은 닮은 것 같은
취한 눈동자를 보고
가끔은 그냥
건너편 테이블에 눈을 맞췄다
내 비겁을, 내 소심을,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지켜보던 사람
1+1 편의점 커피 같은 사람
미지근하고,
오래 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