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토끼
옛날 옛날에
상수동에 토끼가 살았지
우리는 어리고
집시처럼 가난했지.
이곳 저곳을 떠돌다
즐비한 카페와 선술집을 구경만 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들리는 곳
호미화방을 지나 점점 썰렁하고
쓸쓸한 거리,
가다보면 이층의 산토끼집
여자아이들은 떡복이를
토끼풀처럼 우걱이고
맵고 달달히 끓어가는 씨끌벅적한 공기.
토끼가 똑 앞니로 떡복이를 끊어내면
나는 자꾸 웃음이 나왔지.
웃으면 길고 흰 치아가
빛이나고,
통통통 말소리가 울리는
키가 껑충해서 그랬는지
동그란 눈이 커서인지
상수동 언덕에 낮은 아파트는
토끼의 집
상수동 토끼가 된 그애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상수동 토끼라고만 불리던 아이
저녁이면 독서실로 가고
나는 거북이처럼
무거운 껍질의 가방을 벗고
발가벗은 밤을 맞는다.
깡총거리지도 않아도
걸음을 걸으면
통통 튀어오르던 생기
그냥이었어.
토끼가 좋아서
깔깔 웃으면
볼이 발그레해지는
토끼가 보고싶어서
나는 밤마다 느릿하게
거리를 떠돌고
어둡고 쓸쓸해서 더 빛났지.
자기가 토끼인지
모르는 토끼에게
끝내 알려주지 않았지.
토끼는 너무 빨라서
저 앞으로 튀어나갔고
나는 멍하니 뒷모습만 보았지.
한 번즘 뒤돌아 보길
한 번즘 멈춰서 기다려주길
속으로만 말했지.
토끼가 세월보다
더 멀리 가버린 후에
나는 등뒤의
껍질속으로 다시 들어가
더 느릿하게
토끼를 생각하곤 하지
여전히 나는 느리고.
껍질안에는 아직 너의
이름이 부스러져 떨어지지.
호 하고 불면
내쪽으로 부는 바람.
추억이란게 가물거리기만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