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할아버지를 뵌 지 오래다.
사는 게 구겨지고 접혀져도
그이의 다리미처럼
마음을 펴주던 손길도 사라졌다
찬 바람이 골목을 쓸고,
그 불빛 하나에
옛날의 얼굴이 잠깐 비친다.
문 닫은 부동산 자리에
문방구가 들어섰다.
값비싼 아파트 카다로그 대신
싸구려 과자들이 눕고,
아이들의 웃음은
아직 이 골목의 주소를 모른다.
한 바퀴 돌면
계절이 사라진 아이스크림 가게,
채소가게의 간판엔
‘무인’이란 부사가 붙는다.
아직 채워지지 못한
큐빅의 투명한 공간 위로
빛의 부유물처럼
이름 잃은 간판들이 떠돈다.
사람보다 오래 버틴
의자 몇 개가 남았다.
유리창에 비친 집들은
불 꺼진 시간의 표면 같아서
인생은 채우려다 끝나고,
마음은 비워진다.
빈집마다
닫힌 창문에 입김을 불어본다.
안부는 흐려지고
바람은 더 멀리 떠난다.
파는 이도, 사는 이도 없이
집들은 천천히 식어간다.
세월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쌓아둔 마음은 모래처럼 무너지고
사람들은 빈집처럼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