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게이클럽 후기

by 배즐

회사에서 싱가포르 금융·부동산·사회 정책 등을 공부하라고 단체로 싱가포르에 3박 4일 연수를 보내줬다. 여행 전에는 싱가포르라는 나라를 잘 모르고 관심이 없었어서 역사책과 여행책들을 읽어보았다. 여행 중에는 가이드님과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한국인으로서 궁금한 점들을 수십 개 여쭤봤다. 그 결과, 싱가포르라는 나라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인구 5백만 명에 서울 크기의 도시국가이지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고, 인적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고 있고, 전국민이 내집마련을 할 수 있도록 공공분양 정책도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등 상당히 대단한 나라라고 느껴졌다. 동시에 성소수자 인권은 그리 대만이나 태국만큼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 간 성관계가 법적으로 불법이었는데 몇 년 전에 불법화를 없앴을 정도이니 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부부처·대학·박물관 등 싱가포르 방방곳곳을 다녔다. 밤에는 (해외에 가면면 내가 늘 그러하듯) 게이바·게이클럽을 갔다. 아쉽게도 회사에서 싱가포르에 머무른 날들은 모두 평일이었다. 화수목금 3박 4일만 머무르고 금요일 밤에는 한국으로 출국이었다. 화요일 수요일 밤에는 사람이 정말 적었다. 그러나 목요일 밤에는 운좋게도 금요일이 공휴일이어서 정말 사람이 많았다(부활절 전 Good Friday라는 휴일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게이바&게이클럽을 가며 다양한 사람들과 재밌게 놀았는데...


Tantric 게이바 내부

1. 제일기획???


화요일에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호텔에서 짐 풀고 나는 바로 회사 분들께 따로 산책하러 간다고 말한 뒤 바로 도심 속 Tantric이라는 차이나타운 내 게이바를 놀러 갔다. 구글맵에서 리뷰가 제일 많았고 싱가포르에서 인기 있고 오래된 게이바로 보였다. (싱가포르에 게이바랑 게이클럽이 잘 없어 보였다..)


평일이다 보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2~3 무리의 총 15명 내외의 사람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칵테일 한잔에 싱가포르 18달러짜리(2만 원... 싱가포르 물가 개 비쌌다)였지만 눈물을 머금고 시켰다. 혼자 앉아서 다른 사람들 구경하고... 다들 지인들이랑 온 것 같았다.


혼자 있다가 아무도 내게 관심 가져주지 않고 재미없어서 게이바 사장님이랑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옆 무리에 있던 어떤 남성 분이 내게 말을 걸었고, 그 무리에 같이 가서 놀게 되었다. 싱가포르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싱가포르에는 왜 오게 되었는지, 각자 어떤 일을 하는지, 연애하고 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싱가포르 분이 담배 피자 하시길래 얻어 폈다(나중에 보니 한국은 담배가 5천 원이지만 싱가포르는 2만 원가량(15~20 싱가포르 달러) 해서 웁스 했다).


담배 피우면서 사람들이랑 대화 나누는데, 인도 사람 같은 피부색 사람이 있었는데 물어보니 싱가포르 사람이라 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문득 싱가포르에 역사적으로 중국계 뿐만 아니라 아랍계, 인도계, 인도네시아계, 말레이시아계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이 생각났고 이런 질문들 되게 차별적일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황급히 "한국이나 일본에는 사람들이 한국인/일본인들 밖에 없고 너무 동질적으로 생겼어. 싱가포르는 다양한 사람도 많고 포용적인 느낌이라 너무 좋다"하며 서둘러 넘어갔다...


싱가포르 사람과 1:1로 대화 나눌 때는 이해가 어느 정도 가능했는데, 4~5명이서 함께 대화 나눌 때는 싱가포르식 영어 억양도 있고 내 영어 실력이 딸리기도 해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 하며 쭈뼛쭈뼛 있었고, 싱가포르 애들이 같이 놀아주려고 한국어로 욕(ㅅㅂ, ㄷㅊ, ㄱㅅㄲ 등) 하며 대화하는데 경악스러워서 나 한국인 아니라 일본인 하겠다고 장난치며 놀았다.


무리에 어떤 아시아계 여성 분(40대 추정)도 있었는데 싱가포르에 있는 Cheil에서 일했다고 한다...?? 제일?? 제일기획? 제일제당?? 궁금해서 집 오는 길에 찾아보니 제일기획이 싱가포르에 있었다. 한국 기업들도 참 글로벌 진출을 많이 했구나 느꼈다. 여성 분께 한국 기업 보통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일 텐데 괜찮았냐 여쭤보니 만족했었다고 했다. 퇴사 후 며칠 전에 차이나타운에 가라오케바를 개점했다고 한다. 여성 분 말씀 들으며 퇴사 후 자영업 하는 건 한국이든 싱가포르든 비슷비슷하게 사는 듯했다.


재밌게 대화 나누며 밤에 칵테일 총 3잔을 마셨는데 보니까 카드로 약 6.5만 원을 썼다. 싱가포르 물가가 정말 사악했다. 새벽 1시 30분 정도까지 놀다가 인스타그램 계정들 공유하고 내일 일정을 위해 택시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택시 30분 탔는데 택시비 3만 원 나왔다...)


2. 회사 동기랑 같이 게이바&게이클럽 방문


목요일 밤에는 회사 동기(20대 여성)랑 같이 게이바에 갔다. 동기가 게이클럽 가보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던 터였다. (회사 동기는 해외유학 경험이 있고 게이 및 레즈 친구들이 많아서 예전에 커밍아웃했었다) 함께 화요일 밤에 이미 방문했던 Tantric 게이바에 갔다.


게이바에 가보니 화요일 밤에 있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게이바 사장님께 인사하니 나를 반갑게 반겨주셨고, 내가 친구 데려왔다고 회사 동기를 소개해드렸다. 사장님은 얼굴이 잠시 1초간 정색했다가(여자라서..? 개웃겼다) 다시 친구를 반가워했다.


또 싱가포르 친구랑 대화를 나누다가, 테이블에서 다른 무리의 친구들을 소개받았다. 어떤 5060대 미국인 남성 아저씨가 있었는데 대화가 재밌기보단 좀 진지하셨지만 돈 많은 사업가 셔서 모든 위스키와 칵테일을 사주셨다. (돈 많은 사람 만나면 이런 재미인가..?) 테이블에서 재밌게 떠들며 놀다가 사장님 지나가시길래 와서 노시라고 손짓하니까 팔과 다리와 배를 내 몸에 부비부비 하시는데 당황스러움에 눈 커지고 개웃겼고... 그래서 "무료 술 없어요?(Any free drinks?)" 여쭤보니 테이블에 맛있는 술 몇 잔 제공해 주시고 같이 즐겁게 대화 나눴다.


싱가포르 친구들이 같이 클럽에 가자고 했다. Rabbit's hole 클럽인데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입장료가 35달러(4만 원 정도...)였다. 한국 게이클럽 안 간지 10년 넘긴 했는데 남자는 무료지 않나?? 도쿄나 대만도 이랬나?? 으악 했다. 근데 지인 소개로 무료로 갈 수 있는 행사가 있다고 했다.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면 되는 거였는데, 그래서 동기를 데리고 또 무료로 게이클럽에 갔다.


게이클럽에 가서 싱가포르 친구, 동기랑 같이 셋이서 있는데 사람들이 쉬도 없이 말을 걸러 왔다(???) 나 같이 생긴 사람이 처음인가?? 내가 싱가포르 사회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느낌인가??(도쿄, 타이페이 클럽에선 대차게 까였는데...) 미국인 사업가 아저씨가 칵테일 또 계속 사주셨고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싱가포르에 일하러 온지 5년 된 인도인, 싱가포르에 일하러 온 홍콩인, 그리고 몇 명의 한국인도(ㅋㅋ..) 있었다.


야외테라스도 있었다. 신기한게 게이클럽이 도심 한복판에 있을 뿐 아니라 야외테라스에서 클럽노래도 크게 틀고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여의도 한복판에서 게이클럽이 있고 게이클럽 야외무대에서 클럽노래가 새벽 1~3시에도 계속 울려퍼지는 상황...? 근데 아무런 공적 제재도 없다고 한다.


Rabbit's hole 게이클럽 야외테라스


재밌게 즐기며 놀다가 새벽 2시 좀 넘어서 동기랑 다음 날 일정을 위해 택시타고 들어갔다. 택시비는 또 3만원 들었고, 이날 칵테일은 한 5잔 넘게 마셨는데 미국인 사업가 아저씨가 다 사주셔서 돈이 들지 않았다. 근데 아마 한명당 한 10만원 넘게 사주셨던 것 같다... 싱가포르 물가 정말 살인적으로 느껴졌다.


3. 느낀점


도쿄에서는 서울처럼 남성들이 이성애자든 성소수자든 자기관리를 하려는 느낌이었고, 타이페이에서는 이성애자 남성들은 자기관리를 잘 안하고 성소수자들은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느낌이었다. 반면 싱가포르에서는 이성애자든 성소수자든 딱히 자기관리를 안하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한중일이 외모지상주의가 너무 심한 건가 싶은 느낌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어깨 좁은 남성 얼마 못봤었는데 싱가포르에서 길다니다가 어깨 좁은 남성을 수십명 봐서 참 신기했다. (한국은 군대를 다녀와서 그러나...?)


애초에 싱가포르 인구가 적고 면적도 작아서 그런지 게이바&게이클럽 수도 좀 적은 느낌이었고 게이들 사람 수도 적고 다들 아는 느낌이었다. 드랙쇼나 고고보이쇼 등 쇼들을 못봐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다.


회사에서 싱가포르로 연수를 보내준 주된 목적은 금융·부동산·사회 정책 등 싱가포르 정책 공부였다. 공부하면서 한국의 부족한 점들을 구구절절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밤마다 게이바&게이클럽 가서 싱가포르 게이 사람들과 대화나누어보니 국적, 인종, 성장환경, 일하는 분야가 정말 다양했다. 돈많은 미국인 아저씨 이야기도 너무 흥미로웠고, 한국 기업에서 일했던 분 이야기, 월 100~200만원대 주택담보대출 갚으며 살아가는 싱가포르 현지인 사람들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흥미로운 점들도 많았던 동시에 싱가포르 게이클럽의 감흥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해외에서 게이클럽 가는 경험이 쌓여서 그런건지, 쇼를 못봐서 그런건지 모르겠다.


싱가포르 친구들에게 서울 오면 연락주라는 말을 남기며... 그렇게 나는 한국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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