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랭스로 되돌아가다

by 쿠쿠다스

기회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토요일 신문만은 챙겨 읽을 때가 있다.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요즘같은 실정에는 더더욱 신문에 대한 향수가 아득하다. 2023년 10월에 한국에 휴가차 다니러 갔을 때의 일이다. 집안을 뒹굴고 있는 K신문 토요일판을 집어 들었고, 지면을 통해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소개 받았다.

가끔 ‘이 책이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주문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실은 그래서 토요일 신문은 무엇보다 신간소개 코너를 보기 위해 부러 챙겨 읽는 것이다. 출판사에 대한 신뢰 (그렇다 나는 한 때, 문학과 지성사와 창작과 비평의 맹신자였다)도 구매에 한몫했거니와, 다행히 주문한 책은 출국 전에 도착하였다. 캐리어가 아닌 가방속에 넣고 공항 터미널 벤치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첫 부분부터 내 눈과 마음을 사로 잡았는데, 아마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그것도 상하이에서) 생활하고 있는 내 자신이 디디에의 여정에 너무나 잘 투영된 까닭이겠다. 아버지의 죽음,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인것 같더니 올해 읽은 또 하나의 문제작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비슷한 출발점을 갖는다. 다만, 디디에의 저작은 그 시선이 아버지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찰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더구나, 하나는 소설이고 이것은 자기고백적 르포(Reportage)이니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항상 나는 뒤에 무언가 남겨둔채 앞으로 나아가야만했다. 지금은 거의 연락처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고향의 친구들을 가령 예로들면, 이들은 언제나 그대로였을텐데 변한것은 나 혼자인것처럼 자연스럽게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연락조차 아연한 사이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난 직후부터 서서히 느낀 “간격”은 졸업과 동시에 맞은 취업을 갈림길로 극단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러고도 십여년 지난 지금은 그 실마리마처 찾을 길이 없다. 어쩌다 관혼상제를 계기로 한두번 마주치기는 하였지만, 그 간격은 좀처럼 좁히기가 어려워지고 말았다.

이 개인사에 대한 공감적 지지를 이역만리 바깥의 French 에게 얻었다면 지나친 공간적 압축일까? 문장이 주는 힘이란 이런 것이리라. 어쩌면 솔직함과 자기취약성의 노출, 이것은 쉬운 결정이 결코 아니다,에 너무 감화된 것 아닐까도 싶다. 특히 “당혹감“이라는 단어에 크게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때 내가 친구들에게 느낀 감정은 사실 깊이 들여다 보지 않았다. '잘난 체 (snobbism)하고 있네' 정도로 치부했었는데, 그것은 실로 당혹감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다른 도시와 다른 사회적 환경(institute)에서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을 어쩌면 미래의 것까지 불러다가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내느라 분투하는 나에게, 나의 과거 특히나 내가 나고 자란 환경이 회상되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편치 않은 것이었고 더 솔직히는 그것이 천박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다시말해 교양인으로 새로운 말투와 새로운 옷차림을 하고서, 다시 예전의 친구들과 어울려 예전의 말투로 예전을 떠올리는 것은 마치 먼 길을 돌아 결국 제자리에 돌아오고야 만 부메랑처럼 어찌보면 좀 허무한 감정이었다.

나는 지식인이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길을 가로지른 책들을 읽었고, 여전히 고전과 교양서적을 읽는다. 스노비즘에 가까운 자세로. 그건 계급적 정체성을 단번에 뛰어 넘어야 하는 나에게는 지름길과 같은 선택이었다. 지금도 여러 사상가와 책들이 집약되어 있는 책들을 읽는데서 희열을 느낄정도니까 말이다. 이런 계급초월의 에토스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하긴 내가 자란 90년대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프로파간다가 거의 신앙처럼 믿어지던 시대였으니 누구나 그런 자기고양의 욕구를 저마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단편적이기가 짝이 없던 자기 고양의 욕구나 목표인데, 그것은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된다’는 식이었다. 그때 더 큰 꿈을 주입할줄도 몰랐던 척박한 상상력은 지금에 되어서도 아쉽다. 그래서 결국 도착한 서울에서 나는 어떠했나?

대학에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18세의 가망없는 낙관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데는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오리엔테이션과 입학의 통과의례 기간에 벌써 자신의 '성분'과 '출신'에 따른 분주한 눈동자 돌림으로 '준거집단'을 선택한다. 대표적으로 '지방' 출신과 '서울' 출신(?, 이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왔다'고 하지 않고, 자신의 구나 동 이름을 말한다. 마치 누구라도 자기 동네 이름을 알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는 듯)으로 분류되고, 대다수의 '남성'과 일부 '여성'으로 나뉘기도 하고, 아마 서울의 학생 중에서도 희미하게 강의 남쪽과 북쪽을 가르는 심연한 분류가 있지 않았나 싶다. 더 좋은 학교를 갈 수 있었는데, 겨우 여기에 도착했다는 식으로 자조하는 축과...여기라도 도착해서 감지덕지라는 축들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아마 거의 인생에 처음으로 더욱 복잡다단한 스펙트럼의 계급적정체성 좌표찍기에 내몰린 순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다행히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어준 그룹들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아도 '초록은 동색'인 것이 대부분 지방의 소도시에서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거나, 서울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지방에서 상경한 부모님 아래 태어난 2세대 들이 정서적으로 더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남에 살면서 명문고등학교를 졸업한 여기에도 저기에도 태연한 구김살 없는 친구도 있었지만.

똑같은 대학에 모여선 '동일선상'의 학생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지나온 가정환경이 '요구'하는 방향에 따라 서서히 진로가 갈라진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가 하면, 누구(랄 것도 없이 그게 나였지만)는 반수를 선택하여 더 나은 학교에 가보려고 하고, 누구는 군대로, 누구는 유학을 준비한다든지 그런식 말이다. 어떤 친구는 벌써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면서 고시원 생활을 억척스럽게 이어나가기도 했다. 자, '누구나 노력하기만 하면 성공에 이를 수 있다'는 고 모 변호사의 모교특강에서 박수치면서, 우리는 함께 얼마나 고양되었던가. 어렴풋이 '개인주의자'를 선언하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의 친구들도 고등학교 친구들과 같은 수순을 밟았다. 다시말해, 나는 어디엔가 새로운 곳에 도착해 있고,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그런 심연의 상태말이다. 그렇게 대기업과 공기업의 부장/차장이 된 친구들을 뒤로 한 채, 나는 지금 상하이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또 다른 계급적 이반을 도모한 채 살아가고 있다.

랭스로 돌아가다의 시선. 그러니까, 출신 가정의 사회경제적 계급맥락이 한 개인의 삶에 하나의 정초(foundation)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은 적확했다. 더불어 끊임없이 멈추어 있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삶의 역학에 하나의 설명을 덧붙여 준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언제든 다시 부메랑처럼 되돌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불안감을 연료삼아 자기 자신을 엔진으로 달구는 인생은 얼마나 신산한가. 혹은 불안감은 사라지고, 어느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안온함을 가지고 있대도 '나는 정말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가'를 되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알랭드보통은 불안의 원인 중 하나로 '준거집단과의 비교'를 꼽은 적이 있다. 요컨대, 준거집단과의 끊임없는 비교, 그리곤 어떻게든 앞으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겠다는 의지와 그것의 실현. 그것은 과연 합당하고 건강한가.

일기 쓰듯이 자기 되돌아보기만 지나치게 길어졌다. 서평 쓴다더니.

어쨌든 이 책에서 받은 영향이 적지 않다. 첫 번째로는, 저자의 축적된 지식을 순전히 '자기성찰'에 할애했다는 점이 그렇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성찰적 글을 저렇게 긴 호흡으로 써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더구나, 자기 인생에서 그리고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주요 사건을 계기삼아 이렇게 다층적 분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신선했다. 이 책을 읽고 바로 시몬드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을 읽었는데, 가족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기에 이르는 철학 소고를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던져보게 한다. 결국, 자랄대로 이미 다 자란 초로의 성인이지만 인생 최초의 '출발점'이자, 자기존재의 형성에 (부정이든 긍정이든)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 (부모, 가족)에서 우리는 얼마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이상하게 아까 말한 그 대학의 친구들과는 하잘데 없이 고향에 있는 '부모님 걱정'을 하면서 술을 많이 마셨다. 아마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희생한 그들에 대한 미안하고 빚진 마음에서 그랬을 터. 그러다 새벽녘에 내가 그런 말을 하고 헤어졌던 것 같다. '결국 그렇게 노력해서 부모님보다 반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면, 그게 효도이고 성공일꺼야'. 한국 현대사 최초로 부모보다 더 잘살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지내던 젊은이들의 자기충족적 예언이자 위안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맞는 말 같다. 결국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40대가 되서 나는 내가 나고 자라온 그 원형에서 얼마나 멀어져있다는 생각한다. 가끔 아버지의 그것과 너무나 비슷한 나 자신의 기침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와 똑 닮아 조금씩 건조하게 갈라지려는 발톱을 보면서 흠칫한다. 결국, 나도 언젠가 내 고향으로 돌아가며 내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날이 있을 것이다. 중소도시의 프티브루주아 계층의 아들은, 그쯤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가 있으려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