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증후군과 연결짓는 우리. 가족들은 정말 중요한

by 쿠쿠다스

중국의 설 연휴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것처럼 매우 특별하다. 춘절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시간은 멀리 떨어진 가족들이 모여 새해를 맞이하는 그야말로 '가족의 시간'이다. 이 '가족의 시간'을 위해서 사람들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고되고 힘든 귀성길에 오른다. 여전히 이들은 음력 1월 1일을 한 해의 시작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국제적인 도시인 상하이에 사람들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긴 연휴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이번주는 유난히 '명절 잘 지내셨냐'는 인사와 답하기에 바빴다. 사람들의 답변은 -인상적이게도- 가족과의 시간을 보낸 것에 매우 만족하고 일상으로 되돌아 왔다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나 역시 중국의 긴 연휴를 틈 타, 한국의 가족들에게 다녀왔다. 아내와 아이들과 양 가를 오가기도 하고, 미루어 두었던 건강검진과 각종 병원투어로 분주했다. 한국의 설날도 중국과 기타 주변지역들 (홍콩, 타이완, 싱가폴, 말레이ㅣ시아 등)과 다르지 않은 '가족의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설날 연휴가 되면 고속도로 정체가 극심하고, 지역을 오가는 대중교통 차편을 구하기 쉽지 않아 지는 것을 보면 여전히 우리는 명절에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당위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길 위에 오른다.

(대)가족이 모이는 일은 즐거운 일인가? 라는 질문에 보편적인 가정을 가진 사람들은 긍정적인 답변을 내려 놓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가족이 모이는 일이 곧 '스트레스'가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 기간에는 언론도 앞다퉈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을 앞세워, 특히 '여성'들의 과도한 가사부담과 스트레스를 집중 보도하기도 한다. 가족이 모이는 일이 왜 스트레스(압박)가 되어야 하나?는 질문에는 아마 여러가지 답이 존재할 것이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불평등한 가사분담이 원인이 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존칭의) '시댁' 혹은 '본가' (존칭일리 없는) '처가' 혹은 '친정'라는 말이 드러내 주는 것처럼, 명절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성평등(혹은 조화)의 개념이 들어설 공간이 매우 좁아진다. 지금의 세태를 이해할리 없는 이전 세대와의 만남은 불가피하게 이 부분에서 상당한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혹시 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82년생 김지영' 책이나 영화를 참고 삼아 보시기를.

사실 나는 성평등에 관해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일구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필연적으로 더 넓은 범위의 '가족'과도 결합되는 불가피성을 지닌다. 그 불가피한 관계형성의 과정에 우리는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우선 그 관계를 표현하는 말 자체가 (지금의 세대의 눈으로 보아선) 상당히 편향적이다. 남편의 어머니 '시어머니', 아내의 어머니 '장모님'이 그러하다. 며느리의 뜻은 또 어떻고. 생각을 담는 그릇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러운 관계형성에 애를 먹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그렇지 않았던 나의 어머니가 며느리에게는 권위적이 된다거나 하는 등의 뜬금없는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건대, 아들은 자기와는 '밤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다정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에겐 '볼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두려운 시어머니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가족과 필요한만큼 충분히 중요하고도 의미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나?'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

지난해 프랑스인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는 한국의 문화와 음식 등 여러가지에 대해서 경이로움과 찬사를 늘어 놓는 한편,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경쟁적인 한편 일상이 긴장되어 있다. 모든것을 가슴에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그러다 저녁시간에 술에 기대 비로소 긴장을 풀고 자기 속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전부 동의할 수는 없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아주 그릇된 평가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선 나 자신이 그렇고. 성인이 되면서 사람들과 관계맺음 하는 일에 '술'이 빠질 수 없었고, 약간의 취기를 빌어 자신을 드러내며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가족들과는? 10대 20대에 마주 앉아서 농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실제로 여전히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비로소 속마음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혼자 생각한다. 이제 두 아이의 아빠이자 다른 가정이 있는 '아들'로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을 대할때면 또 다른 '내'가 되어서 진솔한 대화에 공들이기 보다는 여러가지 산만함에 매몰되곤 하지 않았나.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어른들과의 대화에 함께 참여하기 보다는 어른들의 대화를 위해서 밥먹고 아이패드의 세계로 되돌려 보내고 있지 않은가. 역시 그 프랑스인 동료의 말과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을 말할 것 없이 '나는 얼마나 중요한 사람과 중요한 대화를 의미깊게 하고 있나'만 생각해 보아도 후한 점수를 주기 힘들다. 더구나,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나눈 대화라면...그 대화가 기억되기 보다는 소실될 가능성도 크지 않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도 그렇고 나의 아내가 나의 부모님과 그럴 시간은 일년에 반나절이 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격좋은 아내는 명절증후군이라는 개념에 대해 동의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쓸떼없는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혐오단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 비혼주의자였던 나를 결혼의 세계로 끌어 들이고 더구나 두명의 자식까지 낳은 것에 대해서 나의 부모님이 매우 감사해 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까칠한 아들의 아내를 (다소간은) 어려워 하며 대해주시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명절이라는 시기가 더이상 '스트레스'니 '증후군'과 같은 단어와 결부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자면, 가족들끼리 모여서 무슨 대화를 나눌지 정성과 공을 들여 생각해 볼 때다. 음식과 차례를 어떻게 지낼지 준비하는 정성을 조금 아껴, 이번에 모여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깊이 공감줄지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명절이 누구와도 나누기 어려운 '힐링'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같은 공간에서 같이 밥을 지어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는 그 행위' 자체가 명상이 되기도 하고, 코칭이 되기도 하고, 예능이 되기도 한다. 삼시세끼가 뭐 별건가.

사실 '대화'가 명절의 스트레스 원인 중 하나로 자주 지목된다. 오죽하면 가족끼리 다투고 심지어는 칼부림 하는 뉴스가 매 명절마다 되풀이 되지 않는가. 준비되지 않은 채 대화를 시도하려다 보니, 결국 한다는 소리가 '결혼은 언제하니', '취업은 어느 방향으로', '성적은 어떠니/어느 대학 갈꺼니', '누구는 이렇다더라'...와 같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보다는 충고, 조언, 판단, 평가 하려는 ('충조평판', 정해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에서 빌려옴) 대화로 이어지기 일쑤다. 내 유년시절의 경험을 잠시 공유하면, 당시 '선생님'을 양성하는 사범대학의 교수였던 큰아버지는 매 명절 똑같이 나의 전공을 질문하시곤 했다. 한 삼년쯤? 이 분이 나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이 침묵의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얹힌 떡국과 송편만큼이나 답답한 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천장을 바라 보았던가 멍한 시선으로 TV에 눈을 돌렸던가.

'가족끼리의 중요한 대화'에 위기를 느낀 나는 최근 아이들과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있다. 자기 직전 '오늘 나에게 있었던 가장 좋았던 일 세가지를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하는 것이다. 때로는 점심에 피자가 나와서 좋았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하고, 지금 아빠랑 같이 잠잘 수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왜, 어떻게, 언제, 어쩜..과 같은 의문보다는 '무엇'을 물어보는 게 핵심 포인트다. 앞서 명절에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일상적 대화에는 '무엇'에 관한 질문은 사실 많이 없다. 최근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요. 새해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들. 즉 다시 말해, 질문 자체가 중립적이고 답이 어느 방향으로든 열려 있는 것일수록 좋다. 그래야 다음 대화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서 부러 대화를 시도할 필요는 없다. 서로 말이 없이 조용히도 자연스러워 질 수 있어야 명절이 휴식이 된다. 오랜만에 만나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들이 결국 잔소리가 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은 난데없이 혹은 워밍업 없이 중요한 이야기부터 꺼낼 수는 없는 일이니까, 스몰톡을 몇 가지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몇 해 전 FROG 모델을 배웠다. 바로 친구(Friend), 취미나 놀이 (Recreation), 직업이나 하는 일(Occupation), 그리고 (여행이나 사는) 지역 (Geographics)에 관한 이야기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런 스몰톡을 가치판단 없이 자꾸 하다 보면 서로 주파수가 맞아지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 것이고, 그제서야 우리는 정말 중요한 대화를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회식이나 모임을 다녀오고 나서 스스로 이런 질문을 가끔 하게 된다. 그만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저 사람이라는 존재에 얼마나 가까워졌나? 이런 질문을 공유한 최근의 한 모임은 모여서 부러 그런 이야기를 한다. 지난해 좋았던 일. 한해의 다짐. 요즘 읽고 있는 책. 최근 힘들었던 일이나 즐거웠던 일. 하다못해 남들과도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가족과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다시 한번, 몇 가지 좋은 질문을 준비하는 것이 명절 준비의 하나가 되기를. 그리하여, 명절이 가족간에 스트레스를 불러 오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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