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가 뭐 별건가

독서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by 쿠쿠다스

최근에 들어서야 유튜브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나마도 앱으로 깔아 두었더니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잡아먹는 것 같아, 앱은 삭제하고 검색창에 유튜브를 치고 출퇴근 하면서 몇 개 보는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VPN이 아니면 유튜브 접속이 어렵기 때문에 사실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정 시간을 유튜브 들여다 보는데 쓰고 있으니, 나도 자극적 소재들에 쉽게 낚이는 한 평범한 인간에 불과한 것이다. 확실히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획책력 높은 소재들이 넘쳐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시 들여다 보려고 시작한 게 한두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도 '교양인'을 자부하는 사람으로 뭐 좀 내용있는 걸 봐야 되는거 아닌가 해서, '의식적'으로 몇 몇 교수들의 강의 내용을 쫓다보니 우연히 독서를 주제로 한 알고리즘에 포획되었다. 책을 읽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주제의 콘텐츠들이 이미 몇백만을 훌쩍 넘긴 상위 인기 컨텐츠들이 추천목록을 가득 차지한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부자가 될 수 있나?' '대체 나는 왜 책을 읽는데도 그것이 나의 부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나?' 라는 의문을 품고 몇 개의 콘텐츠를 시청했다. 와 닿는 내용은 사실 별로 없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다른 사람의 유튜브 내용을 요약해서 반복 설명하고 있다. 아이고야.


사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주 매우 많이 뒤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고, 비교적 최근에 이르러서야 그것이 겨우 습관에 안착했다고 느낀다. '아주 매우 많이 뒤늦게'라는 표현도 다른 누구와의 비교에서 나온 주관적인 것이겠지만, 내 경우는 어린시절에 '책=공부'의 등식이 너무나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수업시간 이외에는 책을 멀리하였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가시돋힌 지독한 잔소리를 매일 들으면서도 말이다. 그건 부모님들의 교육에의 과도한 열망 탓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 읽을 수 있을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전집을, 심지어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거금을 들여 사놓곤 책장 한 공간에 자랑처럼 열거해두고, 읽지 않는다고 닥달하는 뭐 그런식. 개중 어떤 것들은 그래도 떠들어 봤지만, 대부분은 한번도 펴보지 않은채 깨끗이 고물상이나 헌책방으로 다시 팔려갔다. 외려 내 돈내고 내가 산 책들은 아직 기억에 남는다. 이른바 '까치소리 미워요'라는 제목의 어린이 소년소녀 수기집이었는데, 성금을 내면 책을 주는 뭐 그런 식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인간극장의 소년소녀 가장판 뭐 이런 것쯤 되겠는데, 겨우 그런 것도 책이라고 읽으면서 눈물을 찔끔거린다고 누나들에게 비아냥을 들었던 것 같다.


내돈내산. 요즘 말이고,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반복하면 '내 돈주고 내가 산' 물건이라는 뜻이다. 독서에 관한 나의 첫 출발점은 내돈내산이다. 내가 낸 돈이 아까워서라도 산 책은 읽는다는 식이다. 실제로 여전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나 남들에게 선물받은 책의 완독율은 여전히 내돈내산에 비해 현저히 낮다. 어머니가 사주신 전집과 같은 전처이고, 남들이 공부하라고 하면 놀고 싶은 내 인간본성의 근원에서 비롯된 행동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의식적으로 지금도 매년 몇 권 이상의 책을 돈을 주고 산다. 최근부터는 아예 지구환경보호를 명목으로 주로 중고서적을 구매한다. 그 편이 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책을 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해서 1년에 52여권의 책을 '만난다', 아니 '만나려고' 노력한다.


'만난다'라는 것도 아주 솔직한 표현인데,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만난다'고 하는 것은 개중 만나다 헤어지는 것도 있고, 끝까지 만나고 덮는 경우도 있고, 아주 드물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게 하는 책도 있다. 더 정확하게는 '완독'에 의의를 두기 보다, 책을 사고 읽고 덮는 행위를 한다. 어떨땐 발췌독, 어떤 때는 속독, 좋을 땐 정독. 잠이 안올때는 일부러 정말 두 페이지도 넘기기 힘든 책을 펼친다. 코스모스. 어떤 작가가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이고 소장하고 매번 들여다 본다고 해서 산 책인데, 나에게는 가장 난해한 문장들이고 두꺼워서 비싸게 돈 주고 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안올때 두장 읽으면 딱인 그런 책이다. 10대 후반에 이르러 '교양인', '지식인'이 되어 보려고 의도적으로 시작한 일이라...나의 독서는 늘 저런 식이다. 뭔가 그럴듯한 사람들이 읽을 법한 책을 사 놓곤 책장에 진열만 하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솔직히 책을 읽은 게 아니라 글자를 읽었다. 지금도 무슨 이야기를 읽은건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냥 '그렇게 어려운 책을 읽었다'는 자기만족만 남았다. 그것도 스노비즘이라면 스노비즘이겠지만. 월든은 어떻고. 지금까지 월든처럼 안읽히고 열었다 닫기를 수없이 반복하게 만든 책이 없었다. 최근에도 밀리의 서재에 다운로드 받고, 아 이제 내나이 마흔 넘어 그 전원의 소박한 생활에 관한 아포리즘이 음미가 되겠지 했지만...역시나 몇 장 넘기다 에라 유튜브나 보자하곤 닫았다.


책에 대한 신심이 부족해서인지, 나는 부자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지식인이고, 부를 축적할 수 있으며, 더 나은 생활이 가능해지고,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며, 문해력을 길러주고 독창적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말은 정말 사실인가? 주관을 객관인것처럼, 자기 입맛대로의 통계를 근거삼아 하는 주장에 불과한 것들이다. 동명이인이 사실은 이름이 같고 사람이라는 사실 외에는 공통점보다는 다른점이 훨씬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독서가 권장할 만한 행위인가부터 의심을 가져봐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독서보다 더 나은 지식의 습득 방법이 존재할 수 있고, 창의력은 다른 수단으로도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까 잠시 언급한 '만들어진 신'과 같은 논리다. 독서가 마치 대단한 행위인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달라진 미래의 모습과 소득을 보장할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무리하게 독서를 신화화 하는 것이다.


그저 독서가 자기 위로와 만족을 주면 그만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가 되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선물같은 시간을 되돌려 주는 것. 시간이 없고 뭐가 없고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가 아니라 '글을 읽는 행위'가 나에게 희미하나마 어떤 편안함을 준다면 그것이 바로 독서다. 올해도 새해 결심을 독서라도 해두고 망설이는 분들에게 감히 말한다. 다 읽지 않더라도 책을 사는 행위와 그 행위가 주는 소소한 기쁨 그리고 짧은 찰나의 순간에라도 찾아오는 편안함 그 두 가지만 느끼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상당한 독서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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