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상하이 락다운 오디세이

이천오백만 인구가 집에 갇힌 그 봄날에 관한 이야기

by 쿠쿠다스

어느 날 밤이었다. 잠을 뒤척이다, 상하이 락다운의 경험을 더 늦기 전에 기록해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당위감이 들었다. 역사에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지금의 나는 판단할 수 없다. 나의 글쓰기 실력으로 이년이 지난 2024년, 2022년의 봄을 기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한 세계적 도시의 이천 오백만명 인구가 봄 한 계절을 집에서 갇혀 지내야 했던 그 혹독한 시간들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결국 파편처럼 흩어지고 기억속에서 잊힌채 '좋은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기에...되도록 소상히 나의 경험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서막 - 202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어디서부터 기록해야 할까. 사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사는 상하이 푸시(浦西) 구역의 락다운은 4월 1일에 시작되었다. 당초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푸동 지역에서 먼저 삼일간 실시하고 뒤 이어 푸시구역에서 삼일간 자택에서 격리를 진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삼일을 예정하고 시작된 일이 두달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분노, 불신, 불평이 나를 지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에 와 되돌아 보건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근데 왜 3월 8일부터 기록하는가? 그건 바로 대규모 도시 락다운 이전에 사무실 48시간 격리라는 논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집단 감금의 경험으로 그 해 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고 우리 회사는 이날을 기념하는 뜻으로 여성 직원들에 반차를 제공한다. 아내의 회사에서도 비슷한 편의 같은 것을 제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무실은 평소보다 매우 한산했고, 나 역시 그런 분위기를 틈타 다섯시쯤 일찍 사무실을 떠났다. 퇴근하고 아내와 동내 근처의 비어플러스 (세계맥주를 판매하는 집인데 영어 소통이 가능해서 종종 다녔다)에서 만나 창가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최근에 상하이시가 시행하고 있는 사무실 집단 격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다. 사실 그 얼마 전 회사 동료분은 우연히 잡아탄 택시 기사가 확진자가 되는 바람에 정부 지정 시설에서 14일간 격리를 진행하기도 했다. 2022년 3월 초 상하이시가 코로나 감염자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던 방식은 아래와 같다.


1. 확진자(PCR 양성) – 완치 될 때까지 집중 치료, 동거인도 격리되고 동거인이 소속된 기관(학교, 직장)에도 통보가 된다.

2. 밀접촉자(확진자 역학조사로 판단) – 14+7일 집중 격리, 격리 기간 중 핵산 검사 8회 실시, 동거인도 격리되고 동거인이 소속된 기관(학교, 직장)에도 통보가 된다.

3. 간접 밀접자(밀접촉자 역학조사로 판단) – 14일 집중 격리, 격리 기간 중 핵산 검사 6회 실시, 역학조사는 없고 동거인 격리나 동거인 소속 집단에 통보도 하지 않는다.

4. 일반 접촉자(1~3번과 과거 접촉한 사례로 판단) – 2+12일간 자택 혹은 사무실에서 격리, 격리기간 중 핵산 검사 4회 실시, 역학조사는 없고 동거인 격리나 동거인 소속 집단에 통보도 하지 않는다.

(출처- 상하이방, http://www.shanghaibang.com/shanghai/news.php?mode=view&num=65107, 2024.5.12)


그러니까 위 4. 일반접촉자에 해당하면 2일 (48시간)을 어디에선가 가두는 방식으로 우선 관리한다. 가령 사무실 빌딩에서 코로나 양성 확진자가 1명이라도 발견될 시 그 건물안의 인원 모두를 해당 건물에 가두어 추가 감염 및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다시 비어플러스의 나로 돌아가면 여섯시가 가까워 K에게 전화를 받았다. 다급한 목소리로 '너 사무실을 빠져 나왔니?'라고 묻는다. 나는 일찍 퇴근했다고 답하자 그는 정말 다행이라면서 '지금 사무실이 락다운 되어 자기도 급히 빠져 나오는 길이라고...몸 조심하고 곧 다시 보자'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그와 정말 '곧' 다시 보게 될것이라고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저녁 여덟시쯤 다시 전화를 받았다. 정부가 말하길, 우리는 집 근처의 병원으로 가서 당장 PCR검사를 진행해야 했다. K는 나의 집 근처에 살았던 관계로 그와 함께 인근 병원을 찾아 PCR 검사를 받았다. 그리곤, 밤 열시반. 다시 전화를 걸어온 K는 우리는 4번 일반접촉자로 분류되어 지금 사무실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긴다. 이전에 호텔에서 14일간 격리한 경험을 살려 라면도 챙기고 냄비도 챙기고 술도 몇병 넣는다. 아내는 배게도 필요할 것이라면서 배개도 넣는다. 48시간동안 사무실에서 지낼 생각에 암담하다. 어디서 잠을 자나.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된다. 뭐 군대에서 지금 생각하면 정말 신기한 게, 그때까지도 이것이 부조리하다는 깊은 회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단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일까. 실제로 중국 직원들은 격리에 대해서 크게 불평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실제로 '정부가 알아서 다 챙겨줄텐데 뭔 걱정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밤 열한시쯤 사무실에 도착한다. 건물로 진입하려는 택시들이 길게 줄지어 늘어섰다. 1층 로비에선 회사 General service 팀이 침낭을 나누어준다. '이럴줄 알고 미리 준비했다'면서. 사무실에 올라가자 이제 막 도착한 직원들의 얼굴에는 대체로 짜증과 불안 또는 불만 보다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됐다는 식의 밝은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일부는 벌써 마장과 같은 보드게임판을 차리기도 했다. 어지쩌지 하다 보니 이미 밤 열두시가 훌쩍 넘었다. K의 사무실에서 둘이 자기로 한다. 바닥이 딱딱하다면서 박스를 나눠준다. 직원들은 각자 저마다 자기 책상 밑으로 다리를 집어 넣고 일렬로 눕는다. '여성의 날' 덕분에 많은 직원들이 출근 대신 재택을 하는 바람에 사무실이 그렇게 붐비지는 않는다며 서로를 위로하고 이렇게 특이하고도 긴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니 근데, 사무실에서 나와서 집에 돌아간 사람을 다시 사무실에 불러 들인다고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나?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논센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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