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육아지옥을 떠나와 보니

좋은 이모님, 유연근무체계, 육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가져온 변화들

by 쿠쿠다스

좋은 이모님, 유연근무체계, 육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가져온 변화들

오늘 아침 연합뉴스 기사에 "서울 맞벌이 가정 24% "우울"... 워킹맘. 워킹대디 하루 휴식 1시간" (https://www.yna.co.kr/view/AKR20240531124600004?input=1195m) 기사가 올라왔다.

유례없는 저출산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의 현실. 그렇다. 나 역시 서울에서 아이를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키운 경험이 있고, 그 시절에 왜 그렇게 힘들고 우울했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아내와 종종 예전을 회상하며, 하나 키우는 건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었나 모르겠다고 웃는다. 그러나,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2016년 2월에 첫째가 태어났다. 출산을 하고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벌어진 Day 1을 잊을 수가 없다. 하필이면(때마침) 설 연휴였고, 그런 이유로 산후 도우미가 출근하지 않았다. 조리원의 집단생활을 겪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요청에 따라 선택한 옵션이었는데, 정말 큰 낭패가 됐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지낸 삼일의 시간은 지금 되돌이켜 생각해도 암담했다. 출산으로 몸이 성치 않은 아내. 뭘 해줘야 할지 모르는 어린 아기. 때마침 양가 부모님도 명절을 전후하여 와 주실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야말로 지원체계가 하나도 없는 무방비 상태에 내몰린 것이다. 웃긴 이야기지만,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육아사전대백과', '삐뽀삐뽀소아과'를 수능 준비를 방불케 하며 읽었다.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겠다'...는 뻔한 농담을 내뱉으면서.

사실 누나가 지난 몇 년간 부모님께 신세 지며 육아를 해 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마음 편치 않았다. 부모님은 어디 하소연하실 데가 없으니, 결혼 전의 나를 붙잡고 손자를 돌봐주기 위한 자기들의 고충과 애환에 대해 나에게 자주 털어놓으셨다. 공감을 해 달라는 이야긴 줄 모르는 바보 같은 시절이어서, 이야기를 듣곤 누나에게 화를 내고 부모님께 핀잔을 주었다. 그리곤, '나는 부모님께 그런 부탁하지 않겠다', '제 새끼를 제가 낳았으면 자기들이 알아서 키워야지'라고 여러 차례 여러 사람에게 말했다. 왜냐면, 나는 결혼을 할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자녀를 가진다는 건 더더더더 생각해 본 적이 없으므로.

그런 내가 아이를 낳았으니, 부모님께 연락하지도 못하고... 어디 물어볼 데가 없어서 책을 보아 가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애가 왜 잠을 자지 않는지, 어떻게 우유를 먹이는지, 기저귀를 가는지... 늘 살아오며 문제를 해결해 가던 방식으로 육아를 시작했다. 사실 육아는 지금 되돌이켜 보면, 어른들의 지혜가 정답일 때가 상당히 많은 영역이다. 그들은 경험으로 형제자매를 알아왔고, 또 스스로 복수의 자녀들을 낳아 길러본 경험이 있는 육아라는 세계의 진정한 현인들인 것이다. 그런 분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소리쳤으니. 쯧쯧. 심지어는 누나의 조언도 잔소리로 들리는 그야말로 사리 분간을 못하는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러고 나서 백일, 그리고 일 년은 정말 어둠의 시간이었다. 삼십 대 초반으로 회사에서의 일은 많았고, (그만큼 에너지 소진이 컸다는 말일 터)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했다. 출구가 없는 터널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는 느낌. 아기와 함께 자는 아내의 고충은 어땠을까, 상상도 못하겠다. 나는 다른 방에서 따로 자도록 배려해 주었는데도, 그야말로 피곤해 죽을 것 같았다. 운동 같은 건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고. 주말에 여유가 생기면 자기 바빴다. 서울에 있는 아내의 부모님 댁에 갈 기회가 생기면, 잠시 아기를 부탁드리고 잠자기에 바빴다. 당연히 먹는 일에도 부실하고. 이건 내가 생각한 결혼생활이 아니야.

하나뿐인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그야말로 '애지중지'. 우선 아이가 생겼으니, 더 큰 집으로 이사부터 해야겠고.. 이사하고 나니 집안에 새로운 것들을 들여놓고, 아이에게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 맞벌이 부부로 낮에 혼자 아이를 두는 미안한 마음에 대한 보상 심리로 그러기도 했고,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그랬다. 스토케 유모차를 사고, 초록마을에서 먹을걸 사고... 그런 식. 키즈카페, 압구정에 있는 어린이 전용 미용실, 병원은 언제나 유명 병원 등등 말해 뭐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기 자신을 위한 쇼핑, 여행, 여가생활, 취미 등등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점점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고, 아이가 두 살쯤 되자...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곤, 둘째를 낳았다. 똑같은 어둠의 터널이 반복될 것을 알면서도. 그런데, 첫째에게 남겨줄 대단한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부모로서 뭘 해준다면... 가장 좋은 것은 그와 함께 인생을 살고 기댈 수 있는 형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서. 사실 딸이길 마지막까지 바랐지만, 아들이 태어났다. 어떤 사람들은 아들 둘이라는 사실에 위로를 건넸다. 이미 그때도 출산율이 위기이니 어쩌던 시절이어서, 둘을 낳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 때는 처음만큼 죽을 것처럼 힘들지 않았다. 다음에 뭐가 올지 알 수 있었으니까?

가령 열이 나는 상황. 첫째 때는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에 달려갔다. 둘째 때는 응급실에 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너무 잘 아니까, 그냥 해열제를 먹인다. 유기농이 다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바닥에 떨어진 음식쯤 주워 먹어도 괜찮다고 놔뒀다.

개인의 경험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위험한 발언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둘 생기면, 육아를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고 내 삶을 운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아이가 하나일 때의 애지중지의 마음, 그리고 사회에서 나의 성공과 라이프스타일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육아라는 의무를 하나 덧대는 식이었다. 아이가 둘이 되고 보니, 애지중지를 할 수가 없다. 사랑을 둘에게 나눠줘야 하므로. 사회적 성공과 개인의 성장에 대한 관점에 변화가 생긴다. 세상에 많은 것들이 노력을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던 오만한 나라는 인간은,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깨닫곤 비로소 조금은 겸손한 인간이 되었다.

다음으론 이모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나의 직업은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하는 일이다. 그러니, 이모님을 구하는 일은 나의 온갖 전문성과 심혈 그야말로 시임혀얼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지상 최대의 과제다. 채용공고를 작성한다. 좋은 이모님이 와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 가족을 소개하고, 이모님이 심기가 불편하시지 않도록 우리가 원하는 아주 최소한의 요구사항을 적는다. 급여는 적지 않게. 출퇴근 시간은 최대한 맞춰드리고, 우리 부부는 외국계 기업에 다니므로 연 15일 이상의 이모님 휴가도 보장해 드리면서. 명절 보너스도 드려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 이상한 사람들도 많았다. 예고 없이 출근하지 않는 분. 장모님께 우리들 몰래 돈 빌려달라고 (이건 정말 클리셰다. 나 말고도 주변에 그런 이모님이 실제 많았다). 식당 주방장 출신으로 밥만 잘하는 분. 물론 정말 좋은 분들도 많았다. 근데 한국에서 애 낳고 기르는 5년 남짓 시간 동안 이모님이 네 번 바뀌었으니, 그들의 재직기간은 실제 평균 일 년 남짓. 아내는 이모님이 사정이 생길 때마다 그야말로 멘탈의 붕괴를 경험했다. 새로운 분을 찾아야 하는 암담함. 또 새로운 이모님과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는 암담함. 변화관리. 장모님까지 매달려 세 사람이 몇 차례나 그 암담한 순간을 함께했다.

힘들다는 이야기는 여기까지.

지금 상하이에서의 육아를 서울에서 시절과 비교하는 것은 분명 공평하지 않다. 아이들이 다섯 살 세 살 때 왔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제 앞가림을 지난 세월보다는 좀 더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상하이도 출산율로 말하면 한국 못지않은 저출산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육아는 훨씬 수월하다. 왜?

이모님 덕분에. 좋은 이모님은 육아에 정말 핵심 지원체계다. 특히나 맞벌이 부부에게. 아까 말했듯 한국에서 이모님을 구하는 과정은 전혀 순탄하지 않다.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하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 이모님들이 요구사항이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매우 딱딱하다. 이를테면, 자녀 둘 있는 집은 피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있는 것도 싫고, 집안을 은 아이들 관련된 것에만 국한해서 하고 등등 이모님이 상전이고 고용주인 부부가 끌려다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모님께 초과근무를 부탁드리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말 근무는 언감생심.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려는 서울시장의 시도에 대해 여러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빚어내는 경직된 환경을 풀기 위해서는 공급 측의 해소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상하이 작다 운과 저출산은 상대적으로 이모님 구하기 시장에 일시적 공급과잉을 낳았다. 이들 분들은 오랫동안 집안 일과 육아 등 가사 전반에 깊숙이 관여한 경험이 있는 터라 생활 전반에 큰 도움을 주신다. 지금 우리 이모님을 예로 들면 두시 반 출근 여덟시 반 퇴근. 여덟시 반 퇴근만 해도 맞벌이 부부에게는 크게 숨통이 트인다. 또 야근 불사. 물론 야근에 따른 별도의 수당은 드려야 되지만. 그래서 우리 부부도 종종 야근을 부탁드린다. 이모님의 화룡점정은 일요일도 같은 시간 출근이다. 주 사십 시간 (및 적정 급여수준)을 맞춰 드리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일요일 출근은 말도 못 한 게 큰 편의를 제공해 준다. 우리 부부는 일요일 오후에 애들 맡기고 나가 데이트하고 놀다가 저녁 먹고 여덟시 반에 들어온다. 지금의 이모님이 상하이에 모든 이모님을 대표할 하나의 사례가 될 순 없지만, 대부분 가사에 정통하다. 빨래, 식사 준비, 청소. 심지어 지금 이모님은 아이들 숙제도 봐 주신다. 병원에도 데려가고, 미용실도 데려가고, 수영 수업을 비롯 각종 과외를 진두지휘하신다. 영어가 가능한 그녀는 물론 시세 대비 두 배의 급여를 받는 고급 이모님이시다. 시세의 두 배라고 해도 한국의 절반 수준이니, 우리 부부에겐 그야말로 구세주다. 자, 어떤가. 한국의 이모님들이 저 정도의 편의를 제공해 줄 수 있나?

지금 이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돌아간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른 하나는 회사의 지원체계다. 우리 회사는 주 2일 재택근무를 허용한다. 휴가는 연 20일이고, 내가 아프거나 애들을 돌볼 일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Medical Leave 가 별도로 12일이 제공된다. 그리고, 아이들 일이라면 유연성(가령 출퇴근 시간 조정)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체계가 제공된다. 어떤가. 역시 숨통이 틔우지 않나? 애들은 생각보다 자주 아프기도 하고, 의사를 만날 일이 많다. 그리고 육아를 하다 보면 피로와 각종 이유로 부부도 성치 않다. 내가 한국에서 아이들 영유아 시절에 가진 휴가는 15일이 전부였다. 재택근무는 상상도 못 해본 옵션이었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적절히 일과 삶에 균형을 유지할 겨를이 부족했다. 15일의 휴가도 직장에서 겨우 중간관리자가 될까 말까 한 대리 과장급으로 눈치 보며 사용하고. 같은 회사였지만, 한국의 제도가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가 유연한 근무환경을 제공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다. 지금도 아이들은 자주 불가피한 사유들을 만들어 낸다. 학교 발표회, 부모님 모시고 오는 날, 선생님 면담, 참관수업 등등. 이럴 때 사용할 수 있는 별도의 유연근무제가 있다는 것은 정말로 육아의 부담을 드는데 큰 도움이 된다. 20일의 휴가는 15일의 휴가와 질적으로 다르다. 5일의 휴가를 비교적 긴 휴가라고 여기는 여전한 한국인으로서 계산해 봐도, 1년에 4번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가족이 휴가를 보낼 수 있다는 셈이 선다.

마지막으로, 이건 좀 주관적인데... 외국인 친구들에게 받은 영향이다. 프랑스를 비롯 유럽의 동료들은 보통 아이를 복수로 그것도 경우에 따라선 셋넷 낳는다. 그들에게 받은 영향은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삶이 있고, 부부에겐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부의 로맨스, 자녀들과의 육아, 모든 가족들의 생활이 따로 또 같이... 잘 떨어지고 잘 뭉친다. 가령, 애들을 놔두고 부부가 저녁에 데이트를 늦게까지 하는 일을 예로 들면... 그것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 전혀 아닐뿐더러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영화 라라랜드에 한 장면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이모님께 맡겨두고 부부가 재즈카페에서 주말에 데이트를 즐기는 그런 식. 영화 속 부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자연스럽게 가능해질 때 육아라는 부담에서 해방된 부부의 행복한 생활이 가능하지 않을까? 워킹맘, 워킹대디가 하루에 1시간 휴식을 취하면서 뭘 할까? 아마 그들에게 부여된 한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라서 느긋하기보다는 시간에 쫓겨 뭔가를 해내려고 아등바등할 가능성이 더 높은 시간일 것이다. 그러니 우울하고, 이런 우울한 실정은 더 큰 파장을 일으켜 다음 세대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주저하게 만든다. 육아를 위해서 결혼하고 출산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을 돈독히 하기 위해서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한 의사결정과 더 행복한 가정을 위해 출산이라는 다음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는 분위기가 지금 서울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결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시절, 출산을 망설여본 경험이 있는 한 인간이, 누군가의 남편이 되고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해 양가의 부모님을 비롯한 '지원체계(Supporting System)'가 없이는 아무것도 순조롭게 지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남편이 되는 일이 처음이고, 부모가 되는 것이 처음인 사람들을 사회가 나서서 돕는다는 것. 누군가 함께 나서서 도와준다는 '믿음'이 있다면 지금보다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더 많이 들리는 도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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