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계획 중이다. 나는 한때 속초와 고성의 중간쯤 지역에서 2년 1개월간 살았다. 원해서 그곳에서 지내게 된 것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울산바위가 바라보이는 '병영'에서, 스물두 살의 나는 많은 것들을 꿈꾸고 상상하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군대에 대한 기억은 많은 부분이 '풍경'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동해바다 그리고 설악산. 그래서 여전히 그곳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군 생활했던 곳은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라고 하지만.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알아보며 요 며칠 보냈다.
때마침 회원권을 가진 분이 계셔서 덕분으로 모 휴양지 (라고 해도 어차피 다 유추가 가능하겠지만)를 알아보게 되었다. 이름을 따라가기가 너무 어렵다. 펠리체, 소노캄, 소노문, 소노벨, 델피노, 암브로시아...난리블루스라는 말을 이런 때 써야되나. 이름 짓는 거야 기업 마음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지만 이용객들이 저 복잡한 이름들을 외우까지 얼마나 많은 뇌력을 낭비해야 할까 생각이 미친다. 뭐 어쨌든 명당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그곳 외에는 별 대안도 없으므로 그곳에 예약을 넣는다. 예약을 하다 보니 저 복잡한 이름들이 결국 하나의 '급'을 나눈다는 것을 배운다. 누구에겐 허락되었지만, 누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공간의 분할들. 마치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클래스, 이코노미 클래스처럼. 휴양지에서마저 계급의식을 떨쳐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어느 지점에선 우리 모두가 가련하다.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일 수도 있고. 다만, 그런 계급의식을 '의식'하도록 노골적으로 만드는 데에는 마냥 편안할 수 없다. 마침내 그 복잡한 이름 붙이기 와중에 '노블리안'이 있다는 지점에서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노블리안은 스스로 노블하다고 말하지 않는대서 귀함이 나오는 걸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아니 노블과 그렇지 않음을 일개 리조트가 방과 건물 그리고 벽 사이를 두고 규정하는 것도 사실은 어처구니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남기는 인터넷상의 글과 댓글을 보면, 이런 구별과 차별이 정당하다는 여론이 점점 대세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라테는... 그런 '노골성'이 곧 천박함이라고 저어하며 드러내지 않음을 미덕으로 삼았었는데) 요즘은 능력주의(meritocracy)나 금전이 곧 능력이라는 머니토크라시 Moneytocracy 가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양상이다. 돈을 더 내면 놀이공원에 줄을 건너뛰어 시간을 아낄 수 있고, 돈을 더 내면 '노블리안'에서 더 좋은 풍경을 향유할 수 있는 것. 결국 돈이 정의(正義) 임을 정의(定義) 내린다.
일상의 매 순간이 그런 식으로 등급 지어지고 구분 지어지는 걸 허용하는 것이 개인, 나아가 집단의 행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세계행복 보고서는 구매력 기준 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선택의 자유, 아량, 부정부패*를 어떻게 느끼는지 평가하고 순위를 매긴다. 이 조사에서 매년 행복도가 하락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 GDP와 기대수명은 전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이고, 부정부패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개선되었는데 말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A%B3%84%ED%96%89%EB%B3%B5%EB%B3%B4%EA%B3%A0%EC%84%9C
우리나라 시민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어떤 교수님으로 보이는 분이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요즘 반박이 대체로 불가능한 객관적이거나 정량적 내용을 토대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나는 반에서 1등이야, 나는 캐슬에 살아, 나는 연봉이 얼마야... 와 같은 객관적으로 둘러보아도 별로 반박한 여지가 있지 않은 하나의 '사실'을 토대로 자존감을 구성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정말 착해', '나는 상상력이 풍부해', '나는 마음이 넉넉해'와 같은 자신만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자아와 자존감을 구성하려는 경향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내 목표가 아닌 사회가 대체로 인정하는 정량적인 지표들을 목표로 삼는 삶들이 주를 이루는 게 아닐까. 어느 대학을 가고, 어느 대기업에 취업하는 뭐 그런 식?. 대기업에 가면 행복할까? 사회 초년생 시절 대기업에 다니던 나는 출근길에 문득 '저기 달려오는 버스에 그대로 뛰어들까'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몹시 불행한 인간이었음을 고백한다.
휴가철 숙박 장소를 고르다 지나치게 열 폭 안 건가 모르겠지만, 사회 도처에서 이렇게 등급을 나누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 상황에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여전히 계속 하락세를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연애와 결혼, 출산, 육아와 같은 얼핏 생각하면 자연스럽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계산'을 하다 보면 손해나는 멍청한 행동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덜 하게 된다. 사실은 그런 멍청함 들 이 대단히 큰 행복의 원천인데도. 친구 사이도 급이 나뉘고, 연애도 수준이 맞는 사람들과 하며, 결혼과 출산은 좀 있는 집 사람들의 일이 되어가는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연대(Solidary)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아니 어쩌면 같은 '급'의 사람들끼리 연대가 좀 더 노골적이고 견고해진 것인지도. 계급 이동/세습이 점점 굳어지는 추세니.
사회 여기저기, '노블리안 전용입니다', '아침 드실 시간은 미리 정해서 조식 예약을 하세요', '수영장 선베드는 유료입니다'와 '입실은 세시인데 아침 7시부터 번호표를 배정합니다'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적 제재가 횡행하는 일에 분연히 함께 일어날 사람들이 있을까? (사실 이 리조트의 수영장은 킥보드도 돈을 받고 대여해 준다. 지난 43년간 많이는 아니어도 전 세계/전국 여기저기 수십 개 수영장 다녀 보았지만, 킥보드를 돈 주고 빌려주는 수영장은 이 리조트가 처음이었다. 정말이다) 캐슬이니 에스테이트니 세계적으로도 조롱거리임에 분명한 이름 짓기에 열 올리는 기업들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소비자들이 카르텔을 점점 더 굳건하게 해 나갈수록 많은 시민들의 행복 도는 분명 퇴보할 게 분명하다.
여름휴가지에서마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쪼다' 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피곤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곳은 정말 쏘 노(So No)다.
오늘 밤에는 그런 고민하지 않게 만드는 고즈넉한 대안이 어디 없나 좀 찾아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