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이 일화를 남겨야겠다. 19년부터 감수성훈련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3일 종일 이어지는 기본과정을 이수하고 나면, 선택에 따라 매월 하루 심화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음'에 집중해서 대화 나누는 '훈련'이다.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일상생활을 잠시 옆에 밀어두고 감성과 마음에 귀 기울이며 대화 나누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는 EQ 정서지능을 높이는 훈련이자 정서지능에 기반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지금은 사정상 오프라인 교육에 참석할 수 없다. 그래서 온라인 감수성훈련은 나에게는 소중한(유일한, 귀한) 시간이다.
지난주 올해의 첫 학기가 끝났다. 조촐한 수료식이 진행된다. 특별히 이 훈련을 이끌고 있는 남관희 선생님이 함께 자리 해 주셨다. 여느 프로그램처럼 지각과 결석의 허용 범위를 넘지 않는 참가자들에게는 수료증이 주어진다. 열 명 남짓한 참여자 중에 두 명이 수료증을 받는다. 수료증을 나누고 나서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억나는대로 적어본다.
"이번 프로그램의 수료자들의 숫자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첫마디를 듣는 순간, '아 참여자들의 성실성에 약간 실망 하셨나보다'하곤, 속으로 조금 뜨끔했다. 그도 그럴것이 두 명의 촉진자(진행자)들이 개인의 시간을 희생하가면서 매 2주 한번씩 세시간의 시간을 내어 주시는데, 참여자들의 성실함이 그에 미치지 못했으니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다음 말씀이 놀랍다.
"여러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 그렇게 지각이나 결석을 피할 수 없는 그 어려운 상황과 환경 속에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훈련에 참여하는 그 마음이 귀하고 대단하다고 느껴진다"고 말씀하신다.
겸연쩍던 마음에 허를 찔린다. 그리곤, 지각과 결석을 두고 어떤 기준에 미치지 못함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그 지각과 결석 사이에서 마음편치 않았을 사람들의 마음과; 그 분주함을 무릅쓰고 이 훈련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의 노력과; 무엇보다 지난 몇 달간의 "시간"에 대해서 알아 보아 주시고, 노력에 감탄해주시고, 모두의 시간이 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그 말 한마디로 갈무리 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나는 시간을 지키지 않는 상대방을 잘 신뢰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예의가 곧 성과와 연결된다고 믿어왔다. 그런 나에게 주어진 저런 '순간'은 새로운 경험이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중 하나가 시간에 무심하다.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답도 늦고. 이미 나는 그 사람이 좋은 성과를 올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별다른 기대 품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몇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말을 안할 수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오늘은 피드백을 전하기로 한다.
"늦은 시간 이런 메시지 남겨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제가 피드백을 좀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이미 나는 너의 허락따위 필요 없이 아래 몇 마디 적겠어...를 이렇게 쓴다. 어디서 그러라고 한 것 같아서)
그리곤, 이어 비난과 불평불만 그리고 개선점을 함께 적으려다 멈칫한다. 며칠 전 남관희 선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좀 다르게 적는다.
"저는 시간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끼리 시간이 어긋남은 곧 비효율을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당신과 일하면서 몇 차례 시간이 어긋남을 경험합니다. 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들에 최선을 다해 하시려고 하다보니 이런 일이 빚어진다고 생각해요...(중략)"
마음의 소리와는 약간 다른 톤앤 매너였지만, 피드백을 전하는 마음이 원래 가졌던 마음보다는 많이 누그러지고 진심으로 상대방이 걱정 되기도 하고, 돕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흔하고 뻔한 말이지만 말 한마디가 대화의 분위기를 바꾼다. 지각과 결석을 '어려운 환경 속에서의 필사적 노력'으로 보아주는 그 너그러운 성품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나는 변화하고 개발될 수 있을까. 아무튼, 남관희 선생의 메시지는 대화의 당사자를 이렇게 뛰어 넘어 세상의 긍정성을 +1 시켰다. 정말 대단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