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의 팔봉산 친구와 나에게는 특별하다. 몇 번의 시도를 하였지만 우리를 맞아주지 않았다. 한 번은 춘천에서 버스를 타고 팔봉산을 가려고 준비하였는데 친구가 오는 버스가 트래픽 잼으로 2시간을 고속도로에 머물러 강촌의 삼악산을 가기도 하였다.
팔봉산 구봉산 등은 봉우리가 8개 9개인 관계로 이름이 붙여진 이름이다. 팔봉산은 홍천에도 있고 서산에도 있다. 2곳 모두 300m 남짓의 산이지만 바위산으로서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서산의 팔봉산보다 홍천의 팔봉산이 수도권 인근이라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사당역에서 버스는 출발하였다. 그 복잡한 사당역 끝에 버스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다. 이 버스는 다음의 카페 산악회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버스가 이렇게 왁자지껄한 것은 처음 본다. 너도 나도 안부인사다. 조용하게 가야 할 것 같다. 산행 경비는 무척이나 싸다. 강남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성남으로 접근을 한다. 산행 경비로 1인당 1만 원으로 이것을 해결하다니 주최 측이 돈이 목적은 아니다. 돈이 목적이라면 2배를 받아야 할 것이다.
팔봉산(328.2m)은 흔히 두 번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설명을 한다.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암릉으로 구성되어 아름다워 놀라고, 둘째는 산행이 만만치 않아 놀란다고 한다. 겨울에는 암릉이라 등반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힘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팔봉교를 건너면 다리 끝에 매표소가 있는데 매표소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35분 정도면 1봉을 오르고 8봉까지 다음 봉우리를 오르는데 10-20분 정도 소요된다. 총 산행시간은 4시간 소요되었다. 마지막 8봉은 오르는 코스가 가파른 암릉인 데다 하산 코스도 급경사에 로프를 잡고 하산하는 코스로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이 나의 기본 소감이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한다. 예전에는 국립공원인 산을 들어갈 때마다 입장료를 내었는데 최근 산을 오르면서 입장권을 구매한 산은 이산이 처음이다. 개인은 1000원 단체는 1500원이다. 여기서, 꼼수가 등장한다. 산악회로 왔지만 사실은 모두가 개인이라고 보아야 하지만 단체를 만든다. 산행대장에게 1000원을 주면 숫자를 세고 단체로 납부한다. 우리는 꼼수를 누구보다 잘 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민족에 흘러오는 dna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은 잘 속이는 것으로 독일인은 원리원칙주의자로 인식되어 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그것이 흘러와서 그랬을 것이다.
이곳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서 등산을 시작하였고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산길에 여유를 갖고 이곳을 다시 둘러보니 재미있는 조각도 있고 그 이유도 설명되어 있다. 생각해보니 ebs에서 시험하였던 고릴라와 숫자가 생각이 난다. 본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등산로는 일방통행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하산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도봉산 y계곡이 일반통행하는 것처럼 이곳도 그렇게 운영이 되는 것이었다
등산로는 좁고 가파른 만큼 최대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홍천군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홍천군에서 관리사무소를 두고 관리를 하고 있으며 홍천군 홈페이지에서 이를 안내하고 있다.
안전을 위하여 겨울에는 폐쇄를 하고 해동이 되는 시점부터 결빙이 되는 시점까지 운영을 한다. 가까운 홍천 비발디에서 스키를 타고 이곳에 등산하러 왔던 친구가 등산을 못 하였다고 전한 기억이 새롭다.
홍천군에서 안내하는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팔봉산이라 하며 해발 327.4m의 높이로 산새가 아담하고 기암과 절벽 사이로 등산로가 있어 등산의 묘미를 느낄 수 있고 또한 팔봉산을 안고 흐르는 홍천강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제1봉은 대궐에서 대감들이 쓰던 관모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제2봉에는 삼부인당을 모셔져 있고 2봉에서 3봉으로 오르자면 베틀바위가 있었다고 하며 제4봉의 해산굴은 통과하는 어려움이 산모의 고통과 같다고 하며 통과할수록 젊어진다 하여 장수굴이라 하고 4봉과 5봉, 6봉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면서 여산으로서의 풍성함과 따듯한 온유함이 넘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동경이 되고 있다 한다.
제7봉에는 부처바위가 있는데 이곳은 세파에 찌든 중생들이 이곳에 정성을 들이고 나면 마음속에 잡념을 털어내고 정화된 마음으로 하산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8봉에 오르면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사백여 년 전 삼부인을 모시던 곳이라 전하면서 한편 산중에는 용마굴, 백운대, 은선암, 현선암, 귀암, 이기암 등이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나 그곳이 어디를 칭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등산로에 접어들자 이곳이 왜 스틱이 필요 없는지를 알겠다. 초입을 지나 첫 번째 암릉을 만나기까지 10분 남짓만 스틱을 사용할 수 있는 오르막이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두 손과 두발을 다사용하면서 등산하는 산 스트레칭을 자연스럽게 하는 산이다.
산을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면 홍천강이 우리를 유혹한다.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면서 경치를 바라본다. 홍천강은 100km가 넘는다. 그만큼 홍천은 길다고 보면 될 것이다. 홍천군은 지도로 보면 고구마같이 생겼다. 홍천은 구경이 있고 멋스러운 자연경관으로 많은 분들께 힐링, 쉼, 나들이의 명소가 된 홍천 9경에는 팔봉산,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가 있다. 그중 팔봉산이 1 경이다. 홍천강은 홍천군을 가로질러서 청평호로 들어간다.
겨울에는 살을 애는 추위가 홍천강에 있고 여름은 피서객으로 넘친다. 강 언저리의 텐트가 여름의 피서객을 유혹한다. 팔봉산은 이 홍천강이 휘돌아 나간다.
홍천군 안내를 살펴보면 남한 시·군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기도 한 홍천은 군 전체의 87%가 산지로 형성되어 오염되지 않은 청정 휴양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실려있다. 10년 전 이곳에 물놀이 안전점검을 위해서 내방을 하였을 때 그 길이를 경험한 적이 있다. 아침부터 시작한 일정이 홍천군 관내이지만 저녁이 되어서 종료가 된 기억이 있다. 홍천강 상류를 화양강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1봉의 주능선에 접어들면서 가파른 암릉이 지속된다. 암릉지대는 덥다. 하지만 8월 말 음력으로 이제는 추석이 가까이 왔다. 결과적으로 여름보다는 가을의 햇빛이 이곳을 비추고 있다. 뜨겁기보다는 따가운 햇빛이다. 그늘이면 시원하고 바람이 불면 더욱 시원하다.
1봉 표지석은 그래도 큼직하다고 할 수 있다. 스틱보다는 장갑이 필요한 등산로를 여유롭게 오른다. 오늘은 제한시간이 여유롭다. 산악회가 3시간 코스를 6시간 주었다. 4시간 정도 여유롭게 산행을 즐긴다. 주변을 이곳저곳 기웃기웃할 수 있다. 표지석을 벗어나 2봉을 담아본다. 저것이 주봉이라고 한다. 1봉에서 보아도 우뚝 솟아 있다. 하지만 산은 여유롭다. 저곳이 궁금하다. 1봉을 오른 산객은 너도나도 인증샷을 남긴다. 저것이 오늘만 보고 아니 1주일만 보고 말 것이지만 그래도 남긴다.
발길을 재촉한다. 하지만 주변의 들꽃이 우리를 좀 더 있으라고 한다. 며느리밥풀꽃이라고 한다. 우리 야생화 중에는 며느리가 들어가 있는 꽃이 조금 더 있다. 고부간의 갈등을 엿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들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비극을 엿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밥을 지을 때는 으레 뜸이 잘 들었나 보느라고 조금 떠먹어 보게 마련인데 시어머니의 몽둥이질은 그치지를 않았고, 며느리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고 며느리의 무덤가에는 이름 모를 풀들이 돋아나기 시작했으며 여름이 되자 하얀 밥알을 문 듯한 붉은 꽃들이 피어 이를 며느리밥풀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며느리가 붙은 또 하나의 며느리배꼽도 있다. 이것도 슬프다 밥만 먹으면 들에 나가 밭을 매고 잡초를 뽑는 게 일이었던 시절 콩밭에서 일을 하던 시어머니와 며느리에게 벌어진 웃을 수도 없는 이야기 일은 안 하고 자꾸 쉬려고만 하는 며느리가 밭뚝에서 큰일을 보고 시어머니에게 콩잎 좀 따 달라고 하자 시어머니가 괘씸하다 여기고 이 풀을 따다 주었다고 한다. 이풀의 줄기에는 아주 따갑고 독이 있는 가시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며느리배꼽의 이명은 사광이 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꽃말은 "여인의 한"이라고도 한다.
2봉을 올라선다. 2봉이 주봉이라고 한다. 327m 표시가 있다. 2봉에는 당이 두 개가 있다. 사실 이것을 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양심의 자유 문제가 항상 대두된다. 종교적 색안경을 끼면 안 되는데 항상 쓰고 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당이 무엇을 하고 무엇에 쓰이는지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철성당이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과거에는 이를 용납하고 기도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 종교도 누군가에게 강요는 하지 않는다. 이것이 양심의 자유다.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는 아직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곳에는 삼부인신당이 있다. 400여 년 전에 이곳에 신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시어머니, 며느리, 딸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그들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을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 당집에서 잠을 자고 있고 재물을 권한다. 그중에 한 분은 깨어서 산객들과 이것저것 이야기도 한다. 산객들에게 힘겹게 가지고 온 제물을 나누어 준다. 나는 이러한 제물을 꺼린다. 종교 때문 이기도 하고 종교가 없던 어릴 적부터 이러한 것에 그렇게 애착도 없었고 그것에 대하여 거부감이 강하였다. 먹는 것이 귀하던 시절에도 집에서 굶고 있어도 동네 상갓집에 가서 밥을 먹지 않아 모친을 힘들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이 높은 곳 돌산 위에 당을 짓기 위하여 마을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니 그들의 신앙심을 존경할 수 있다. 팔봉산 당산제는 부락제로서 3월 보름과 9월 9일에 제를 지낸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도 당산제를 지낸 기억이 있다. 정월 보름에만 지냈고 부락제로서 그 특색이 있었으며 윗마을의 당산제는 그 마을에서 지내지 않고 옆면에서 지냈다. 금성대군 사당이 있어서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곳이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우리 동네 당산제보다 크고 화려한 윗마을 당산제를 기웃거렸다. 먹을 것이 많았고 당시 당산제를 지낼 때 사용하였던 한지로 공부를 하면 잘 된다고 하여 그것을 얻으려 많이들 간 기억이 있다. 신앙심이란 것이 할머니들이 설악산 중턱의 봉정암을 올라가는 것이나 해외의 산 위의 성당을 찾아 올라서는 노익장 모두가 종교의 힘이다. 이곳이 팔봉산 정상이다. 정상에서 바라다본 3봉은 가파른 계단으로 산을 오르는 것이 보이고 1봉은 조그맣게 보인다. 이곳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3봉을 오르고 나니 이곳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지구는 둥글다고 한다. 둥근 지구에서 높이가 비슷하게 보여도 이웃한 봉우리가 더 높다. 저 멀리 능선을 따라 암릉지대가 우리를 기다린다.
2봉에서 보는 제3봉의 모습은 팔봉산에서 가장 멋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암릉이 만만치 않다. 암릉을 뚫고 올라온 소나무가 그 청초함을 뽐내고 있다. 나무뿌리의 그 무서움과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암릉을 오르는 계단이 없으면 이산은 오르기 힘들 것 같다. 어떤 이는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입장료를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스트레칭이 저절로 된다. 머리를 숙이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야 한다. 살짝만 들면 바위에 부딪힌다. 2봉보다 3봉이 오르기는 계단이 더 많다. 저 험난한 계단을 오를 수밖에 없다.
2봉에서 3봉 생각은 좋다.
3봉에 오르고 살짝 옆으로 돌아 암릉을 돌아본다.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있다. 7봉까지는 능선을 타고 조금만 오르내리면 된다. 8봉은 약간 떨어져서 올라야 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표지석은 조그마한 상태로 유지된다. 흙산은 다니기에는 편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볼 수 없지만 돌산은 다니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적당한 그늘과 바람이 있다면 돌산을 선호하기도 한다. 아직 8월인데 하늘의 구름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보여준다. 3봉 정상을 배경으로 홍천을 담는다. 홍천강과 주변의 집들 산이 어우러져 있다.
4봉으로 이동을 한다. 3봉에서 4봉으로 이동은 40분 남짓인데 우회하는 해산굴을 그냥 둘 수 없다. 좁은 바위 사이를 지나는 것이 해산의 아픔과 같다고 한다. 여러 번 빠져나가면 장수한다고 하는데 대부분 한 번만 통과를 한다. 몸이 좋은 사람과 팔힘이 부족한 사람은 통과에 어러움이 있어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며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와 바위 사이의 길이라고 보면 된다. 아래에서 쳐다보고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해산의 고통을 여기에 비추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스토리텔링을 만들었다는 것에 감사를 할 뿐이다. 이것도 삼부인당과 연결을 시켰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해산굴을 나오면 바로 4봉 표지석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 정상은 바로 위인데 여기를 거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도록 표지석을 배치하고 정상을 사람들이 가지 않는다.
정상을 두고 가기에는 아쉬움이 있고 시간도 많아 이곳에 올라 이곳의 경치를 맛본다. 여유 있는 힐링 산행의 참 맛을 느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멀리 있는 홍천 비발디의 건물도 보이고 홍천의 들과 산을 보았다. 5봉을 향해가면서 4봉을 지난 즐거움과 아쉬움이 교차되었다. 4봉을 지나면서 4봉이나 지났다는 것이고 이제 4봉밖에 안 남았다는 것이다. 5봉에 오르면서 5봉 표지석은 가장 작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돌산 능선에 있는 5봉 표지석을 기초로 인증을 해보니 홍천 들녘이 가득이다. 나보다는 들녘이 더 멋있다고 할 수 있다. 암릉 끝에 있는 소나무가 자태가 마음대로 자라지 못한 소나무의 모습이다. 분재와 같은 모습이다. 인간이 자연을 못살게 하여서 예쁜 모양을 만든 것이 분재이고 자연이 스스로 못살게 굴어서 만든 나무가 특이한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 고사목을 그 모양대로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한다. 표지석을 향해 모든 사람이 엉금엉금 걸어간다. 5봉을 지나자마자 봉우리가 있다. 그것이 6봉이라 생각했는데 이름 없는 봉이다. 산객들은 아쉬움을 표할 뿐이다.
6봉에 접근하면서 예전에 산불의 흔적을 보았다. 산불에 의하여 나무 밑둥이 검게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다. 산불진화대원들이 험난한 산행을 하고 이를 진화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을 것이다. 산불진화 헬기에서 물을 담기에는 무척이나 편리했을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산불인가 생각했는데 뉴스를 검색하니 6년 전에 발생한 산불이었다고 한다.
6봉으로 진행하면서 배고픔이 다가온다. 좋은 장소를 찾아 허기를 달래야 한다. 바쁜 걸음을 옮기면 점심을 산아래에서 해결할 수 있으나 오늘은 힐링 산행인 만큼 서두르지 않고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예전엔 6봉 가는 길도 험란했겠지만 지금은 철계단이 있어 편하게 오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팔봉산도 이젠 등산하기 점점 수월해져 산행시간이 그만큼 단축되고 오르내리며 내뱉던 비명소리도 점점 줄어들지만 정상에서 감탄은 여전하다. 6봉을 오르면서 적당한 장소가 보여서 가 보았으나 먼저 온 산객이 자리를 잡고 있다. 먼저 온 산객과 자리를 같이 할 공간이 못 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6봉 표지석은 정상에 자리하고 있으나 등산로에서 비껴 나있다. 하지만 우리는 능선을 따라 움직였기에 표지석에 쉽게 접근하였다. 표지석에서 등산로에 접근하는 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지주대에 양손으로 잡고 조심조심 움직인다.
능선에서 쉽게 접근이 가능한 마지막 봉오리인 7봉에 접근을 한다. 7봉 정상석은 봉우리 정상이다. 이제는 8봉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가파르게 내려선다. 고사목이 이곳에 참 많다. 고사목을 배경으로 친구를 담았으나 고사목이 보여주지 않는다. 이제 허기진 배를 그늘과 바람과 경치를 가진 자리를 찾아 해결한다.
7봉에서 8봉으로 가는 길은 내려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철계단을 내려가는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7봉을 내려가면서 친구가 갑자기 산객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5봉 지나서 이름 없는 봉을 6봉이라 생각한 것처럼 그분들도 고민이 있었나 보다. 어떤 분이 "6봉이 어디 있지"이렇게 질문을 하니 옆에 있던 사람이 "너 바지 속에"라고 답을 하였다고 한다.
이제 마지막이지만 가장 험난하다고 하는 8봉이다. 여기에 안내표지가 있다. 어려움이 예상되니 자신 없으면 오르지 말고 여기서 하산을 하라고 한다. 팔봉 입구에 코스가 위험하여 안전사고가 빈번한 곳이니 등산에 풍부한 경험이 없거나 체력이 약한 사람, 부녀자, 노약자는 이곳에서 바로 하산하라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철계단이 잘 되어 있어서 뭐가 험난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 8봉을 오른다. 우리는 그저 그런 생각을 갖고 8봉을 올랐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상에 올라선 후 하산길을 내려다보면서 아 하고 한숨을 쉬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모습이었다. 조금 내려선 이후에 그 뜻을 알았다고 할 수 있다.
계단 곳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홍천강이 멋스럽움가 깊이를 알 수 있다. 수영금지를 하는 곳에 수영을 하여 사람들이 익사한 곳으로 유명하여 안전점검을 한 기억이 새롭다. 8봉 정상에서 고사목이 예쁘게 우리를 맞이하였다.
이제 내려선다 홍천강까지 내려서야 한다. 8봉이 험난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깎아지른 절벽 같다. 그냥 철계단도 아니다. 바위에 계단을 박아놓은 상태다. 겨울에 산행을 통제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오른 만큼 내려서는 것이 등산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내려서기를 잘못하면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내려섬에 있어 강가까지 내려서고 모든 것을 강에 흘러 보내기도 하고 다른 인생을 살기도 한다. 인생 2 모작을 생각하기도 한다. 등산 1 모작에 물놀이 2 모작이다.
닭 이장 풀이라는 꽃이 1봉부터 8봉까지 우리를 따라왔다. 닭의 장풀은 강변에 주로 자란다고 하였다.
저 아래 홍천강에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우리는 그냥 위에서 낙하하는 것이다.
내려서면서 저 물속에 뛰어들고 싶을 뿐이다.
강 옆에 내려서니 등산로 입구로 이어지는 길이 낭떠러지를 파내어서 길을 만들었다. 돌산을 인위적으로 파내어 길을 만들었다.
강 너머 사람들이 건넌다 얕은 곳을 지나지만 허벅지까지 온다. 나는 용감하지도 못하고 예비 옷도 없어서 강으로 뛰어들지 못하고 매표소까지 강을 끼고 접근하였다.
여기에서 여유를 갖고 머리를 감고 산행에서 내려오면 사용하는 먼지떨이를 이용하여 머리를 말린다. 헤어드라이기보다 머리를 말리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말리고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이제 주변을 둘러보니 장승 모양이 남근 모양이다. 군청에서 관리하는 등산로 입구에 남근목을 세워놓았다니 말이다. 이유를 매표소에 물어보니 안내판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안내판에 팔봉산이 20여 년 전 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묘책을 강구하였지만 방법이 없었는데 노인이 지나가면서 팔봉산이 음기가 너무 세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남근목을 세워야 한다고 하여 관리사무소와 상인연합회 합동으로 이를 세웠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때에는 안전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여서 사고가 자주 발생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주차장에서 팔봉산을 바라본다. 우리가 4시간 가까이 둘러본 산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