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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Aug 27. 2024

강원 영월의 태화산과 고씨동굴

한 번쯤 가보고 싶지만 기회가 되지 않은 산이 있다. 그러한 산들은 도시 주변도 아니고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기에 그렇다. 도시 주변의 산들은 우리들에게 익숙하기에 어디로 등산을 갈까? 고민을 하다가 오늘은 이산을 가보자고 하면 그 산으로 간다. 다른 도시 주변의 산들도 익숙하기에 그 산으로 간다고 보면 될 것이다. 도시 주변 산은 누구나 찾고 그곳을 간다. 하지만,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들은 이름이 알려진 산 그리고 해발이 높은 산들로 사람들이 찾아간다. 해발이 높은 산이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은 잘 찾아가지 않는다.


친구 4명이서 또 모였다. 이번에는 J와 내가 그렇게 한 번씩 어디로 갈까 하면 한 번씩 불러보는 산이다. 하지만, H가 그렇게 OK를 하지 않는 산이었다. H의 고향 가까이 있는 산이다. H는 고향 근처에 있는 산들을 대부분 가보아서 그런지 썩 내키지 않아 우리들의 산행지 후보에서 후순위인 산행후보지였던 산이다. 영월과 단양의 경계에 있는 태화산이다. 영월군에서는 이렇게 태화산에 대하여 "영월군 남면, 김삿갓면과 충북 단양군 영춘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이 1,027m이며, 남한강이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있으며 4억 년의 신비를 간직한 고씨동굴을 품에 안고 사계절 변화무쌍한 부드러운 능선길이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준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영월은 단종이 유배한 곳으로 청령포가 있고 그 이웃한 곳에 단종의 능인 장릉이 있다. 또한, 영월에는 석회암 동굴인 고씨동굴이 있다. 영월 하면 우리가 생각나는 것이 또 있다. "라디오스타"라는 영화가 그곳을 배경으로 촬영되고 그곳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곳이다.


4명이 집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월이라는 곳도 자동차로 3시간 정도를 달려야 가능한 곳이기에 이른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 서울인근의 위성도시에 살면서 다시 서울로 모여서 이동하기 위하여는 대중교통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집합장소를 정하고 그곳으로 자동차로 빨리 이동하는 것이 최선이다. 새벽 5시 30분에 에 이동하면 교통체증도 없고 멀리 갈 수 있기에 우리는 그렇게 이동을 한다. 6시 10분에 암사역에서 새벽을 가르고 온 J를 탑승시키면서 우리는 산행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바로 올라서면서 속도를 낸다. 폭염을 뒤로하고 시원한 산행이 되기를 바라면서 자동차는 달리고 폭염의 영향인지 안개가 가득하다. 그리고, 치악산을 지나면서 한차례 휴식을 취한다. 치악산 전체도 안갯속에 갇혀 있다.


산행경로를 두고 친구들과 다양한 얘기를 하였다. 영월군에서 안내하고 있는 산행지도를 가지고 다양한 해석을 한 것이다. 그런데 산행지도에 애매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나와 J는 찾지 못하였고 그곳이 고향인 H는 알고 있었다.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등산안내도를 해석하면서 우리가 생각하였던 부분을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영월군에서만 생각하는 편협함을 가졌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단양군과 영월군의 경계에 있는 산이라는 생각을 못하였다.


고씨동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산행을 하면서 주차장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택시가 보이지 않아서 이곳에서 올라가고 하산하는 지점에서 택시를 부르려고 하였는데, 택시승객을 찾아 택시가 이곳에 왔다. 기다리고 있으면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찾으면 찾아진다고 한다. 택시들이 손님을 찾아다니지 않고 부르라고 한다. 그 부르는 값을 또 내야 하는 것이 요즈음의 현실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이 스마트폰인데 나이 든 세대는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세대의 택시기사가 모는 택시를 타고 흥교리로 이동하였다. 영월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은퇴를 한 후 택시기사를 한다고 하였다. 흥교라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흥교는 신라말기 궁예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궁예가 신분을 숨기고 살다가 10살이 될 무렵 세달사로 출가했다고 하는데,  즉, 궁예가 출가한 사찰이 이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흥교사터에서 금동불살이 발견되고 흥교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왓장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경주에서 멀리 소백산맥을 넘어서 영월이라는 곳의 사찰근처에 숨어살다가 그 근처의 사찰로 출가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누구도 찾지 못할 곳에 숨어 살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빠른 사람 여럿이 와서 벌써 주차를 하고 산으로 간 흔적이 있다. 안내산악회도 이곳으로 온다고 하는데 굽이굽이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오는 버스기사님들의 운전실력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야생화도 있고 농원도 있다. 오랜만에 보는 나팔꽃이 우리를 반겨준다. 해발 550m에 있는 주차장을 뒤로하고 고씨굴 주차장까지 걸어서 가는 것이다. 해발 550m에서 출발하였으니 정상은 1027m이다. 600m 정도만 오르면 되기에 여유가 있다. 하지만, 산은 100m를 올라도 힘들고 1000m를 올라도 힘겹다. 그리고 그 산을 존중하여야 한다. 태화산을 가장 빠른 시간에 오르는 코스로 알려져서 그런지 등산로는 반들반들하다. 이곳의 등산로 안내지도는 지자체와 관련이 없는 국유림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하여 등산로 전체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천천히 즐기면서 오르고 산을 넘어서 고씨동굴까지 갈 것이지만, 태화산 정상만을 바라고 오는 사람들은 걸음이 바쁘다. 생수병 하나 들고 오르는 사람도 있고 배낭을 간단히 메고 오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산을 두려워해야 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해발 1000m 이상 되는 산을 그냥 오르는 것은 산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산을 존중하면서 산을 올랐다. 그리고 그 산에서 즐거움을 맛보았다. 산이 있기에 우리는 가는 것이다. 등산로가 편안하기에 그렇게 산을 오른다고 보면 될 것이다. 1시간 남짓 걸으면 정상까지 도착하기 10분 전에 갈림길을 만났다.  단양 쪽 북벽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이다. 영월군에서는 등산로가 폐쇄되었다고 안내하고 있다. 단양군에서는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10분이면 정상이라고 하는데 정상은 높아 보인다. 하지만, 정상에 도착하니 갈림길에서 10분 만에 도착하였다. 산을 찾으면서 힘들다고 하지만 두런두런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서 산을 오르는 것이 즐겁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바쁘게 살면서 그산을 그냥 기다리지 않고 빠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우리들은 기다렸다. 그곳에서 단양군도 정상석을 세워놓았고, 영월군도 정상석을 세워놓았다. 누가 먼저일까 찾아보니 단양군이다. 한 번쯤 양보하는 미덕도 필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정상석이라고 한다. 이곳의 높이는 정확하다고 H가 이야기한다. 삼각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쁘게 이산을 왔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천천히 고씨동굴로 방향을 잡고 하산길로 들어선다.

하산길 등산로는 능선길로 천천히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길이다. 조금씩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는 능선길이며 봉우리도 있다. 그 봉우리에 갑자기 논쟁을 위한 표식이 붙어있다. 1030m, 1020m가 동시에 붙어 있는 것이다. 공식적인 표식은 아닐지라도 1030m라면 이곳이 정상보다도 높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로를 쳐다보고 GPS가 결론을 내어주기를 바라면서 걸었다. 중간중간에 탈출을 할 수 있는 지점이 나타난다. 큰골, 팔괴리 등이다. 오늘은 아직 산아래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태화산은 전망이 거의 없는 산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팔괴리라는 이정표를 만나고, 태화산성을 지나면서부터는 산이 이제는 흙산에서 돌산으로 바뀌는 기분이다. 중간중간에 바위들이 진을 치고서 비켜주지 않는다. 바위들이 진을 치고 있으면 우회를 하여야 한다. 우리는 H를 우회라고 호를 붙여준다. 산을 그렇게 즐기면서도 우회하는 구간이 나타나면 그렇게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힘들게 고난의 길을 넘지 않고 정상을 갈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라고 할 것이다.   

태화산성을 영월군에서 소개하기로 "삼국 시대에 축조되어 고려 시대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나 근거가 없다. 관련 기록이 없고 고고학적 조사도 명확하게 시행된 바 없어 성격이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산성의 입지, 성벽 높이, 석축 형태, 성벽 수직홈 등을 고려하면 고려 시대 몽골 침입기 이후에 축성된 산성이라고 추정된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나는 이곳이 삼국시대 때 이웃한 온달산성과 같이 남한강의 길목을 지키는 산성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본다.  J가 이곳 태화산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아들이 쌓은 성보다 딸이 쌓은 성이 먼저 축조되어 그 어미가 허물었다고 하면서 남존여비의 사상이 그대로 전설이 되어있다고 하였다.

고씨동굴까지 능선을 따라가다가 능선길이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가파른 하산길을 만난다. 해발 900m 인근에서 놀다가 하산을 급격하게 하는 것이다. 갈지자로 된 하산길을 만나면서 해발은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산을 하다가 능선길에서 외씨버선길을 만났다. 외씨 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모여 만든 길이다. 우리가 만난 지점은 13번째 길로 관풍헌 가는 길이었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것 자체가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지점에서 탈출하고 연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 길에 대하여 4백 년 시간을 두고 김삿갓과 단종을 만난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 200년 후에 우리는 단종과 김삿갓을 만났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 마지막 하산지점이다. 능선에 전망대라는 안내가 있지만 오늘은 안개로 인하여 그렇게 잘 볼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고씨동굴로 건너오는 다리도 보이고 남한강도 잘 보인다. 그 길을 건너서 고씨동굴을 관람하러 오는 인파도 보인다. 강에서 쉬엄쉬엄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보인다. 마지막 지점은 데크로 되어 있다. 이제 계곡을 따라 급격하게 고씨동굴입구에 접근을 하는 것이다. 해발 1000m 지점에서 해발 200m 지점까지 내려온 것이다. 30분 정도를 급격하게 하산을 하고 나머지는 즐기면서 걸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제는 관광모드다. 이곳까지 왔는데 고씨동굴을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어서 찾아보기도 하는 석회암 동굴인 것이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관람을 하려고 하였으나 입장권은 다리건너에서 만 발매를 하고 있었다. 100m가 넘는 다리를 건너서 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도 배낭을 자동차에 두고 올 수 있기에 그것을 감내해 본다. 영월군에서 한 번쯤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매표소를 이곳으로 옮기면 되는데,... 그리고 삼척의 환선굴도 굴입구에서 매표를 하고 있다. 저멀리 온달산성이 보인다. 그곳은 오늘은 회피다.

고씨굴은 약 4억 8000만 년 전인 하부고생대 오르도비스기(Ordovician)에 퇴적된 석회암이 분포한 지역에 위치한 석회동굴이다. 굴의 길이는 주굴(主窟) 약 950m, 지굴(支窟)은 약 2,438m, 총연장 약 3,388m인데, 이 중 620m 구간만 공개되고 있다. 고씨굴이라고 명명된 것은 임진왜란 시설 영월군 진별리에 살던 고종원(高宗遠)·고종길(高宗吉) 형제 등이 이곳에서 피신하였다고 해서 고씨굴 또는 피난굴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974년 5월 관광동굴로 개발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고 한다. 전체의 1/4만 보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굴 내부에 4개의 호수, 3개의 폭포, 10개의 광장이 있으며, 종유석(鐘乳石)·석순(石筍)·석주(石柱)·커튼(curtain)·곡석(曲石)·동굴진주·피솔라이트(pisolite)·동굴방패·월유[moon milk] 등 다양한 동굴 생성물이 분포하고 있다.


폭염을 피하여, 우리는 등산으로 인하여 몸속의 열기가 가득한 상태에서 동굴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동굴 속의 온도는 18도에서 20도 사이다. 밖은 30도가 넘는 폭염이니 동굴 속으로 더위를 피하여 들어간 것이다. 동굴입구에서부터 차가운 공기가 우리의 폐부를 적신다. 사실 궁금한 것이 있었다. 임진왜란 시절 고씨 일가가 이곳에 머물렀다면 그곳을 보여주는 자리도 만들었으면 한다. 그러면 그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될 것인데 그것은 없었다. 초입에 있는 다양한 석순, 종유석 등은 없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있는 석순, 종유석 등은 그 역사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곳곳에 탄성을 자아낼 만한 석순도 있고 종유석도 있다. 다양한 모양의 석순이 자라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왕복 600m를 걷고 나면 1시간이 시나브로 지나간다. 일반인들이 편안하게 석회암 동굴을 볼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고 일반인들의 다양한 활동으로 인하여 석순은 색깔을 달리하는 곳도 있다. 동굴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바람이 불고 있다. 동굴 안쪽 깊숙한 곳에서 하늘로 아니면 외부에서 공기가 들어오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공기의 순환작용에 의하여 이렇게 많은 바람이 불어 나올 수는 없다고 J는 이야기한다.  나도 궁금하여서 그렇다고 응답을 하고 찾아보았다. 누군가가 이렇게 질문을 하였다. 갱도에서 바람이 밖으로 부는 이유는 무엇이냐? 고 하니 갱도 안에서 바람이 나오는 경우는 지표면에서부터 대기 상층까지 이어지는 공기의 흐름이 갱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이는 갱도 안에서의 대기 온도와 압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갱도 안에서는 지표면과는 다른 온도와 압력 조건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지점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나온다. 사실 석회암동굴에서 사진을 남길 때 플래시를 사용하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동굴보호를 위하여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나는 야간모드를 이용하여 다양한 모양의 석회암동굴의 생성물을 담았다.


고씨동굴 주차장에서 이제 서울로 이동하기 전 출출한 배를 채웠다. 이곳에 있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이 허용하지 않는다. 칡냉면 한 그릇과 막걸리 한잔으로 이곳의 맛을 가슴에 담고 서울로 향할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자동차를 가지고 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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