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의 도락산을 다녀오다

by 김기만

1달 만에 산행이다

그동안 일정이 다양해서 산행을 못했다. 방태산을 등산한 후 여름휴가 태풍 등에 따라 산행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 태풍이 올 시점에 금수산 산행 계획을 확정했는데 태풍이 진로를 변경하여 산행 계획을 포기한 바 있다. 여름 산행은 겨울산행보다 어렵다. 기본적으로 무더위와 전쟁이다. 겨울산행은 눈과 추위와 전쟁이지만 장비로 해결할 수 있다. 여름 중에 가장 무더운 8월 초 산행이다. 해발이 900m를 넘는 만큼 여름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가 서울에서 단양을 가는 만큼 10시쯤에 시작하기 때문에 여름 산행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도락산은 예전에 몇 번 시도를 하였지만 시간과 일정이 허락하지 않아 초행 등산이 되었다.

도락산에 대한 정보는 이웃동네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도 없다. 다만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단양 8경에 익숙할 뿐이다. 사인암도 있다.


한국의 산하에서 도락산을 찾아보았다. 도락산(965.3m)은 소백산과 월악산의 중간쯤에 형성된 바위산으로 현재 일부가 월악산 국립공원 범위 내에 포함되어 있고 산을 끼고 북으로는 사인암이 서로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이른바 단양팔경의 4 경이 인접해 있으므로 주변 경관이 더욱 아름답다고 설명되어 있다.

능선에는 신선봉·채운봉·검봉·형봉 등의 암봉이 성벽처럼 둘러 있고 이웃에 황정산이 있다. 도락산이라는 명칭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깨달음을 얻는 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필수적으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산 이름을 지었다는 우암의 일화가 전해진다.

한여름의 열기가 간밤의 비로 식은 새벽 산행 버스를 타기 위하여 이동을 한다.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산악회가 양재역 사당역이 출발인데 이번 산행 버스를 운행하는 산악회는 신사역이 출발지점이다.

신사역을 나온 산행객들이 새벽 산행 버스를 채운다.

산행 버스는 신사역을 출발하여 죽전 버스정류장에서 빈자리를 없앤다.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평택제천 고속도로를 거친 버스는 천등산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다. 천등산인지 천둥산이지 궁금해하며 박달재가 어디인지를 지도를 통해 확인한다.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어 천등산이라 불렀고, 이 산이 있어 산척면이라 하며 조선시대 세조 때 황규라는 지관이 명명했다는 전설이 있고 인근의 지등산(地登山), 인등산(人登山)과 함께 천지인 삼재를 이루며 “천등사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되는 노래 가사로 유명하지만 실제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이라고 한다.

휴게소는 여름휴가철을 수용하기에 어려웠다. 화장실은 줄을 길게 서있고 주차장은 가득하였다. 등산버스는 중앙고속도로를 접어들었다. 단양 ic를 빠져나온 버스는 대강면을 경유하여 사인암으로 접어들었다. 대강면은 술 양조장이 유명하다. 대강 막걸리가 전국전으로 유명하다. 대강면을 지나는데 달자구나 할매상가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옛날에 들은 기억이 있다.

충청북도 단양과 경상북도 풍기를 잇는 소백산 죽령에는 죽령 산신이라 하여 다자구 할머니를 마을의 수호신이자 산신령으로 모시고 있다. 먼 옛날, 죽령에서는 대낮에도 산적이 들끓어 지나가는 행인들을 괴롭혔는데, 고을 원님도 어쩌지 못해 근심이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초라한 할머니가 원님을 찾아와 도둑잡기를 청했다. 고을 원님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반신반의하며 작전을 짜고, 할머니를 죽령으로 보내는데, 골짜기에 도착한 할머니 갑자기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다자구야!, 들자구야!” 대나무 울창한 죽령 골짜기를 울리는 소리에 산적 두목이 이상히 여겨 할머니를 잡아다 물어보니, “다자구야는 내 큰아들이고, 들자구야는 작은 아들인데, 오 년 전 집을 나간 아들놈들이 아, 글쎄 이곳 소백산 죽령에서 도적질을 한다지 뭐요. 내 그 소문을 듣고 지금 아들놈들을 찾고 있었소.” 이 말을 들은 산적 두목은 할머니를 불쌍히 여겨 빨래도 하고 밥도 짓게 하면서 산적들과 함께 살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적 두목의 생일이라 큰 잔치가 벌어졌다. 소와 돼지도 잡고 술을 마시며 흥청망청 한바탕 신나게 노는데, 산적들 아침부터 술을 마신지라 오후가 되니 모두 곤드레만드레 취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때다 싶은 할머니는 고갯마루로 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들자구야, 어디 있는 게야 어미가 왔다!” 할머니의 쩌렁쩌렁한 소리에 잠에 서 깬 산적들은 “에이 시끄럽다~웬 들자구야 할망구야 술이나 더 주소!” 또다시 주거니 받거니 고주망태가 된 산적들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잠이 들자 할머니는 ‘옳지 이때다!’하고 큰 바위에 올라가 또다시 외쳤다. “다자구야 다자구야! 빨리 오너라. 어미가 왔다!” 이때 어디선가 소리를 듣고 있던 관군들이 일제히 몰려와 산적소굴을 덮친다. 산적들, 그 취한 모습들이 가관인지라, 술에 취한 산적들은 힘도 못써보고 포승줄에 꽁꽁 묶여 관아로 보내졌다. 할머니는 유유히 사라졌는데, 그 후론 산적들이 이 죽령에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마을 사람들은 편안히 잘 살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제야 할머니가 죽령 산신임을 깨닫고 죽령 산신을 ‘다자구야 할머니’라 부르며 해마다 제사를 지냈는데, 다자구야 할머니 이야기는 죽령산신당이 있는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리 마을에서 구전되고 있다

사인암은 대강면 사인암리에 위치한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높이는 약 50m이며 기암 아래는 남조천이 흐르며 소(沼)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풍치를 더해주는 곳이다. 사인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고려 때 유학자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의 행적 때문에 지어졌고 고려 시대 우탁이 임금을 보필하는 직책인 정 4품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에 있을 당시 이곳에 머물렀다는 사연이 있어 조선 성종 때 단양 군수가 우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사인암이라 지었다고 전해진다고 설명되어 있다.

등산버스는 상선암 주차장 입구에 우리를 등산객으로 만든다. 주차장 입구에서 요금을 징수하는 분이 버스를 입구에 세우고 등산객을 하차시킨 것에 대하여 기사 아저씨를 짠돌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로는 주차장에서 검봉 제운봉 삼거리 신선봉 도락산으로 이동한 후 다시 회군하여 신선봉 삼거리 형봉 제봉을 거친 후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경로이다. 상선암은 하천에 있는 만큼 이를 뒤로 하고 등산을 시작한다. 오른쪽이 더 힘들다는 산행대장의 이야기다.

도락산 상선암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 10시가 다되었다. 등에 땀은 비 오듯 하면서 햇빛이 강하다. 이산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산행시간은 5시간 30분이 주어졌는데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여름 산행인 만큼 6시간이 되어야 완주가 될 것으로 생각하였다. 결론은 6시간이 되었다. 산행 들머리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철계단을 오르고 가파른 오르막을 숨을 헐떡인다. 그래도 해발이 조금 오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이라는 동요가 저절로 생각이 난다.

여름 등산은 체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차례 숨을 들이키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맞은편을 보니 고원지대가 자태를 뽐을 낸다.

산을 오른데 같은 등산버스를 타고 온 산객이 하산을 한다. 왜냐고 물어보니 이분이 작은 가방을 놓고 왔다고 한다. 1km 이상 올라왔는데 회군했다가 다시 등산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이분의 모자가 보인다. 모자도 흘렸다. 이분은 오늘 산행을 하는 자체가 문제를 유발하리라 예측을 해본다. 이분의 작은 가방을 누군가가 가지고 이미 올라 갔다고 한다. 이분은 하산 후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능선에 올라선다.

하산 능선이 자태를 보인다. 하산은 저능선으로 한다. 원점회귀 등산은 하산길이 보인다. 해발이 600m를 넘어선다. 여름 산 특성이 보인다. 너무 덮다. 바위에 소나무가 힘겹게 자라고 있다.

친구가 힘겹게 계단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 국립공원이라서 데크가 잘 마련되어 있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고사목이 나타난다. 고사목을 작품으로 담는다.
검봉을 지나서 제운봉으로 이동을 한다. 해발이 급격하게 높아진다. 봉오리와 봉오리를 이동하면서 안부까지 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출렁다리라도 놓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런데 있다.

안부에 계란 버섯이 우리를 유혹한다. 삼거리를 가기 전 마지막 안부다. 여기에서 형봉을 담아둔다.

신선봉을 쳐다본다. 신성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최고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햇빛에 이를 쳐다볼 것인지 고민이 된다.

삼거리에 도착하니 에어컨 바람은 필요치 않다. 산행객들이 도착하면서 감탄을 한다. 환성을 지른다. 그만큼 더위에 지쳤다고 보면 된다.

숲과 안부가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낸 냉풍이다. 도락산이다. 삼거리에서 600m를 이동하여 정상에 도착하였다.
여름 산을 3시간 등반하여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약속시간까지 2시간 30분 남았다. 하산하면서 허기도 면해야 하고 냇가에 가서 등산의 피로도 해소해야 한다.

정상 벤치에 먼저와 있는 산객들이 여름 산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어떤 분은 4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여름 산은 여름 산이다.

이제 하산이다. 삼거리에서 도락산 정상까지 30분이 소요되었는데 하산은 10분이다. 허기를 보충하면서 형봉을 담았다.

형봉 제봉을 거쳐서 하산한다. 바람을 안고 하산을 하면서 가파름을 맛보았다. 등산을 하면서 기온의 차이를 해발에 따라 느낀다. 오늘도 주차장 가까이 접근하면서 시원한 바람보다는 더운 열기를 느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려주지만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마지막 남은 생수를 친구랑 나누어 마시고 한걸음에 하산한다. 하산하면서 남들은 시원한 맥주 막걸리가 생각난다고 하지만 우리는 식혜가 생각날 뿐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아직 40분 정도 여유를 가졌다. 버스는 주차료를 아끼기 위하여 중선암 쪽에 주차하고 있어서 600m를 추가 이동하여야 한다. 더위에 이동을 하여야 하는 만큼 모두들 투덜거린다.

상선암을 친구는 담는다.

다리 아래에서는 어른들이 휴식을 취하고 어린 친구들은 물놀이를 한다. 어릴 적 우리들도 그렇게 놀았다. 햇빛이 쨍쨍한 여름날 냇가에서 멱을 감고 따뜻한 돌 위에 적은 몸을 말리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잔 기억이 새롭다. 하천에 물놀이하는 어린 친구들이 부러울 뿐이다.


버스에 도착하니 30분의 여유가 있다. 하천에 띄어 들어서 등산의 피로와 찌든 옷을 갈아입었다. 더위와 햇빛의 강도가 말이 아니다. 하천에서 머리를 감았는데 5분도 되지 않아 건조되었다. 하천에 발을 담그고도 그렇게 시원함을 느끼지 못한다. 하천 옆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들이 시원함을 느낄 것인지 궁금하다. 본인은 시원하다고 느끼겠지만 이웃한 사람들은 그 한여름에 물가에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20분의 물속 여행은 등산의 피로와 땀에 적은 옷을 가방과 물로 보내버렸다.

약속시간이 되어 버스를 탔다. 에어컨의 시원함을 만끽하면서 모두가 탑승하기를 기다렸다. 아침에 예상한 것 같이 지연되고 있다. 30분이 지연되니 버스기사 아저씨가 뿔이 났다. 공회전을 30분 이상하니 기름값이 많이 나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갑자기 버스 시동을 꺼버렸다

모두가 웅성거리는 와중에 가장 늦은 사람들이 도착했다. 버스는 출발하였다.

이것이 플라톤의 동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무지와 편견이라는 족쇄에 묶여 깊은 동굴에 갇혀 있기 때문에 남들도 생각하지 못하고 나만을 생각한다.

약속시간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고 약속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을 진행하는 사람도 이러한 부분을 감안하여 진행하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였다. 계절의 특성을 감안하여 시간을 설정하여야 한다. 겨울은 추위를 감안하여야 하고 여름은 더위를 감안하여야 한다.

도락산 산행을 마치면서 바로 이웃한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이제는 끝을 내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가졌다. 여름 산행은 새벽에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계곡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