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보여행 강화나들길 12일

진강산에서 마치다

by 김기만

강화나들길은 볼음도를 갔다 오며 종료하였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다. 나들길을 다니면서 우리들에게 보이는 산 진강산을 가지 않고는 종료될 것 같이 않아 마지막으로 진강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볼음도에서 외포리로 나온

시간이 15시다. 그래서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어 진강산을 가기로 하였다. 외포리로 들어오면서 보는 진강산이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다.

외포리에서 진강산까지는 외포리에 주차하여 두었던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동하고 진강산을 주변을 걸으면서 어디로 나오면 차를 회수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걸어본 사람들의 경험이 이만큼 중요하다.


진강산을 오르기 위하여 해안도로를 달려서 차를 세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진강산 등산로 입구인 버스정류장 근처에 자동차를 세우고 진강산 등산로에 들어섰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오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추측을 하고 오르기 시작한다. 섬에서 400m가 넘는 산은 꽤 높다. 해발이 0m 근처에서 시작하는 만큼 해발 443m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섬 산행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진강산은 강화에서 3번째로 높은 산(마니산 469m, 혈구산 466m, 진강산 443m)이다. 조선시대 진강현의 진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 정상부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강도지와 대동여지도에 진강산이 표기되어 있을 정도이다. 고려시대에는 마니산이 별도의 섬에 있었기에 진강산 능선에 고려 왕족 및 귀족의 묘를 조성하였을 정도다.


진강산은 펜션단지 쪽이나 가릉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등산로가 기본 등산로로 가장 길면서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펜션단지 쪽에서 진입을 하였다. 가파르지만 데크 등이 조성되어 있어 어려움은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1시간 남짓 걸린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도 힘이 들면 힘이 드는 구간이라고 보면 될 이다. 반대편은 그래도 쉽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를 때는 힘들게 내려올 때는 편안하게 내려오는 것이 무릎을 보호하는데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실천한다.


진강산에 올라 이곳저곳을 쳐다본다. 우리가 걸었던 다양한 길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강화의 이모저모를 보는 것이다. 서쪽으로 석모와 교동도를 보고 남쪽으로 마니산과 그 능선을 본다.


화남 고재형은 진강산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였다.


鎭江山色碧如屛 진강산 산색은 푸른 병풍을 친 듯 하고,
片片歸雲錦繡形 흐르는 조각구름 비단에 수놓은 듯하다.
首智遺墟何處是 수지현 옛터는 어디쯤에 있을까,
造翁筆下影丹靑 조물주의 붓끝 아래 단청이 그려졌네.


이제 산을 내려오니 가톨릭대학교 뒤편이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이며 이 길을 따라서 가면 가릉이 나온다. 3코스를 지날 때 그 추위가 생각이 나지만 그래도 가능이 있고 정경두 선생 묘가 있는 곳으로 나가면 우리들 일정이 끝나기 때문에 이 길을 이용하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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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화남 고재형이 가릉에 대하여 언급한 글을 적어 본다.


一片鎭江碧幾層 진강산 한쪽 편에 겹겹의 푸른 기운 감돌고,
白雲多處是嘉陵 흰 구름 많은 곳에 가릉이 있다네.
年年杜宇東風淚 해마다 두견새는 동풍에 눈물짓고,
每向開花百感增 개경을 향할 때마다 만감이 더한다네.


정경두 묘를 지나 자동차를 세운 곳에 오니 해가 지고 있다. 아름다운 일몰이다. 이러한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하였는데 종료하는 시점에 이것을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


강화나들길을 12일 동안 걸은 기록을 남기면서 소회를 적는다.


강화나들길을 알기 전에는 강화도에 가면 마니산, 혈구산, 고려산 정도만 알았다. 마니산을 가서 참성단을 보고 고려산에서 진달래를 본 것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 하면 고려가 대몽항쟁을 위하여 천도를 하였던 역사적 기록은 학교를 다닐 때 배웠고, 조선말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강화도에서 조선군이 미군과 프랑스군과 싸운 역사는 광성보 등을 관광지로 가서 본 기억에 있다.

하지만, 강화도가 왜 그렇게 천혜의 요새였는지 알지 못하였는데 이번 강화나들길을 걸으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강화도는 야외 박물관이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지만 만약, 강화도가 간척을 하지 않고 조선말까지 유지되었다면 강화도 주민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신미양요나 병인양요 때 미군이나 프랑스군이 상륙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천혜의 요새가 이곳에 있었는데 우리가 먹고살기 힘들어서 갯벌을 땅으로 만들어서 적의 침입에 무방비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제 교동도, 석모도 등은 섬이 아닌 육지가 된 것 같다. 그만큼 가까워진 것인 만큼 그 섬의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강화나들길을 걸으면서 강화도가 갖고 있는 다양한 문화자산을 보았고 섬들을 다니면서 섬에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존된 문화자산을 그대로 후손들에게 전달할 필요성도 있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