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신문에 우리은행의 베트남 진출 기사가 실렸다. 현지 직원 채용을 늘리고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에는 크게 공감이 갔다.
더욱 눈길을 끈 건 현지 법인장의 ‘ESG 경영’, 그중에서도 사회공헌 대목을 강조한 부분이었다. 베트남 현지 산림보존 지원을 주요 방안 중 하나로 꼽은 것.
이는 현지 사회에 중요한 이슈를 뽑아 후원하는 대표적인 사회공헌 마케팅 기법이다. 사회공헌에 마케팅 효과가 있다는 건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 마케팅의 목표는 나를 알리고(인지도) 좋아하게(선호도) 만드는 2가지인데, 소비자를 위해 적극적인 ‘봉사’를 한다는데 싫어할 이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기사가 석연치 않았던 건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왜 은행이 '산림보호'를 옹호 항목으로 꼽았을까. 은행업의 본질과 산림보존이라는 대의명분(사회공헌에서는 ‘cause’라고 한다)에 통하는 대목이라도 있었나.
물론 기사에는 최근 베트남 정부가 선언한 '2030년까지 GDP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4년 대비 최소 15% 이상 절감,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0%로 만드는 넷제로' 정책에 대한 설명도 함께 있었다. 해석하면, 베트남 정부의 적극적인 환경보호 정책에 은행으로서 사회공헌을 통해 접근한다는 거시적인 목표도 보이기는 하다.
그래도 은행과 산림보호는 딱히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드릭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내친 김에 국내 은행의 사회공헌 자료도 함께 잦아보았다. 우리은행을 비롯한 5대 지주 모두 활발한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착한 은행이 돈 번다? 은행권 사회공헌 마케팅의 설계와 실행방법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국내은행, 연간 1조원 대 사회공헌
지난해 우리나라 은행들은 총 1조 1,305억 원이란 대규모 금액을 사회공헌에 할애했다. 이중 5대 은행의 비중은 69.1%다. (자료 = 금융위원회)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국내 은행의 사회공헌 금액은 총 1억 1,305억 원. 매년 순이익의 대략 6% 정도를 사용하며, 농협(1,685억 원), 국민은행(1,630억 원), 우리은행(1,605억 원), 하나은행(1,493억 원), 신한은행(1,399억 원) 등 5대 은행이 무려 69.1%인 7,812억 원을 차지한다.
분야별로는 서민금융 지원이 4,677억 원으로 1위, 지역사회/공익이 4,508억 원, 학술 교육 1,010억 원, 메세나/체육 933억 원 등이며, 환경 95억 원, 글로벌 83억 원 등이다.
이중 은행업의 본질과 관련 있는 것은? 단연 서민금융 지원과 교육 등이 해당된다고 보겠다. 은행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크게 보아 저축과 대출, 투자다. 기업과 개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또 저축을 유치해 그로 인한 예대마진을 노리는 것이 상업은행. 여기서 나아가 주식과 채권, 기업 인수 등을 추진해 투자마진을 노리는 것이 투자은행이다.
환경과 메세나 등 일부 항목은 ‘은행업의 본질’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인다. 다만 환경은 은행업의 본질을 ‘현재 가치의 유지 또는 미래가치의 담보’, 혹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정의할 때 그나마 관련 고리가 보이기도 한다. 그럼 메세나는? 이 또한 직접적인 관련보다는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의 삶 속에 내 서비스나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인지도 제고나 고객을 모아 일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마케팅 도구’로 정의할 때 의미가 있다 하겠다.
‘베트남 산림보호’란 대의명분에 고개를 갸우뚱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기업에서 하는 모든 활동은 ‘이윤추구’란 단 하나의 목적에 연계된다. 마케팅 또한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 브랜드나 상품을 알리고 좋아하게 만드는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따라서, 기업의 마케팅 활동이라면 단연코 모든 설계와 실행이 내 브랜드나 상품을 최대한 노출시키고 체험시키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물론, 산림보호 또한 충분히 이런 마케팅적 가치를 반영해 설계할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단지’ 산림만 보호한다면 이는 기업 활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주 잘 만든 브랜드 필름이라 해도 정작 그 안에서 브랜드를 다루지 않는다면 잘된 마케팅이라 말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공헌 또한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마케팅 도구
사회공헌 또한 당연히 하나의 기업 마케팅 도구다. 독특한 점은 그 대상에 소비자 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미국 프로농구 NBA나 많은 스포츠 구단에서 하고 있는 ‘지역 스포츠 교실’, ‘장애인 스포츠 후원’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베트남 산림보호 활동을 통해 이 은행이 얻게 되는 건 뭘까. 물론 기본 보장되는 마케팅 효과는 있을 것이다. ‘산림보호’ 활동을 통한 각종 현지 언론 보도와 NGO 협업 등을 통한 직간접적인 인지도와 선호도 제고 효과다.
그보다 더 중점을 둬야 할 게 있다. 바로 이 은행 ‘브랜드’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과 그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체험이다. 사회공헌은 말하자면 소비자와 연계시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소비자를 해당 지역사회에서 공감이 갈만한 대의명분으로 끌어들인 뒤 이들이 기꺼이 공감할 프로젝트나 활동을 내 브랜드나 서비스를 써서 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내 브랜드를 체험하고, 나아가 자신의 삶 속에 브랜드를 연계시키거나 통합시키는 매우 중요한 마케팅 효과를 선사한다.
앞서 나온 ‘산림 보호’에 이를 반영해 보자. 앞서 말했듯이 은행과 산림보호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걸 은행의 고유 서비스에 연계시켜 전개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보자.
예를 들어 해당은행 각 지점에서 취급하는 각종 ‘저축’이나 ‘투자’ 상품에 산림보호를 연계시키는 것이다. 이 활동을 하기 위해선 은행을 방문하거나 전용 앱, 혹은 홈페이지를 방문해야 한다면, 소비자는 자연스레 은행 브랜드 노출은 물론, 사회공헌용으로 편집된 해당 은행의 서비스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즉, 잠재 고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나아가, 기꺼이 시간을 내 이 은행의 사회공헌 활동까지 동참하게 된다면, 그의 삶 또한 은행의 브랜드 활동으로 ‘연계’된다. 단순한 은행의 한 ‘고객’을 넘어 적극적인 동참과 후원의사를 지닌 ‘팬’으로까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공헌 마케팅이 효과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브랜드를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경험하고 나아가 옹호하는 집단으로까지 성장하는 것이다.
아직 해당 은행의 세부 활동 정보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방향성을 갖고 추진한다면 훨씬 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브랜드 연계가 우수한 사회공헌 캠페인 사례
유한킴벌리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은 지난 1984년 시작해 무려 30년간 지속된 장기 사회공헌 플랫폼이다. (자료 = 유한킴벌리 홈페이지)
이처럼 브랜드 가치와 사회공헌 활동을 잘 연계시킨 성공 캠페인은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유한킴벌리는 크리넥스, 하기스 등 화장지, 미용티슈, 물티슈 등 나무를 활용한 제품을 많이 출시한다. 그에 대한 사회공헌 프로젝트로서, ‘산림 보호’를 들고 나선 것이다.
캠페인이 시작한 건 무려 30년 전인 지난 1984년. 국내 산림 조성사업으로 시작해, 지난 2003년부터는 몽골숲, 도시/ 동네숲 조성까지 확장해 나갔다. 2015년 이후에는 공존의 숲 조성까지 나아갔다. 그간 5,000만 그루 식재란 목표까지 이루고, ‘숲과 사람의 공존’이란 목표를 향해 더욱 발전돼 나가는 중이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 2012년, CJ제일제당은 보광훼미리마트와 손잡고 자사 해양심층수 브랜드 ‘미네워터’의 사화공헌 마케팅을 펼쳤다. 소비자가 미네워터 한 병을 살 때마다 100원을 추가로 결제하면, CJ와 훼미리마트가 똑같이 100원씩 기부해 아프리카에 물을 보내는 ‘매칭펀드’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CJ는 지난 2012년, <미네워터>를 구입할 때 100원을 추가 결제하면 CJ와 보광훼미리마트가 100원씩 더 기부해 아프리카에 물을 기부하는 매칭펀드 프로그램을 펼쳤다.
직접 아프리카에 단기 주재해 본 경험상 아프리카에 절실한 것 중 하나가 물이다. 흔히 아프리카 하면 식량과 빈곤만을 떠올리는 데, 숨은 고난이 바로 ‘물’. 부족하기도 하고, 있는 물도 정수가 안 돼 아이들이 오염된 물을 먹고 탈이 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미네워터 사회공헌 마케팅은 이런 점에서 탁월했다. 생수업체로서 업의 본질인 ‘물’이란 속성은 그대로 살리면서, 소비자를 동참시켜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에 함께 연대하게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소비자가 ‘미네워터를 사면서’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즉, 착한 브랜드나 제품을 직접 체험하면서 좋은 일도 한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브랜드 체험과 옹호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 우수한 사회공헌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사상 최대 실적’ 은행권의 ‘사상 최고’ 사회공헌 기대
은행 산림보호 프로젝트 또한 충분히 위 사례들처럼 될 수 있다. 금융업의 본질은 ‘산업의 젖줄’. 필요한 곳에 자금을 융통해주고 그로 인한 미래 수익을 공유하는 ‘투자’가 본질이다.
이에 착안하면, 예를 들어 산림보호를 목표로 한 모태펀드 조성도 고려해볼 만하다. 일정 기금을 은행에서 조성한 뒤, 현지 산림이나 자원 관련 업체와 연대해 투자해 직간접적인 사회공헌 효과와 투자효과를 동시에 누리는 것이다. 현지 대학 산림학과나 관련 기관들이 연계된 대규모 캠페인, 학술대회, 대학생 프로젝트도 전문가 집단과 미래 고객 내에서 사회공헌을 활용해 내 고객을 늘리는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사회공헌에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내가 공헌하기로 선택한 분야나 대의명분에 대한 장기간의 헌신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내 업이 관련돼 있어야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유한킴벌리 사례 또한 ‘제지’ 관련 사업을 하고 있기에 산림보호 프로젝트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업 사회공헌에서 반드시 브랜드나 서비스를 해당 프로젝트에 ‘녹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겠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고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수익’을 거둘 것이라 한다. 다들 힘들 때 나 혼자만 돈버는 인상을 줘서 좋을 건 없다. 그보다는 고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경기가 호전됐을 때 내 브랜드를 상위에 위치시키는 선제 마케팅이다.
‘사회공헌’은 그 방법론 중의 하나다. 또한 단순한 기부나 자선 대신, 내 브랜드나 업의 속성을 녹여 사회공헌에서도 뚜렷한 마케팅 효과를 누리는 나만의 ‘사회공헌 마케팅’을 개발해 실행해야 한다.
착한 기업이 돈 번다. 그건 누구나 바라는 일이며, 은행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다행히 5대 금융지주는 하반기 전략으로 '선한 영향력'을 꼽았다고 한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은행권의 사상 최고의 사회공헌 마케팅을 곧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