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소심했다.
정확히는 초등학생 때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에게 물건을 뺏겼을 때도
속상한 마음을 일기장에만 적었고,
담임 선생님께서 그 내용을 공개적으로 읽으시며
그 친구에게 사과하라 했을 때 너무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한 번은, 가족 여행 중에 런닝맨 촬영장을 우연히 지나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멀리서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다 스태프의 ‘찍으시면 안 돼요.’ 한 마디에 흠칫 놀라며 부모님께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내 옆에서 들린 말도 아니고 한참 앞에서 들려온 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겁에 질려 한참 엄마 품에 있었다.
또 어느 날은, 머리를 옆으로 묶는 게 예뻐 보여서 살짝 옆으로 묶었다가 친구의 왜 머리를 옆으로 묶냐는 순수한 물음에 ‘아 잘못 묶었다.’라며 고쳐 묶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새로 산 치마가 예쁘다는 엄마의 권유에 학교에 입고 등교했다가, (1학년 학기 초반에는 아직 교복이 나오지 않아 사복을 입었다.)
등굣길 선배들의 수군거림에 반에 들어가 체육복을 빌려 갈아입고는 점심도 먹으러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다 웃픈(?) 일화들이다.
중학교 2학년에 들어서며 어느새 성격이 바뀌었고,
고등학생땐 전교 부회장이 될 정도로 활발하고 말이 많아졌다.
그 성격이 그대로 이어져 지금의 나도 드러내기 좋아하고 활발한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가끔은 나도 모르게 소심했던 자아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오늘 옷 가게에 들어갔다가 입어보고 싶은 옷이 많아 여러 벌을 들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한참 입어보고 나오는데 내 손에 들린 여러 벌의 옷이 조금 뻘쭘하기도 하고, 이걸 직원분들께 다 드리면 민폐일 것 같아 그냥 내가 다 제자리에 정리해 두고 나왔다.
그러면서도 직원분들이 흘낏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매장을 나와서도 얼굴이 조금 후끈했다. (전혀 흘낏 보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면 나도 모르게 소심한 자아가 튀어나와 주춤하게 만든다.
특히 요즘따라 내 소심한 자아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마지막 회사에서 겪은 업무적인 압박과 미래가 없어 보여 선택한 퇴사, 진로와 흥미에 대해 방황하며 보내는 지금 시간이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드는 기분이다.
이런 소심한 나를 스스로 돌봐야 할 텐데, 나는 나의 소심한 자아가 나오는 순간이 썩 내키지 않는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소심한 자아를 만드는 분위기가 문제야! 라며 환경 탓을 하고도 싶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소심함 없이 당당한 사람들을 보면 또 소심한 나의 자아를 탓하게 된다.
소심한 내 모습도 사랑할 수 있나.
이 세상 소심한 사람들은 험난한 사회를 어떻게 헤쳐 나가시나요.
소심함의 장점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 깊게 생각할 수 있다.
- 상대방의 기분까지 생각한다.
- 피해를 끼치는 일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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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맞대어서 우리 모든 사람들의 소심한 자아까지 사랑해 주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