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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까 Feb 25. 2021

Seoul Life

 올해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상경한 지 4년 차가 되었다. 그동안 나는 방학 때마다 거창한 것들을 하며 보냈다. 첫 번째 방학부터 미국에서 전공연수를 받았고, 그 뒤로도 친구들과 여행, 토플학원, 핀란드 교환학생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은 여섯 번째 방학이 반쯤 흐른 때이다. 나는 이제 지쳐서 이번 방학에는 본가에 내려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1월이 되자마자 창원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한 달 뒤 오늘, 다시 짐을 가지고 이문동 자취방으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혼자 산다는 건 밥도 혼자 먹고 잠도 알아서 자고 건강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엄마가 없는 곳에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밥부터 잠까지 모든 것을 돌봐주는 엄마 옆에 찰싹 달라붙어 단물을 빨아먹으려던 것이었는데 생활패턴이 일그러진 나와 바른 생활 엄마가 한집에서 사는 건 마냥 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학기 말 전력 질주로 헬쓱해진 볼따구가 이틀 만에 원상복구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는데 여름부터 시작된 불면증, 쏟아지는 발표와 과제, 시험으로 쌓인 피로 때문에 나는 하루종일 선잠만 잤다. 밤에는 깨어 있었지만 엄마가 잠을 자기 때문에 나도 불을 끄고 누워있어야 했다. 엄마가 아침에 억지로 깨우면 힘겹게 밥 한술을 뜨고 다시 기절하기 일쑤였다. 며칠간 지켜보던 엄마는 아무래도 내 몸에 이상이 있는 게 틀림없다며 내 손을 잡고 한의원에 데려갔다.


 한의원에서는 내 상반신 체열 사진을 보더니 명치를 기준으로 위는 푸른색을, 아래는 붉은색을 띄어야 건강한 거라며 내 몸은 위는 시뻘겋고 아래는 시퍼렇다고 했다. 화가 많다고도 했다. 날 눕혀두고 쇄골, 가슴뼈, 척추 여기저기를 찌르며 아프냐고 물어봐서 악악 소리를 지르다가 일어났다. 한의사 선생님이 내가 예민해 보이지는 않는데 정말 예민한 기질이라고 하자 엄마는 깊은 공감과 한껏 걱정 어린 눈빛으로 몇십만 원을 주고 프리미엄 한약을 지어줬다. 열흘 먹으래서 열 개쯤이겠거니 했는데 열흘간 삼시 세끼 +a, 총 서른다섯 봉의 한약을 먹으라고 했다. 엄마는 내가 서른다섯 봉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먹으면 칠만 원을 준다고 했다.  

  

 이런 불효자식이 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한약을 다 먹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므로 효도도 하고, 용돈도 받을 수 있는 제안이었다. 그럼 한 번에 서른 봉 다 먹어도 인정이냐고 묻고 등짝을 맞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엄마랑 나는 주로 집에서


(저녁 먹는 중)

엄-“내일 아침은 뭐 먹을래?”

나-“(징징대며)엄마, 나 삼시 세끼 다 먹는 거 너무 힘들어 밥도 반만 먹을래”    


(나는 방에 누워있고 엄마는 방문 앞에 서서)

엄-“니 방에만 들어오면 화가 난다! 제발 옷 좀 치워”

나-“(깐죽대며)엄마 나는 괜찮으니까 화내지 마. 내 방에 안 오면 되잖아 내가 엄마 방으로 갈게”   

 

(밤늦게 엄마 침대에 누워서)

엄-“이제 네 방에 가서 너도 자 나 내일 출근해야 돼”

나-“(최대한 뻔뻔하게) 좀만 누워있을게 나 이제 올라가면 이런 것도 못 해 엄마”    


 이런 패턴이었다. 창원에선 답이 없는 저 모든 행동들이 다 용서된다. 내가 서울에 올라가면 엄마도 허전하고 나도 어리광을 받아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득 찬 캐리어, 꼬마 기타에 책까지 들고 내려갔던 물건들을 다시 들고 혼자 낑낑대며 서울집에 도착하니 자취방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한기가 돌았다. 대충 치킨을 시켜먹고 옷은 의자에 걸어두고 새벽 세 시 반까지 깨어 있는데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들려야 할 엄마 목소리가 빈칸으로 허공을 도는 것 같아 치킨을 먹으며 냉동 밥 하나를 데워 먹었고 옷을 옷걸이에 걸어 얌전히 넣어 두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엄마가 없으면 살 수 있을까. 나의 서울 자취방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세입자를 빼고는 모두 잠든 것 같다. 침대에 누운 채 앞으로는 오랫동안 창원에 머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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