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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까 Feb 23. 2021

스물 위 어른 아래

 

 ㄷ 고등학교에 가서 유 선생님을 뵙고 왔다. 유 선생님은 세상 처음 스스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했던 열아홉 살, 실패가 마냥 두려운 날의 연속일 때 내가 많이 의지했던 선생님이다. 또 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만난 거의 모든 어른들을 따르고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짙은 기억과 함께 오랫동안 떠올리게 될 것 같은 어른이다. 진부한 핑계들로 못 뵌 지 오래되었지만 두어 달 전부터 자꾸 선생님 생각이 났다. 그동안 큰 변화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하고 싶은 소식이 많았다.    


 자주 내가 열아홉 살 때 얼마나 힘들었고 눈앞이 캄캄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치열하고 예민하고 걸핏하면 울었던 열아홉 내 모습이 지금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멀어졌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커다랗고 똑똑한 어른들은 세상엔 대학보다 중요한 게 아주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가장 중요했던 건 대학이었고 대학은 인생 첫 번째로 찾아온 기회이자 위기였다.


 열아홉 살의 나는 자주 아팠고 화가 났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서 끝낼 수 없는 공부를 꾸준히 해야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첫 단추인 대학에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날이 더워지고 추워질수록 수험생활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커졌고 나는 글쓰기, 그림그리기, 기타치기 등 수험생활이 아닌 다른 몇 가지 것들에 정신을 분산시키며 짧고 굵었던 1년을 버텨내었다.


 고대하던 대학생이 된 나는 조금 편해졌고, 조금 둔해졌고 이제 잘 울지도 않는데 열아홉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마주하고 나면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오랫동안 힘들어하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고 내일부터는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넉넉히 있어야 한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2년 전에 학과 사람들과 썼던 글 모음집 「서천동」을 드리면서 왠지 모를 수치스러움에 앞으로 선생님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왠지 모른다고 썼지만 사실 거기 있던 글들은 죄다 솔직하고 감정과잉인 글이어서다.

 「서천동」에는 갑자기 법적 어른이 된 나의 분노좌절혼란짜증후회같은 새까만 글들이 담겨있다. 수압을 못 견디고 퍽 터진 물풍선 같았다. 지금 읽으면 어떻게 그렇게 끈적끈적한 말만 골라서 붙여두었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그래도 글을 쓰며 많은 것을 해소할 수 있었다. 까만 것들을 해소하는 과정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담긴 책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어떤 책보다 소중하다.


 소중함과는 별개로 그 까만 책을 드릴지 말지 한참을 고민했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썼다고 생각해달라느니, 실화가 아니라 소설이니 참고해달라느니 사족을 길게 붙이고서도 차라리 땔감으로 사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을 만났을 때뿐만 아니라 언제든 종종 떠올리는 말이지만 ‘어른이 돼서 사실 그때 되게 부끄러웠다고 웃으며 말할 날이 오기 전에는 다시 뵈러 가지 않을 거다’ 이런 생각도 했다.


 나는 계속해서 자라는데 글은 자라지도 않고 그대로라는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래도 어른스럽고 싶어 애쓰던 어린 나를 잘 아는 사람에게 선물한 것이니 좀 부끄러울 뿐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후로 나는 일련의 사건들과 함께 많이 씩씩해졌다.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공부도 했고 15개국 30개 도시를 여행했고 영어로 화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친구에게 짜증을 내고 후회하는 일도 줄었다. 내가 아주 빨리 자라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자란다는 것은 나에게, 처음 겪는 일에 덜 놀라고, 잘 화내고, 슬픈 일에 덜 슬퍼하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건 계속해서 덜어내야 하는 건지, 그렇게 로봇처럼 한고비씩 넘으며 지내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긴장되고 설레는 감정으로 무슨 말을 할지 속으로 곱씹었다.   

 

 선생님은 내가 경외하는 사람이고 존경하는 이유와 두려워하는 이유는 같다. 선생님이 내 마음을 읽어버리는 것이 고맙지만 무서웠다. 오늘도 어떻게 아셨는지 좋을 때만 연락하지 말고 힘들 때도 연락하라는 말을 하셨다. 대한민국 고삼의 몸과 마음이 성치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지만 그때도 나는 씩씩하고 싶었다. 당연하게도 그러지 못해서 지금도 상태 좋고 건강하고 나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 때면 선생님 생각이 난다. 오늘 길을 걸으면서도 ‘그동안 잘 지냈다는 말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걸었다. 약속을 잡고 난 뒤로 나쁜 생각에 빠지지 않게 내 기분을 열심히 돌봤다.


 곱씹으며 걸었던 과정이 무색하게 두 시간 동안 이래서, 저래서 힘들거나 어렵더라는 얘기를 했다. 잘 지냈다는 얘기는 대충 하고 끝냈다. 이럴 거면 애초에 왜 ‘잘 지냈음’을 반드시 전하려고 했는지...    

 「서천동」을 드리고 다시 찾아가지 않겠다 무효한 다짐을 했던 날에는 내가 어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대와 함께 맞이했던 스무살은 술도 마시고 머리도 노랗게 염색한, 분명 어른이었지만 아무도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이였다. 나는 그제서야 학교라는 공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커다란 보호막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쉽게 용서받을 수 있었고 존경할 수 있는 어른들이 가꾼 높은 울타리 안에서 작은 친구들과 함께했던 공간.

 어른 아닌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그것들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갑자기 맞닥뜨린 ‘어른’에 적응을 하지 못한 채 영원히 감정이 넘치고 작은 일에 크게 화내는 아이로 머리만 자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오늘 집에 오는 길엔 다시 찾아가지 않겠다는 수치가 들지 않았다. 어른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고민 없이 사는 게 어른인 줄 알고 고민을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선생님은 내 고민이 남들 다 하는 그런 고민이 아니라는 부분에서 어른스럽다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번지르르한 어른이 되려고 애썼던 내 모습이 좀 하찮고 웃겼다. 대신 이제는 내가 왜 그렇게 괴로웠는지 해명해야 한다는 괴로움이 없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어른스러움과는 별개로 그녀를 만나는 것이 내가 그동안 좀 자랐는지 확인할 수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께 시덥잖은 이유로 안부를 여쭐 때마다 성가시진 않을까 걱정한다. 앞으로도 계속 걱정될 것 같아서 고민이라는 말과 함께 귀찮으셔도 절대 티 내시면 안 된다는 농담 따먹기나 하고 일어났다. 나는 아직 관심받고 싶어서 내가 어떻게든 좀 변했다고 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유 선생님은 그중 한 분이라 그 말은 따먹지 못할 농담 껍데기 정도 말이었다.


 앞으로도 잠 잘 자고 밥 잘 먹을 때 선생님 생각이 나겠지만 나를 위로해 줄 어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10장 모은 쿠폰처럼 든든하기 때문에 언젠가 지치고 무기력함에 응원이 필요할 때도 선생님을 떠올리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도 누군가에게 커다란 존재가 된다면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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