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건 독서가 아니라 OOO

내가 읽은 1000권의 책보다 나를 성장시킨 것에 대하여

by 노력충의 반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뭐 해?"


사실 대답할 게 별로 없다. 더 사실은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다. 남이사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방에서 무얼 하는지 무엇이 궁금할까. 그냥 몇 시에 일어나느냐고 물어보기에 몇 시에 일어난다 대답한 것뿐이다. 나의 생체리듬이 그러한 것뿐이다. 다소 이른 시간에 기상한다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질문이겠지만 이 질문을 들을 때면 마음 깊은 곳에는 적개심이 다소 남아있었다. 그냥 사람 대하는 데 뾰로통한 편인 나의 못된 심보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자는 시간인 오후 9시 이후에 네가 뭐 하는지 1도 궁금하지 않은 걸. 내가 새벽에 일어나 요가를 하거나 영어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인은 많은 이들이 두루 모이는 자리에서 'OO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요가한대요'라고 말하곤 한다. 칭찬으로 한 소리겠거니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나는 다소 머쓱하다. (머쓱할 뿐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내게 좋은 사람이고 많은 경우 나를 응원하고 추켜세워주었다. ) 다만 그리 가깝지 않은 이에게 내가 새벽에 일어나서 내 집에서 뭘 하는지 밝히는 게 달갑지 않을 뿐이었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길거리 혼자 산책하기. 요즘은 해가 길어져 새벽에도 날이 밝아서 아쉽다.


새벽, 혹은 업무를 시작하기 전(직장인 신분 기준) 아침 시간을 매우 귀하게 여긴다. 우선 새벽 4~5시에 나를 찾는 이는 거의 없다. 사실 휴대폰을 꺼두기 때문에 울려도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온전히 혼자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때하고 싶은 것, 누가 시키면 절대 하지 않을, 나를 채우는 작업들을 한다. 몸이 피곤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내일은 늦게까지 자서 하루를 짧게 가져가겠어'라고 다짐하고선 전날 오후 11시 가까운 시간까지 눈을 부릅뜨고 버티긴 하지만, 그래도 기상 시간은 늘 일정하다. 신혼집을 구할 적에도 나의 짝꿍은 나의 이 시간을 확보하고 지켜주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올려주었다.


자연스레 잠드는 시각은 다소 이른 편이다. 나에게 가장 안정적인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나면 8시~8시 30분. 그때부터 9시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후 9시 전에 자는 것은 초딩과 같다며 9시 전에는 눈을 감지 않겠다는 이상한 신념(?)이 생긴다. 9시 전후로 취침 준비를 한다. 누구나 그렇듯 잠 들기 하기 전에 하는 의식 같은 행동이 있다. 주변을 정리하고 이부자리를 정돈하며 북적대는 소리를 들으면 그가 달려온다. 1~2분 내외로 키득 키득대며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 다음 날을 기약하는 것이 우리의 저녁 일상이다.


요즘 오전에 카페에 따라나서겠다는 날이 많아졌다. 모자이크를 너무 진하게 칠해버린 것 같기도...


내가 아침 새벽형 인간인 Early bird라면 그는 밤 새벽 형 인간인 Night owl이다. 나를 재우고서 그는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구'라며 제 방의 불을 켜고 본인의 시간을 갖는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지인들과 카톡을 하기도 하며 본인의 시간을 보내는 때도 있지만 일과 중에 다하지 못한 일을 하거나 지금 본인의 우선순위인 작업을 하는 때가 많은가 보다. 저녁 식사를 하며 한참을 쉬고 나와 끼룩끼룩 대다 그렇게 자리에 돌아가 본인의 것을 해내는 모습이 나로선 신기하다. 나는 한 번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루틴을 잃으면 다시 자리를 잡는 데 꽤 오래 걸리는 편이어서다. 우리가 막 연애를 시작하던 때에 그는 이 시간을 활용해서 내게 매일 밤 편지를 써서 보냈고 다음 날 아침 나를 웃기기도 하였으며 울리기도 하였다. 그 편지들은 내 온라인 오프라인 금고 곳곳에 '죽을 때까지 기억해야 할 OO 이와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다.



#악 쓰듯 1000권의 책 <<< 숨 쉬듯 5분 대화


"우리 OO는 남들보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사람이거든"


무언가 생산하고 창작하는 것에 있어 에너지를 과하게 들이는 편이다. 잘 알지만 시작하면 그냥 그렇게 된다. 온몸의 긴장은 물론 특히 눈과 머리에 신경을 바짝 세우고 힘을 많이 들이고 그 작업물이 세상 내 목숨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듯도 하다. 돌아보면 내가 요가를 생명수처럼 여기는 이유도 일상에서 조여둔 긴장을 풀고 싶어 하는 몸의 소리인 것도 같다. 한두 살씩 나이를 먹으며 성격도 인상도 유해진 것 같다는 말을 (나름..) 많이 듣지만 가까운 지인들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눈에 힘 풀자, 눈 착하게 뜨고 다니자"라는 말이었다. 그 지인들은 내 결혼식 화환에도 '눈 착하게 뜨고 다니자'라는 문구를 써서 보내었다. (1000% 우리끼리의 장난이었지만 막상 화환을 세워두고서는 남편과 남편 가족 눈치를 많이 보았다는.... ) 내 브런치 계정의 이름을 '노력충의 반란'이라고 지은 이유도 같은 결에서 왔다.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시나리오를 짜며 기획하고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며 그 '철저' '계획' '시나리오 '기획 '생산'이 내 삶에 없다면 내 삶도 없다는 기세로 일상을 보내었다. (이 습관이 내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정신 건강과 몸 건강을 천천히 갉아먹어 왔다는 것을 근래에 받아들이고 있다.)


"OO는 지금 햇볕을 쬐고 눈에 머리에 바람을 쐬어야 해. 숨을 깊게 쉬어봐. "


재작년 즈음 토플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언론인으로서 시야를 넓혀 국제적인 시각을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을 가고 싶었다. 일간지 기자로서 매일의 데일리성 보도와 그에 따르는 취재력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의 정체성이자 책무라고 생각하여 매일의 취재와 보도도 놓칠 수 없었다. 무릇 기자라면 본인만의 색깔이 담긴 기획기사 하나쯤은 끌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여 기획 보도도 준비하고 있었다. 건강한 사회인으로서 길고 굵게 일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요가와 필라테스 헬스 3개쯤은 해주며 신체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고강도 운동도 매일 하다시피 했다.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고 나에게 모두 필요하고도 절박했기에 시간을 쪼갰다. 그러다 과호흡이 오듯 일상이 벅차다는 느낌이 몰려와 그에게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내가 당시 나의 상태와 감정을 타인에게 털어놓은 내 모습도 나에겐 낯선 모습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는 '들어보니 모든 게 지금 OO에게 필요하고 꼭 해야 하는 일이야. 그러면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OO의 마음뿐이야'라고 하였다. 당연하다.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말이다. 바꿀 수 있는 건 나의 마음뿐이라는 것은 내가 읽은 책에도 11348928349번은 등장했을 진리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 테트리스처럼 꼭 들어맞으면서도 꼭 필요한 정답이었다. 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무언가 따뜻한 빛이 나를 뭉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을 받았다.


그와 결혼을 왜 하게 되었느냐 결혼 생활은 어떻느냐 하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지만 아,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만 같다, 이 사람과 평생을 보낼 것만 같다, 하는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린 순간 중 한 순간은, 이제껏 설명한 나의 이 철벽과 같은 '노력충' 본능이 상대(=지금의 남편) 앞에서 사그라드는 느낌을 받았을 때다. 내가 책상 위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한 모든 것, 일 인생 세상 관계 사람 인문학 철학 모든 것을 통틀어, 1000권의 책을 읽은 것보다 그와 잠깐 나눈 대화가 내게 더 크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바꿀 수 있는 건 네 마음뿐이야'를 포함한 그의 한 마디가 내 마음을 깊이 울리는 때가 있다. 생각이 깊고 철학을 전공한 그의 내공에서 비롯한 점도 있겠거니와, 분명한 건 그의 표정과 그 말이 나온 타이망으로 보아 철저하게 계산하고 심각하게 고심하여 나에게 내뱉은 말은 아닌 듯하다. 그가 자연스레 내게 한 말이 내 가슴에 자연스레 안착되어 나의 마음 깊은 곳에 가닿는 것은 남들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우리 둘만의 고유한 지점이 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이 도와주는 거라며 그가 해준 음식들. 음식을 위해서도 내 건강을 위해서도 격하게 맞는 말이었다 (ㅎㅎㅎㅎ)


내가 '나를 만들었다'라고 믿어 왔던 시간들이 있다. 새벽 시간을 포함해 온전히 내게 집중하는 시간들이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왔다고 믿었다. 이 철옹성은 아마 내가 3교대 새벽 근무를 하지 않는 이상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다. 고시생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얼굴에 눈에 몸에 힘을 세게 주어 일상을 보내어 온 습관이 쌓아온 피로가 지금 나를 급습하여 덮치고 있다. 생산 창작 몰입 운동 생산성을 곧 나의 존재감과 자존감으로 증명해 왔지만 퇴사 이후 의도적으로 몰입 자극을 걷어내니 상실감이 몰려오고 있다. 완전히 멈추는 게 불안한 사람, 무기력해지면 자기혐오가 따라오는 사람에 속하는 탓이다. 억지로 피로를 차단해 왔던 상태를 벗어나 비로소 몸이 이완 상태에 접어드니 무기력함 두통 나른함이 쏟아지고 있다. 무언가 일을 벌이고 시작하고 싶은 욕구가 안에서 꿈틀대고 있지만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욱여 집어넣고 있다. 새벽잠을 설치고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때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서랍 안에 욱여넣어지는 작고 검은 먼지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매일 그려진다. 그러나 지금 쉬지 않으면 또 언젠가 어디선가 쓰러질 게 분명하다. 내가 사랑하는 그 일들을 못 해낼 것이다. 열심과 회복 사이를 조율하고 균형을 찾아내는 시간을 지나며 연습하고 있다. 문득 온몸에 힘이 빠지거나 얼굴이 타는 듯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며 짜증 섞인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어제는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 종일 찌르는 듯한 두통을 앓았다. 잠들기 직전까지 두통과 싸우는 나를 위해 그는 내가 잠들기 직전까지 머리를 만져주고, 열을 식혀주고, 찬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마음을 울리는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같은 카페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곁에서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지 한숨을 쉬는지 눈앞이 흐려 인공눈물을 투하하고 있진 않는지 틈틈이 곁눈질로 나를 살피고 있다.


며칠 전 대낮에 구워 먹었던 고기. "OO가 고기 먹고 싶다고 하면 무조건 가야지" 라며 고깃집으로 달려갔다.


내가 좋아해 왔던 말이자 좌우명인 말 하나는 '지금 인생을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 것'이라는 말이다. 다음 생이 굳이 있다면 내가 좀 더 건강한 인간으로 태어나 내 팔이 그의 온몸을 감싸는 날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피어난다. 퇴사 이후 요즘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밖에 없다는 듯 붙어 다닌다. 하루하루가 귀하고 소중하고 아쉽다. 이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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