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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하 Feb 06. 2023

한국과 이탈리아,
애증의 두 나라 속에서

1. 시간 편

휴대폰 시계를 보니 약속시간까지 30분이 남았다. 지하철 승강장까지는 걸어서 3분, 조금 빨리 가면 2분이 걸린다. 지하철을 타고 15분 정도가 걸리니까 남는 시간은 10분 남짓. 어플리케이션을 들어가 보니 다음 열차는 2분 14초 뒤에 한 대가 있고, 그다음은 8분 11초 뒤에 있다. 흠... 굳이 뛰어서 2분 뒤 버스를 탈 바에 모아둔 분리수거나 하고 다음 걸 타면 딱 맞겠다. 주섬주섬 쓰레기 봉지들을 챙겨든다.


한국에 살 때의 내 모습이다. 교통정보 어플은 이용객들에게 더욱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제공하기 위해 언제부턴가 초단위까지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정보도 좀체 틀리지가 않는 게, 빅데이터와 통계학, 컴퓨팅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어플은 요일과, 시간대, 신호와 도로상황까지 모든 특성을 고려하여 틀릴 수 없는 예측을 내놓는다. 초단위까지 정확하게 들어맞는 대중교통 도착시간 덕분에 우리에게는 약속시간에 늦을 핑계가 반쯤은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나는 이탈리아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의 내 모습은 한국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준비가 끝나면 신발을 신고 나가는 게 전부다. 어플과 시간표가 있지만 굳이 체크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딱 맞춰서 버스나 지하철이 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촉발한 디지털화의 영향으로 과거에 비하면 지금은 그 정확도가 크게 나아졌다고는 하나, 잦은 공사와 파업으로 인한 스케줄 변경을 고려하면 애초에 큰 기대를 안 하는 게 실망하지 않는 길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방에 사는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한 도시, 밀라노에 살고 있다.


중요한 건 어차피 약속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한 20분 늦는다 해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보다 늦게 온다. 기차도 늦게 오고, 심지어 교수님도 수업에 늦으신다. 시험날이라고 해도 예외가 없다. 9시 시험이면 10시쯤 시작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시스템 때문인지는 몰라도 늦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는 즐겁게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휴대폰으로 다운해 둔 동영상이나 책을 본다거나, 일찍 온 친구들과 노가리 까기, 근처 가게를 둘러보기 등을 통해서 말이다.


1분 1초가 아쉬운 관광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나처럼 지독히 계획적인 성격의 관광객이라면 차라리 중심가에 숙소를 잡고 기왕이면 걸어 다니는 게 가성비 넘치는 여행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이것이 여행이 아닌 일상인 나는 이 난관을 어떻게든 극복해야 했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시간과 상황을 통제해 보려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 한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는 시내에 가기 위해서 20분 동안 트램을 기다리다가는 결국 "이런 부분은 참 후진국 같다"며 이탈리아를 책망했다. 이 나라를 사랑하는 나는 괜히 발끈해서 결국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다. 이런 시스템이 답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나누는 기준이 정시에 도착하는 버스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짧은 시간 동안 고도의 성장을 맛보며 시간이라는 것이 어떻게 힘이 되는지를 절감한 나라다. 공공기관의 민원업무도, 대중교통 시스템도, 식당 테이블의 회전율도, 직장인의 일처리도 빠르고 효율적인 데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쉽게 도태되는 것에 있다. 비효율적인 것은 응당 게으른 것, 능력이 부족한 것, 노력하지 않는 것으로 번역되고, 그것들은 삶의 기준을 오롯이 능력과 효율이라는 경쟁적인 가치에만 집중하도록 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개개인의 소유물쯤으로 여기지 않을까.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는 내 시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니 손절하라고 하며, 대중교통이 멈춰 늦어졌다가는 민원창구가 폭발한다. 내 것이 특정인에 의해 침해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면 나는 이곳에서 만난 모든 이탈리아인과 손절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지 않기 위해서 이탈리아라는 나라의 문화를, 이곳 사람들을, 나의 그것과 비교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탈리아는 비효율적인 것이 용인되는 나라다. 늦고 빠릿빠릿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나라다. 이탈리아의 악명 높은 행정처리 끝에서 배운 것은 '기다리면 어떻게든 언젠가는 된다'이듯, 느리고 답답한 것들이 '굳이' 개선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나라일 뿐이다. 그러니 노동자/서비스제공자 입장에서는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덜할 수밖에.


어떤 사람들은 식사시간이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앉아서 잡담을 나누는 이 나라 사람들의 천연덕스러움을 여유로운 것, 너그러운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의 나는 잠깐 숨을 고르면서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더 쉽게 견디기 위해선지 말을 걸어오는 낯선 사람들도 참 많다. 어느덧 나는 시간이라는 건 사실 타인의 그것과 얽히고설켜 있어서 내 맘대로 컨트롤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은 분명 GDP로 대표되는 성장의 면에서는 머지않아 이탈리아를 앞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진국을 판단하는 기준이 오로지 성장이었던가? 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돌아가서 버스가 정시에 오는 나라가 선진국일까 개도국일까 하느냐의 문제는 조금 과장하면 1분 1초도 안 틀리고 버스를 타야하는 사회에서 사는 게 행복하냐, 닭 울음소리에 맞춰 일어나는 사회에서 사는 게 행복하냐의 문제로, 결국 범국가적 가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앞의 물음에 대해서 정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나라에서든 환경에서든 배울 것이 있고, 그것들을 찾아내는 데 사용하는 시간이야말로 값지고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탈리아에 사는 게 조금 답답하더라도, 한국과는 다르더라도, 우리는 이곳을 얼마든지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이제 이탈리아에서의 나는 더 이상 시간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구르지 않으며, 제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를 원망해 봤자 소용없다는 사실도 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보다는, 하루를 여유롭고 즐겁게 살아낸 것에 더 큰 만족감을 얻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오늘도 버스정류장에 앉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내 안타까운 시간에 대한 합리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내가 이탈리아를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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