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남자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꽃다발을 든 남자였다.
퇴근길, 만원버스에서 만난 키가 훤칠한 그는 20대로 보였다. 유독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발 디딜 틈 없는 만원버스에서 꽃다발을 감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자리라도 나면 좋으련만, 그는 심지어 좌석 옆도 아니고 통로 중앙에 인파들 틈에 낀 채로 서 있었다. 양쪽의 압박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 버스가 좌회전하면 왼쪽 사람들에 치이고, 반대면 반대로 치이는 식이었다. 그래도 온몸으로 방어해서인지 꽃만은 상하지 않는 게 신기했다.
내리는 사람은 적은데 밀고 들어오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지켜보는 내가 조마조마했다. 간신히 손잡이를 잡고 버티는 관람자 주제에 남 걱정이라니.
그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꽃을 줄 생각이었을 것이다. '주는 꽃다발'이 아니라 '받은 꽃다발'이었다면 저렇게 애지중지할 리 없을 거란 내 마음대로의 추측이었다. 물론 소중한 누군가에게서 받은 꽃다발일 수 있지만, 나는 그 남성이 만원버스에서 곧 탈출해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다발을 주는 장면을 상상하는 게 더 즐거웠다.
그는 왜 버스를 타기 전 꽃집에 들른 것일까. 목적지 주변엔 꽃가게가 없었을까. 택시비를 아껴서 꽃을 산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곧 나의 대학 시절의 한 장면에까지 미쳤다.
꽃다발도 아니고 꽃 한 송이를 받은 적이 있다. 세례 기념으로 교회에서 받은 꽃 한 송이. 빨간 장미였다. 유난히 숫기가 없던 나는 그 꽃을 들고 지하철로 하숙집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사나이가 무슨 꽃을 들고…. 누가 보기라도 하면….'
20여년 전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뭘 하든 아무 관심도 없다는 걸 이제 와서야 알게 됐지만, 그땐 혼자서 지레 그랬다.
결국 그 장미꽃 한 송이는 구겨진 채 가방에 들어갔다. 선물로 받은 꽃을 차마 교회에 버리고 갈 수는 없었기에, 버리더라도 집에서 버리자 생각했다.
내 20대의 구겨진 감성이 떠오른 건, 만원버스의 빼곡한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당당함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도 이제는 '꽃을 구겨 넣는 남자'가 아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꽃을 든 남자'가 될 준비가 됐다.
그나저나 꽃을 사본 게 언제였더라. 꽃을 사본 적이 있었던가. 이런,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