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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Dec 03. 2022

삼행시, 오프닝은 뭘로 하시나요?


최근 지인들과의 1박 2일 여행에서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어놓던 와중에 삼행시가 주제로 등장했다. 다들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를 하면서 무용담, 실패담 하나 정도씩은 있었다. 감동(?)적 삼행시로 회식 자리를 달군 이야기부터, 첫 행을 자기 이름 석 자 부르고 나서 2·3행은 하나마나 한 말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실패담을 들으며 문득 삼행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자기 이름 석 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 '김' '동' '하'를 가지고 삼행시를 하라고 하면 일단은 "김동하는"이라고 시작하고 볼 일이다. 당장 다른 걸 생각해보면 "김 새는 말을 잘하는" "김빠진 콜라 같은" "김장철 풀이 확 죽은 배추처럼" "김말이를 좋아하는"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성씨면 굳이 자기 이름 석 자로 시작 안 할 가능성이 좀 더 열려 있겠지만, 김씨는 제한적이다. 


나처럼 삼행시 동병상련을 가진 김씨가 당장 우리나라 최대 성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성씨 5582개 중 김씨는 1069만명으로 총인구의 21.5%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이씨 730만7000명(14.7%), 박씨 419만2000명(8.4%) 등 순이다. 적어도 5명 중 1명 이상은 삼행시에서 나처럼 '김씨의 고충'을 겪고 있는 것이다. 2위 이씨는 삼행시 폭이 상대적으로 좀 넓어 보이지만, 3위 박씨는 좀 제한적일 거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많은 사람이 삼행시의 첫 행을 자기 이름으로 장식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이름이 가진 특별함 때문이다. 이름 석 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평생을 사용한 그 친숙한 이름을 밀어낼 정도로 임팩트 있는 다른 단어가 얼마나 있을까. 어린이집 때부터 우리는 자신의 물건을 구별하기 위해 이름을 써놓는 걸 배운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을 봐도 "너 몇 살이니?" "너 이름이 뭐야"로 대화를 시작한다. 대학 때,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며 강의실을 퇴장하는 호기를 발휘하더라도 이름만큼은 쓰고 가질 않나. 


또 다른 이유는 문장 구조 때문이다. 주어와 술어로 구성되는 일반적 문장에 익숙한 우리는 주어를 말하고 술어를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럽다. 주어를 이야기하면 다음 술어를 이야기하기 쉬워진다. 일단 '000은'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게 편해서다. 그러고 보면 삼행시의 첫 시작을 주어가 아닌 수식어로 활용하는 이들의 감각이나 수고는 칭찬해줄 만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에선 주어(主語)를 '주요 문장 성분의 하나로, 술어가 나타내는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삼행시의 처음을 이름 석 자 부르는 게 식상하다고? 아니다. 우리는 삼행시를 가장 나답게, 주체적으로 장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 : 김동하는

동 : 동하다

하 :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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