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들과의 1박 2일 여행에서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어놓던 와중에 삼행시가 주제로 등장했다. 다들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를 하면서 무용담, 실패담 하나 정도씩은 있었다. 감동(?)적 삼행시로 회식 자리를 달군 이야기부터, 첫 행을 자기 이름 석 자 부르고 나서 2·3행은 하나마나 한 말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이야기까지 다양했다.
실패담을 들으며 문득 삼행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자기 이름 석 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 '김' '동' '하'를 가지고 삼행시를 하라고 하면 일단은 "김동하는"이라고 시작하고 볼 일이다. 당장 다른 걸 생각해보면 "김 새는 말을 잘하는" "김빠진 콜라 같은" "김장철 풀이 확 죽은 배추처럼" "김말이를 좋아하는"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다른 성씨면 굳이 자기 이름 석 자로 시작 안 할 가능성이 좀 더 열려 있겠지만, 김씨는 제한적이다.
나처럼 삼행시 동병상련을 가진 김씨가 당장 우리나라 최대 성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성씨 5582개 중 김씨는 1069만명으로 총인구의 21.5%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이씨 730만7000명(14.7%), 박씨 419만2000명(8.4%) 등 순이다. 적어도 5명 중 1명 이상은 삼행시에서 나처럼 '김씨의 고충'을 겪고 있는 것이다. 2위 이씨는 삼행시 폭이 상대적으로 좀 넓어 보이지만, 3위 박씨는 좀 제한적일 거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많은 사람이 삼행시의 첫 행을 자기 이름으로 장식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이름이 가진 특별함 때문이다. 이름 석 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평생을 사용한 그 친숙한 이름을 밀어낼 정도로 임팩트 있는 다른 단어가 얼마나 있을까. 어린이집 때부터 우리는 자신의 물건을 구별하기 위해 이름을 써놓는 걸 배운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을 봐도 "너 몇 살이니?" "너 이름이 뭐야"로 대화를 시작한다. 대학 때, 백지 답안지를 제출하며 강의실을 퇴장하는 호기를 발휘하더라도 이름만큼은 쓰고 가질 않나.
또 다른 이유는 문장 구조 때문이다. 주어와 술어로 구성되는 일반적 문장에 익숙한 우리는 주어를 말하고 술어를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럽다. 주어를 이야기하면 다음 술어를 이야기하기 쉬워진다. 일단 '000은'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게 편해서다. 그러고 보면 삼행시의 첫 시작을 주어가 아닌 수식어로 활용하는 이들의 감각이나 수고는 칭찬해줄 만하다.
국립국어원에선 주어(主語)를 '주요 문장 성분의 하나로, 술어가 나타내는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삼행시의 처음을 이름 석 자 부르는 게 식상하다고? 아니다. 우리는 삼행시를 가장 나답게, 주체적으로 장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 : 김동하는
동 : 동하다
하 :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