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 테크니션 Jun 20. 2020

아버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끔찍하기 마련입니다. 자식을 지키거나 잘 되게 하기 위해 대부분의 부모는 본인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부모님의 희생이라고 하면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희생을 먼저 떠올립니다.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도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쪽은 대부분 아버지보다는 늘 어머니 쪽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시고기라는 물고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 가시고기는 알을 낳으면 알들을 돌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아빠 가시고기 혼자 남아 알들을 지켜 냅니다. 알들을 먹으려고 달려드는 다른 물고기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며 알들을 지킵니다. 아빠 가시고기는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알들을 지켜냅니다. 이런 아빠 가시고기의 희생 덕분에 새끼들은 무사히 알에서 깨어납니다. 그러나 아빠 가시고기는 기진맥진하여 죽게 됩니다. 그런 아빠 가시고기의 살을 뜯어먹으며 새끼들은 자라나게 됩니다. 결국 아빠 가시고기는 앙상한 뼈만 남게 됩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아빠 가시고기의 일생입니다. 새끼 가시고기가 커서 아빠 가시고기가 되면 그 가시고기 또한 그의 아빠 가시고기와 같은 생을 살다 마감을 하게 되겠지요. 

나의 아버지께서는 아빠 가시고기 같으신 분이셨습니다. 아내와 4남매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은 물론 처가 식구들까지 돌보시느라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은 평생 못 해보신 분입니다. 그저 자식들 잘되는 것, 가족들 평안히 지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전부 이었던 아버지께서는 가끔 막걸리 한잔 드시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취미 조차 가지시지 못했습니다. 만일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서 이젠 자식 걱정 가족 걱정하지 마시고 올 곶이 본인 만을 위한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앤 랜더스라는 미국의 유명한 컬럼리스트는 그녀의 아버지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내가 네 살 때 아버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내가 다섯 살 때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이었습니다.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보다 현명한 분이었습니다.

내가 여덟 살이 되면서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아는 분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열 살이 되면서 아버지가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음을 알았습니다.

내가 열두 살이 되면서 아버지는 아는 것이 없고 심지어 자신의 어린 시절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늙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열네 살이 되면서 너무나 구식인 아버지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스물두 살이 되면서 아버지가 희망이라고는 없는 구제불능의 노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면서 오래 산 아버지가 그 점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내가 서른다섯 살이 되면서 아버지와 먼저 상의하지 않고는 단 한 가지 일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마흔 살이 되면서 아버지가 놀라울 만큼 지혜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나는 이제 쉰 살이 되었고 아버지가 살아만 계시다면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얼마나 지혜로운 분인지 몰랐다고, 당신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나는 평생 아버지를 한 번도 원망해본 적이 없습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나는 나의 아이들이

내가 내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 같이 생각해 주길 기대하지 못합니다. 

서른두 살 먹은 내 딸아이는 나를 아빠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물여섯 먹은 내 아들은 

또 나를 어떤 아빠로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 들이 열 살 때 나를 어떤 아빠로 

생각했는지 스무 살 때 어떤 아빠로 기억하고 있는지 나는 모릅니다. 

단지 내 아이들이 나이가 먹어 감에 따라 앤 랜더스가 서른다섯이 넘어 그녀의 아버지를 생각 

했던 것과 같은 아빠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내가 생을 마감했을 때 나의 

아이들도 “그때는 당신이 얼마나 지혜로운 분인지 몰랐다고, 당신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지금 그러하듯이..


작가의 이전글 블랙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