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사무치게 그리운 사람

꽃과 선생님

by 이야기 제작소
올해에도 어김없이 매화꽃이 핀다는 건, 봄이 왔다는 거지요.


IMG_1684.jpg 올해도 어김없이 매화꽃이 피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나와 동갑인 매실나무가 있다. 며느리가 임신한 걸 축하하고자 할머니가 직접 사다가 엄마와 심으신 나무다. 이 나무는 나와 동갑이자 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날이 따뜻해지고 봄이 오자 매실나무는 매화꽃을 피웠다.


과거에는 꽃이 피는 건 하나의 축복이다. 오랜 시간 모지고 고된 겨울을 버티고 밭에 씨를 뿌리며 새로운 일 년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기 때문이다. 할머니도 항상 겨울이 어찌나 춥던지 먹을 것도 없는 겨울은 유독 모질었다고 하셨다. 이렇게 모두들 기다리는 봄이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중학교때까지 머물었던 작고 외진 동내를 떠나 처음으로 시내에 있는 학교로 진학했다. 그 당시는 비평준화여서 자신의 성적에 맞게 학교를 진학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상당히 상급학교였고 처음으로 알 수 없는 사회로 나가는 시기였다. 처음 학교를 다닐 때 나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각지에서 온 학생들은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고 자신의 지식과 재력을 뽐내기에 바빴다. 그런 가운데 시골 출신에 나는 낄 자리가 없었다.


지금도 고등학교에 대한 좋은 추억은 많이 없다. 공부를 치열하게 해서 성과를 내보지도 못했고 어떠한 커리어가 없었다. 다만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그리고 호기심이 많았던 시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으며 어느 정도 삶의 가치관을 형성한 건 다행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뽑으려면 우리 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항상 술에 취한듯한 빨간 코를 가지고 호쾌하게 웃으시면서 수업을 하셨다. 학교에서 분쟁이 생기더라도 일방적인 편을 들지 않았고 두 사람에 입장을 적어가면서 경청한 뒤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내가 선생님의 수업 중 가장 좋아했던 시기는 ‘고전시가’ 수업인데 선생님은 조상들의 비유와 표현들을 맛깔나게 잘 설명해 주셨다.


“여기서 이 꽃의 의미는 사랑을 의미하는 겁니다. 거리에 있는 꽃을 보면서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게 참 로맨틱하죠.”


IMG_1685.jpg 아직도 선생님의 문학시간이 생각난다.


그렇게 방황하던 시기에 선생님은 나 스스로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저주셨고 그 답을 찾고자 많은 책을 읽었던 거 같다. 아직도 내 삶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만 이 시기에 최소한 목적지로 가는 지도는 그린 샘이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을 했고 매년 스승의 날마다 찾아가면서 어느새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이 되셨다. 여전히 푸근하고 빨간 코를 가진 체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영국으로 유학을 갔을 무렵 매년 찾아뵙지 못해 산책하면서 길거리에서 찍은 꽃 사진을 보내며 “선생님 봄이 오니까 선생님의 강의가 그립네요.”라고 연락을 드리자 나에게 덕담과 함께 언제든 찾아오라고 조언해 주셨던 선생님이 기억난다. 시간이 더 흐르고 해가 바뀌어 또다시 봄이 찾아오자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생님에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아 바쁘셔서 답장하실 시간이 없나 보다. 다음에 직접 찾아뵈야겠다.’


귀국하고 바로 고등학교에 갔던 거 같다. 안부도 여쭤보고 선생님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선생님이 계시지 않아 다른 선생님께 여쭤보니 교감선생님은 지금 코마 상태라고 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고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순간 커다란 바위가 내 머리에 얹어진 거 같았다. 이상하게 선생님만 생각하면 짓니긴 듯이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선생님의 호전 소식은 듣지 못했다.


올해도 매년처럼 초록에 시간이 돌아왔다. 꽃들은 자신의 색감을 표현하기 그지없는데 나는 마음에 알 수 없는 중압감과 사무치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언제쯤 꽃이 피는 것이 즐거운 시간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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