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가 제일 부러워

소소한 취미,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방법

by KEIDY

어릴 때부터, 공부는 잘했다. 사실 어린 시절 교육이란, 자고로 시험을 봐서 높은 점수가 나오면 교육이 잘 됐다고 평가하는 것 아니겠는가. 보통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필기와 실기를 합쳐 점수를 매기곤 했는데, 주요 과목은 필기 비중이 높은 반면 실기 비중이 낮고 예체능 과목은 그 반대였다. 나의 경우, 주요 과목은 필기, 실기 다 고르게 높은 편이었는데 예체능 과목만큼은 아니었다. 필기는 거진 100점이었으나 실기점수는 영 꽝이었다.


나는 몸으로 하는 대부분의 활동들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체육은 타고나는 체력과 유연성이 중요한데 나의 경우는 둘 다 해당되지 않았고, 100미터 달리기에 21초 기록이 나오거나(너무 기록이 나빠서 아직도 기억 중이다…) 뜀틀을 하면 앞으로 날아가는 등(이건 너무 창피해서 아직도 기억 중이다…) 실기점수는 거의 최저를 밑돌았다. 음악의 경우도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없거니와 악기를 다루는 섬세한 조절 능력이 별로 없었던 듯, 단소나 리코더 같이 쉬운 악기 정도만 그럭저럭 다룰 수 있어서 나 스스로도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학창 시절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왜냐면, 학교에서는 시험성적만 높으면 됐지 예체능 과목을 잘 못하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재주 있는 친구들은 가끔 수업시간에 두각을 나타내서 칭찬받거나 하면,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철이 들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다른 재능이나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가 갖지 못한 능력에 대해 부러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요새 들어 특히 "손재주"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살려 다양한 일과 취미를 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집 근처에 맛있는 케이크 가게가 있다. 그 케이크 가게는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케이크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다. 처음에는 케이크 한 조각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사 먹을 때 후들후들했지만, 먹어보니 왜 이 값을 받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이 너무 좋아서, 부모님 생일 때 일부러 홀케이크를 특별 주문했고 먹어본 사람들이 다들 맛있어하는 걸 보며 기분이 좋았다.

그 가게는 특정 과일이 맛있어지는 계절이 오면 그 과일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과일과 어울리는 재료와 케이크에 대한 묘사를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올리는데

그 게시물을 보고만 있어도 케이크를 당장 사 먹고 싶어 진다. 그분은 맛있고 예쁜 케이크를 만들 수 있는 손재주가 있으니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재주가 뛰어난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활동들을 잘하는 편이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홈베이킹, 커피, 꽃꽂이 등에 일가견이 있고 손으로 하는 것이라면 처음 배우는 것도 제법 잘한다. 손재주가 없는, 소위 말하는 곰손인 나로서는 굉장히 부러운 재주다. 그 친구는 커피 쪽에서 일하는데 그 회사에서 개최하는 큰 이벤트나 페스티벌에서 커피 만드는 법, 드립 커피 내리는 법 등에 대해 1일 클래스 강사로 나간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랑 페스티벌에 같이 참석해서 친구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같이 간 사람도 저 사람 굉장히 잘 가르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일치시킨 그 친구가 부러웠다.


그 친구와 함께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클래스를 들으러 간 적이 있다. 클래스에서는 서로의 장/단점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얘기해 주고, 마지막에는 서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어보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좀 더 다양한 취미생활에 도전해 봤으면 좋겠다며, 같이 하자고 권유해도 내가 손재주가 없다고 손사래 치는데 "잘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일단 해 보는 것"에 의미를 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줬다. 그 얘기를 듣고 놀랍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사실, 나 스스로 손재주가 없다고 생각하니 그러한 활동을 권유받아도 잘할 자신이 없어서 미리 포기하거나 완벽하게 해 내지 못하니 그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친구의 말처럼, 그걸 얼마나 잘하느냐보다 재미있게 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면 못할 게 뭐가 있겠냐는, 묘한 자신감이 들었다.


아직도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서고, 때로는 재료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 만큼 결과가 엉망이긴 하다. 그러나 정성을 담아 나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그 과정 자체의 재미를 즐긴다면 손재주가 없어도 좀 더 풍요로운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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